※ 안가보고 쓰는 글입니다

코파르 나사라와 고가도로

사하라와 맞닿은 반건조 지역인 사헬 지대의 중앙에 위치한 카노(Kano)는 약 5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나이지리아 제2의 대도시. 서기 999년 세워진 카노는 역사적으로 나이지리아 북부와 니제르의 주 민족인 하우사족의 7개 왕국 중 가장 강력한 도시 국가였으며, 지중해와 서아프리카를 잇는 사하라 종단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한 곳이었음. 1903년 영국이 도시를 점령한 후 라고스 항구와 철도가 연결되었고(1912), 도시는 북쪽 사하라 대신 남쪽 대서양을 통해 사헬의 농축산물을 수출하는 중심지가 되었다고.


현재의 도시 위성사진


카노는 크게 서쪽의 구시가지랑 동쪽의 신시가지로 나뉘어 있음. 구시가지는 원래 가누와(Ganuwa)라 불리는 약 20km 길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현대에 들어서는 상당부분이 훼손된 상태임. 식민지 시대에는 성벽 동쪽에 철도가 놓이고 인구가 유입되면서 신시가지가 형성되었음. 1960년 독립 당시 인구 20만이었던 카노는 이후 수십년 동안 급격한 인구 팽창을 겪었는데, 여느 아프리카 대도시가 그렇듯 늘어난 인구에 비해 부족한 인프라 및 환경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함.



나이지리아의 행정구역은 주(state) - 지자체(LGA) - 동(ward)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글에 나온 카노의 구들은 정확히 말하면 카노 주 아래의 지자체(LGA)들에 해당함. 이 글에선 카노의 도시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지자체들을 위 그림 순서대로 나열함(구시가지 → 신시가지 → 교외). 인용한 지자체 인구는 2022년 추계인데, 가장 최신(...)인 2006년 인구조사에 카노주(州) 인구증가율을 일괄 대입하는 식으로 추산한 거라 정확도가 꽤 떨어질 수 있는 점에는 유의가 필요할 듯.



[上] 사부와르 코파(Sabuwar Kofa) 성문, [下] 에미르궁 앞 대로

1. 카노 Kano Municipal

면적 14.9km², 인구 610,600명. 카노의 역사적 중심지에 해당하는 지자체로, 관할 구역을 보면 구시가지의 동남쪽 부분과 성벽 남쪽의 샤라다, 가둔 등의 동네로 이루어져 있음. 오래되고 인구밀도가 높은 이 구역에는 현재도 카노의 에미르(국왕)가 머무는 궁전과 사하라 횡단무역 시절부터 형성된 오래된 시장들이 위치해 있음. 


기단 룸파(에미르궁) 전경

구시가지 한복판에는 15세기 카노의 술탄 무함마드 룸파가 세운 궁전이 있는데, 하우사어로는 기단 룸파(Gidan Rumfa)라고 부름. 19세기 소코토 칼리프국이 카노를 정복한 이후 기단 룸파는 카노의 에미르가 머무는 곳이 되었음. 카노의 에미르는 식민지 시기와 독립 이후로도 명예직으로 유지되어 지금도 북부 지역에서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라마단이 끝날 때 에미르가 주최하는 두르바르 축제는 도시의 대표적 축제이기도 함.



기단 룸파에서 바로 대로 건너편으로는 기단 마카마라고 하는 좀더 오래된 궁전이 있는데, 현재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 민속에 대해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함.



기단 룸파 뒤쪽으로는 역시 무함마드 룸파가 세운 카노 대모스크가 위치해 있는데 나이지리아에 현존하는 모스크 중에선 가장 오래됐다고. 원래 모스크는 진흙으로 지어진 아프리카 양식 건물이었으나 1960년대 이슬람 양식의 현 건물로 재건축되었음. 이 모스크는 카노의 에미르가 이슬람에서 벗어났다고 비난한 보코 하람에 의해 테러의 표적이 되기도 했는데, 2014년 테러는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음...



구시가지 북쪽으로는 쿠르미 시장이라는 큰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있음. 쿠르미 시장은 과거 아랍과 서아프맄카를 넘나드는 사하라 종단 무역의 주요 중심지로 각종 농산물과 직물, 가죽과 도예 제품(...그리고 과거엔 노예도)이 거래되었다고. 지금은 도시의 상업 기능이 여러 시장으로 분산되었지만 여전히 다양한 물건을 취급함.



쿠르미 시장은 자카라강이란 하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대충 서울의 청계천처럼 구시가지 중앙을 통과해 성벽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임. 현대적 하수시설이 미비한 도시에서 이런 하천들은 하수 배출 및 홍수 조절 역할을 하지만, 짤에도 보이듯 하수와 쓰레기가 다이렉트로 모여들어서 상태는 영 좋지 않은 편. 특히 우기가 되면 홍수가 빈발해 많은 피해가 발생한다고.


코파르 마타의 염색장(아래 사진 출처)

서아프리카의 대표적 면화 생산지대에 위치한 카노는 예로부터 직물 수공업이 발달했는데, 동쪽 코파르 마타 성문 근처에는 15세기부터 전통적인 방식으로 남색 천을 만드는 염색장이 있음: 카노의 상류층과 사하라의 유목민 투아레그족이 주 고객이라고. 과거엔 염색된 천이 카노의 특산물로 도시 곳곳에 염색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값싼 외국산 직물이 들어오면서 소실 위기에 놓인 전통이라고 함.


코파르 단 아군디 성문

앞서 언급했듯 카노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인데, 우리나라의 많은 읍성들이 그랬듯 여기도 현대에 들어선 성벽 대부분은 허물어지고 옛 성터를 따라 순환도로가 들어섬. 이 순환도로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나누는 경계 역할도 함.


[上] 스카이라인 유니버시티 타워, [下] 아도 바예로 몰

카노 구의 경우 성벽 바깥쪽으로는 널찍한 단독주택가와 비공식 주거지, 공업지구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는 모양새. 도시의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전시회 지구(Trade Fair Area)에는 도시의 나름 현대적인 시설들이 위치해 있음: 80년대 완공되어 현재 대학 캠퍼스로 쓰이는 스카이라인 유니버시티 타워는 도시의 몇 안 되는 고층 건물이고(17층), 2014년 개장한 아도 바예로 몰은 나이지리아 북부에서 가장 큰 현대식 쇼핑몰임.


[上] 샤라다 지구, [下] 카노 동물원

구 남단의 샤라다 지역에는 규모가 꽤 큰 공단이 위치해 있음: 카노는 전통적으로 직물로 유명했고 섬유 및 식품가공 산업이 발달한 도시였는데, 불행히도 90년대 이후로는 산업의 급격한 쇠퇴를 겪고 있다고. 가둔이라는 지역에는 약 46헥타르 넓이의 카노 동물원이 있음. 동물원은 1972년 아우두 바코 주지사에 의해 설립되었고, 녹지가 드문 카노에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는 곳이라고.



[上] 코파르 나이사 성문, [中][下] 카노 구시가지

2. 괄레 Gwale

면적 36.1km², 인구 588,500명. 카노 서쪽에 있는 구역으로 구시가지 남서쪽 부분과 성벽 바깥의 코파르카부가, 도라이 등의 동네들을 포함하고 있음. 구명인 괄레는 구시가지의 코파르 나이사 성문 근처에 있는 동네 이름으로, 이슬람 도래 이전 하우사족 족장 이름에서 따왔다고 카더라.


[上] 코파르카부가 구역, [下] 도라이 구역

괄레는 구시가지 3구(?) 중에서 상대적으로 성벽 바깥에 새로 형성된 주거지역들을 많이 포함한 편. 이러한 주거지역 중에는 첫 번째 사진의 코파르카부가처럼 계획적으로 조성된 지구도 있는 반면, 아래 사진의 도라이처럼 도시의 비계획적 확장으로 집들이 들어선 지역들도 있음.



[上] 코파르 다와나우 성문, [下] 카노 구시가지

3. 달라 Dala

면적 13.9km², 인구 688,700명. 카노 구시가지 북쪽에 있는 구로 카노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함. 구의 관할구역은 성벽 안쪽의 과마자, 바깥쪽의 고비라와 같은 동네들을 포함함. 구명인 달라는 카노 구시가지의 나름 랜드마크인 달라 언덕에서 유래했음.


달라 언덕

구시가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형지물인 달라 언덕은 해발 534m(지상에서 약 50m) 높이의 작은 바위산으로, 도시의 상징이자 신성한 장소로 여겨진다고. 전설에 따르면 먼 옛날 '카노'라는 이름의 대장장이가 광석이 풍부한 언덕 자락에 처음 정착했고, 999년 카노의 첫 번째 왕 바가우다가 도시를 세운 곳도 여기였다고 함.


[上] 코파르 루와 시장, [下] 과마자 구역

언덕 북쪽은 구시가지에선 비교적 늦게 시가화된 지역. 북쪽 성문인 코파르 루와와 코파르 다와나우 주변으로는 대규모 시장(루와는 철물, 다와나우는 농산물)이 형성되어 있음. 과마자 구역은 성벽 안쪽이지만 격자형으로 구획된 주거지역인데, 20세기 초 도시로 모여드는 이주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된 동네라고.



[上] 카노 기차역, [下] 파게 중심가

4. 파게 Fagge

면적 35.3km², 인구 329,100명. 카노 성벽 바깥 동북쪽에 있는 구역. 파게는 과거에는 사하라를 넘나드는 무역상들의 야영지였으며, 1913년에는 카노 철도역이 개통되어 도시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되었음. 이 지역은 식민 시대에는 대체로 흑인 거주 구역으로 지정되어 나이지리아 전국에서 이주민들이 모여들었다고. 현재 파게는 도시에서 가장 큰 시장들이 위치한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음.


[上] 칸틴콰리 시장, [下] 왐바이 시장

파게에는 도시에서 가장 큰 시장들이 위치해 있음. 첫짤에 보이는 칸틴콰리 시장은 식민 시대 아랍인 거주 지역으로 지정되었던 파게타쿠두 지역에 형성된 시장으로,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큰 직물 시장 중 하나라고 카더라. 두번째 사진의 왐바이 시장은 구시가지 동북쪽 코파르 왐바이 성문 바깥에 들어선 커다란 소매시장.



파게 북쪽에는 사본가리라는 지역이 있는데, 하우사어로 '새로운 마을'이란 뜻이라고. 구시가지가 이슬람을 믿는 하우사족과 풀라니족이 주류라면 사본가리는 20세기 초 나이지리아 남부에서 이주한 기독교도들이 정착해 형성된 동네라고 함. 현재 사본가리는 커다란 시장이 있고 현대식 빌라(?)들이 모여 있는 번화한 지역. 이곳은 종종 종교 갈등의 장소가 되기도 했으며, 2000년 지방 정부가 샤리아법을 도입한 이래로는 종교경찰에 의해 밀주 단속이 줄곧 일어났다고.


사본가리의 '엘도라도' 영화관

카노는 북부 지방에서 인기있는 하우사어 영화 산업의 중심지(일명 '카니우드')로, 인도 발리우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함. 나이지리아에서 홈 비디오의 보급은 저예산 영화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역설적으로 영화관 쇠퇴의 계기가 되기도 했음. 사본가리의 '엘도라도'는 도시에 몇 안 남은 구식 영화관으로, 구글맵 리뷰를 보면 현재는 축구 중계가 메인이고 때때로 하우사·인도 영화를 상영하는 모양 ㅋㅋ..



구의 북단에는 도시의 주 공항인 말람 아미누 카노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음. 카노 공항은 1936년 개항한 나이지리아 최고(最古)의 공항으로, 개항 초기에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기착지였으나 비행기 항속거리 증가로 중요성이 감소했다고. 2022년 공항을 이용한 승객은 58만 명으로 대부분은 국내선 이용자였음.




5. 나사라와 Nasarawa

면적 48.7km², 인구 980,900명. 구시가지 동쪽 코파르 나사라와 성문 바깥에 있는 구로, 도시 인구의 5분의 1이 살고 있어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임. 성벽 바로 바깥에 위치한 나사라와·봄파이 등의 동네는 식민지 시기 백인 구역으로 계획된 곳으로 널찍한 단독주택으로 이루어진 넓은 주거 블록들이 조성되어 있음.



한편 외곽에 있는 과과르와·투둔와다·다카타 등의 동네는 북부 농촌 지역에서 모여든 이주민들로 인해 급속히 도시가 확장되면서 비계획적으로 형성된 지역. 도시에서 동쪽을 따라 뻗은 주요 도로들을 따라서 공업 지역이 형성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를 집들이 채우고 있는 모양새?



[上] 카노주 정부, [中][下] 타라우니 지구

6. 타라우니 Tarauni

면적 23.2km², 인구 364,900명. 앞서 본 나사라와처럼 구시가지 동쪽에 있는 舊 백인 거주 지역에 해당했던 부분. 타라우니에는 카노주 정부와 주의회를 비롯해 주요 관청들이 모여 있으며, 관청 주변으로는 널찍한 단독주택 위주로 구성된 주택가가 자리잡고 있음. 여담으로 카노 에미르의 사저도 지금은 이 동네에 위치해 있다고.


기단 단하우사

이 구역에 있는 기단 단하우사(Gidan Dan Hausa)는 20세기 초 영국 장교이자 나이지리아 북부의 초대 교육 책임자를 맡은 한스 비셔(하우사족의 아들이란 뜻의 '단 하우사'란 별명으로 알려짐)가 머물렀던 하우사 전통 양식의 건물로, 카노에서 처음으로 서구식 교육이 이루어진 장소였다고. 현재 건물은 카노의 역사에 대한 박물관 겸 문화 센터로 이용되고 있다고 함.





[上][中] 카노 남쪽 외곽, [下] 쿰보초 마을

7. 쿰보초 Kumbotso

면적 186.7km², 인구 484,200명. 도시 남쪽의 커다란 구역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광역시에 딸린 군들처럼(?) 중심지 없이 도시 외곽 지역들을 묶어놓은 모양새의 지역. 사실 원래 카노의 일부였다기보단 도시 성장에 따라 도시권의 일부로 포함된 느낌인데, 지방자치단체 소재지인 쿰보초는 지금도 모스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마을 같은 모습.



쿰보초는 현재진행형으로 시가지가 확장되는 구역인데, 하늘에서 도시의 팽창을 지켜보면 대충 이런 느낌? 새로 만들어지는 주거지역을 보면 무계획적으로 형성되는 곳도 있지만 구획을 먼저 정리하고 조성되는 지역들도 많은 듯.



구역 남쪽 경계를 이루는 하데지아강은 카노 일대를 흐르는 하천 중에선 그래도 나름 강다운 강으로, 최종적으로는 북동쪽으로 600km 떨어진 차드 호수로 흘러드는 강. 이 강은 나이지리아 북부의 주요 수원지로 상류엔 커다란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고 강을 따라서는 드넓은 관개 농지에서 다양한 농작물들이 재배되는데, 반대급부로 하류의 유량이 계속 주는 문제도 발생한다고.



[上][中] 카노 북쪽 외곽, [下] 웅고고 마을

8. 웅고고 Ungogo

면적 214.5km², 인구 601,500명. 쿰보초와 마찬가지로 도시 북쪽에 있는 넓은 구역으로, 한창 시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외곽 지역. 여기도 지방자치단체 소재지인 웅고고는 작은 읍내 정도 크기임.


캠퍼스 전경

구 서쪽의 리지야르자키 지역에는 나이지리아 북부의 대표적 고등교육기관인 바예로 대학교(BUK) 캠퍼스가 있음. 1962년 설립된 BUK는 원래 구시가지 서쪽 성문 바깥에 캠퍼스가 있었는데(현재는 일부 학부가 사용), 이후 더 외곽 쪽에 넓다란 캠퍼스를 새로 조성해서 본캠퍼스로 사용하고 있는 중. 이 학교에는 약 4만 5천 명의 학생과 4천여명의 교직원이 있다고 함.



공항 근처의 파니사우 지역에는 1998년 나이지리아 수출가공지역청(NEPZA)이 지정한 자유무역지대가 조성되었는데... 위성사진으로 보면 입주 업체가 얼마 없는지 다소 휑한 모습. 위성사진으로 보면 2000년대 후반에 가서야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듯 ㅋㅋ;



하늘에서 내려다본 달라 언덕

여기까지가 나이지리아 제2의 도시인 카노의 풍경들. 천 년 동안 하우사-풀라니 왕국의 수도이자 사하라 무역의 거점 역할을 해 왔던 도시는 지금도 나이지리아 북부의 상업적·문화적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는 모습. 도시는 전통 시대 성곽도시와 영국인들이 격자형으로 조성한 행정 중심지(나사라와),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업 지구(파게), 민족별 교외 지역(사본가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찌보면 교과서적 아프리카 도시 모델과 꽤 잘 들어맞는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