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8~2024.03.10


저번 답사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미국 50개주 챌린지라는 숙제 달성(?)을 위해 이번엔 러시모어 산(Mt. Rushmore)이 있는 미답의 영역 사우스다코타 주(South Dakota)로 향했습니다.


다만...

이 러시모어 산이 있는 가장 최근접한 도시 래피드 시티(Rapid City)까지 가는 시애틀에서의 직항편은 당연히 없...고, 그렇다고 경유를 해서 들어가자니 아무래도 주수요처가 아니다 보니 비행기표가 상당히 비싸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알래스카 항공에서 시애틀에서 출발해 몬태나 주의 최대도시 빌링스(Billings)까지 가는 항공편이 있던 덕에, 한가지 꾀를 부려 여기까지만 비행을 하고 빌링스부터는 차를 빌려 하루만에 래피드 시티까지 운전해서 가자는 계산이 섰습니다.


래피드 시티의 거지같은 입지 때문에 그나마 가깝다는 빌링스에서도 약 5시간을 운전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그야말로 Middle of Nowhere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 바로 래피드 시티가 위치한 사우스다코타 주의 서부 지역.

참고로 빌링스와 더불어 이 래피드 시티에서 그나마 가까운 중규모 이상 도시를 꼽으라면 그나마 역시 동쪽으로 차를 타고 5시간 거리에 있는 사우스다코타 주의 최대도시 수폴스(Sioux Falls), 그리고 남쪽으로 6시간 거리에 있는 덴버(Denver)밖에 없다고 보면 됩니다.


미니애폴리스, 댈러스, 덴버에는 래피드 시티로 들어가는 항공 직항편이 있지만, 이 도시들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면 일단 무조건 항공교통으로도 환승 한번을 기본으로 해야하는 심히 거지같은 입지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신세지는 알래스카 항공.



빌링스에 도착할 즈음 되니 저기 멀리 산맥 하나가 보이는데, 사실 저건 산맥이 아니라 저 산의 덩어리만으로 옐로스톤의 화산체 그 자체(...)입니다.

즉, 옐로스톤 화산이 터진다면 저기 있는 저 산체가 한꺼번에 폭발한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곧이어 보이는 빌링스의 시가지.

몬태나에서는 최대도시인 빌링스이지만, 그 몬태나 주 자체가 미국에서 상당한 깡촌 주(...)이기 때문에, 도시 크기는 참으로 보잘것 없습니다...


빌링스 공항에 무사히 착륙하고, 짐을 찾고 렌트카를 빌리러 이동해 봅니다.

그나저나 미국은 이런 소규모 공항일수록 더욱더 깔끔한 경향이 있단 말입니다... ㅎㅎ



예전 옐로스톤 편에서 보셨을 옐로스톤의 그랜드 캐니언을 빚어낸 옐로스톤 강이 도시를 흐르는 빌링스인데, 그래서 그런지 빌링스가 속한 카운티도 옐로스톤 카운티입니다.

이 옐로스톤 강은 몬태나-노스다코타 경계 즈음에서 미주리 강과 합류하고, 이 미주리 강은 세인트루이스에서 미시시피 강과 합류하게 되는 미시시피 수계에 해당하는 강인데, 이 거대한 수계의 상류쯤에 해당하는 만큼 아직 빌링스에서는 강폭이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그리 크지는 않은 공항을 빠져나와


렌트카로 기아 쏘울을 빌렸습니다.




곳곳에 지형이 꽤나 특이해서 인상적이었던 빌링스.

옐로스톤 화산체가 있는 곳에서 갑자기 산체가 절벽을 드러내고 몬태나 초원으로 이어지는 경계에 딱 빌링스가 위치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빌링스 자체에는 크게 뭔가 볼만한 거리가 별로 없어 서둘러 사우스다코타로의 여정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선은 빌링스에서 동쪽으로 약 1시간 정도 가면 있는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horn)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에 대한 사진들을 보여드리기 전에 리틀 빅혼 전투가 무엇인지에 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미국사를 공부해보신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전투의 이름일 것입니다.

다름아닌 피에 서린 미국 백인들의 인디언 정복전쟁의 일부로, 미국 원주민들의 연합군이 미 육군을 개박살낸 몇 안되는 전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전투에서 나오는 이름/민족명이 이 답사기에서 커버하는 지역에 꽤 많이 출몰하는데, 그것의 이유는 미국 원주민 연합군의 민족들이 주로 수족(Sioux, 방언에 따라 다코타(Dakota), 라코타(Lakota)라고도 불림)과 북샤이엔족(Northern Cheyenne)이었기 때문이죠.

이 전투에 참전했던 인물들인 조지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 타탕가 이요탕카(Tȟatȟáŋka Íyotake, 일명 시팅 불(Sitting Bull)), 타슝카 위트코(Tȟašúŋke Witkó, 일명 크레이지 홀스(Crazy Horse))의 이름은 이번 몬태나-사우스다코타 답사기들에 꾸준히 언급될 것이기에 외워두시면 좋습니다.


(크로우족 자치지역(Crow Indian Reservation)의 위치)


당장 이 전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 크로우족(Crow, 크로우족 본인들은 업살로케(Apsáalooke)라고 부름)의 인디언 자치지역인데, 크로우족들은 이 전투에서 조지 커스터 중령이 이끄는 미 육군 제 7기병연대 측에 붙었다고 합니다.

이들도 미국 원주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에 붙은 이유는 다름아닌 원주민 연합군의 주축인 수족/북샤이엔족과 철천지 원수지간이었기 때문인데, 원래 크로우족은 어족상 수어족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사우스다코타의 블랙 힐스(러시모어 산이 있는 그 산괴) 언저리가 삶의 터전이었는데, 동쪽의 라코타족과 남쪽의 알곤킨어족 언어를 쓰는 샤이엔족이 북상하는 바람에 본래의 터전을 잃고 서쪽의 척박한 몬태나로 이주한 이들이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알고보면 원주민들끼리의 이해관계의 역사도 꽤나 복잡한 편입니다.


비록 전투는 미 육군 측이 처참하게 전멸했지만, 이 때의 보답으로 미국 측에서 자치지역을 선물해 준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러웠던... (물론 자치지역 자체는 리틀 빅혼 전투 이전에 생긴 것이긴 합니다만...)



방문자 센터에 차를 대고 내리자마자 보이는 죽 늘어선 묘비들.

사실 이건 리틀 빅혼 전투에서 전사한 자들의 묘지가 아닌 그냥 일반적인 국립묘자인데, 그래서 이름도 커스터 국립묘지(Custer National Cemetery).


이 장소가 예전엔 인디언의 승전보다는 조지 커스터의 순국에 초점이 맞춰진 철저히 백인 중심주의적인 역사관 하에 기념되어오던 곳인 탓에, 이후 미국이 참여한 전쟁의 전사자들 중에 이 곳에 묻히고 싶어하는 미국 군인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전장에 서있는 이 기념비의 이름도 원래는 커스터의 전투 기념비(Custer Battlefield National Monument)였는데, 원주민 단체의 지속적인 항의로 인해 비교적 최근인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때 지금의 이름인 리틀 빅혼 전투 기념비(Little Bighorn Battlefield National Monument)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념비를 사방으로 둘러봐도 원주민들의 것으로 보이는 이름은 쉬이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철저히 백인중심주의적이었던 옛 미국의 단편을 여기서 보게 되네요.


미국 원주민들을 위한 기념 조형물은 이 비석 바로 근처에 조성이 되어 있었는데, 제가 미처 발견을 못했는지 사진을 남기지 못했던...



저 멀리 옐로스톤의 거대한 화산체가 올려다보이는 이 너르지만 황량한 평원이 바로 리틀 빅혼 전투의 전장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이 곳의 방문자 센터에서 NPS 직원으로 일하고 계신 크로우족 한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록 제 보잘것 없는 면상(?)은 가렸지만, 확실히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좀 더 우리같은 동양인들에게 친숙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말씀하시길 본인의 종족이 딱 뭐다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는게, 이미 너무 섞이고 섞여 민족을 구분하는게 현대에 와선 크게 의미가 없어졌다라고 하시더군요...

당장 이 분만 해도 비록 크로우어는 많이 잊으셨지만 크로우족의 정체성이긴 해도 조상 중에 캐스케이드 산맥 지역에 사는 세일리쉬계 민족과 남쪽의 푸에블로인도 있다고 하니, 이미 미국화가 많이 진행된 지금에 와서는 세력이 큰 몇몇 원주민 민족들 이외에는 구대륙에서처럼 민족 구분이 딱딱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가게 되었습니다.



크로우족이 수어족에 속하는 만큼, 수족들의 주거형태인 티피(thípi, 영어 철자론 tepee 혹은 tipi)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니 이게 백인들이 도래하기 전 진정한 미국의 모습(?)이 아닐까 한번 상상...만 해봤습니다 ㅠㅠ


크로우족의 기념품샵 앞에서 휘날리던 미국의 성조기와 몬태나 주기.


사실 리틀 빅혼에서부터 사우스다코타까지는 소요시간이 엇비슷한 두갈래길이 존재하는데, 바로 I-90(90번 주간고속도로)를 타서 와이오밍을 대대적으로 거쳐 래피드 시티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US-212(212번 국도)를 타고 황량한 몬태나 주의 아무것도 없는 동부지역을 거쳐 짧게 와이오밍을 핥고 사우스다코타로 진입하느냐의 두 선택지였습니다.


솔직히 어느쪽으로 가던 상관은 없었던 본인이었지만, US-212쪽이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이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US-212의 정말로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함 그 자체의 풍경.

지나가는 차는 물론 지나가는 쥐새끼 한마리도 없습니다 ㅋㅋㅋㅋㅋ


(북샤이엔족 자치지역(Northern Cheyenne Indian Reservation)의 위치)


이 US-212는 크로우족 자치지역에서 북샤이엔족 자치지역도 훑고 가는데, 그래서 그런지 북샤이엔족이 사는 마을도 몇개 보였습니다.

그렇게 마을과 마을 사이를 가던 중 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 도로를 생짜로 걷는 모습을 발견하고, 히치하이킹을 요구하길래 받아주었습니다.


바로 이렇게 생긴 분인데, 뭔가 먼 거리에서 찍은 탓에 멕시코인(...)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 이 분은 바로 전에 만났던 크로우족의 철천지 원수지간인 북샤이엔족 원주민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래서 그런지 크로우족을 미국 백인들에게 땅을 팔아넘긴 개객기들이란 식으로 얘기하던... ㅋㅋㅋㅋㅋ)


이 분은 신기하게도 영어를 막 엄청 잘하지는 못하던 샤이엔어를 모국어로 쓰시던 요즘 시대에 굉장히 드문 찐 원주민이었는데, 덕분에 샤이엔어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꽤나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복잡한 발음을 가진 언어였던 것으로 기억)


이 분이 경찰 조사를 받으러 전 날 4시간 가까이 옆 마을로 이 황량한 길을 걸어(...)갔다는데, 몽골인들도 그렇고 참 이런 평원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거리감각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분을 그렇게 다음 마을에 내려주고...


해가 슬슬 져가는 몬태나 대초원.


한 주유소가 있는 휴게소에 내려 식사도 대충 해결하고...


주유도 해주고...


불타오르는 노을과


황량한 저녁 느낌의 벌판을 바라보며 다시 가던 길을 서둘렀습니다.


이 주유소가 위치한 곳 자체가 몬태나-와이오밍 주 경계즈음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던지라, 조금만 운전해서 들어가도 금방 와이오밍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와이오밍을 약 15분 정도 운전하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하는 본인의 45번째(워싱턴 DC 포함) 주, 사우스다코타.

참 오기 힘들었습니다...


완전히 해가 져가고 있던 대초원.


US-212는 벨 푸쉬(Belle Fourche)라는 한 깡촌을 지나가는데, 굳이굳이 이 곳을 들린 이유는 바로...


바로 미국 50개주의 국토정중앙점이 이 곳에 있었기 때문이죠.

정확한 중앙점은 벨 푸쉬의 한 사유지 벌판에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기념판을 봤으니 갔다고 쳐 줍시다(?)


이 중앙점은 캔자스에 있는 48개주(알래스카, 하와이 제외) 중앙점보다는 뭔가 본격적으로 더 꾸며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클라스가 다르다! 라고 주장하듯이 말이죠...


뭔가 짜잘하게 잡설이 길었던 이번 편을 마치고, 현재(답사기 시점)까지의 미국 50개주 챌린지의 진행상황을 올려보며...

다음 편은 본격적으로 45번째 주 사우스다코타를 돌아다녀 보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