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city/102593001 에서 이어집니다.


Lost Mine Trail의 경우 빅 벤드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하이킹 코스 중 하나이다. 사실 Chisos Basin 지역의 교통을 통제하는 이유도 Lost Mine Trail 의 인기가 한 몫하고 있다. 주차 공간이 워낙 협소하다 (약 20대가 안되는 것으로 기억). 빅 벤드를 방문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차량을 통해 방문하기에 약 20개의 주차공간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다행히 차로 5분거리의 캠핑장에서 밤을 보냈기에, 오전 7시 30분에 주차장에 도착하여 아침을 챙겨먹고 하이킹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 국립공원 하이킹 코스는 루프형과 인-앤-아웃형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Lost Mine의 경우 인-앤-아웃형으로, 처음 2.4마일을 오르막 (약 1,100ft의 고도 상승) 후 올라갔던 길을 도로 내려오는 코스이다. 약 2시간에서 3시간정도 걸리는 코스이다. 보통 오르막으로 시작하는 인-앤-아웃 트레일의 경우, 나는 풍경 감상이나 사진촬영보다는 하이킹에 집중하는 편이다. 가급적 빨리 올라가서 체력 소모를 줄이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풍경을 실컷 감상해준 후, 내려오면서 사진을 찍는 편이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거의 쉬지 않고 스피드런 수준으로 쭉쭉 정상을 향하였다. 물론 날씨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딱히 감상할 만한 뷰도 없었기 때문인것도 있었고



약 1시간 20분가량 걸린 끝에 정상으로 추정되는 곳에 다다랐다. 원래대로라면 굉장한 뷰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지만,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도 찍고 대충 둘러보면서 간식을 먹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약 1/10 마일을 더 가야 진짜 이 트레일의 끝이 나온다고 하여 정상으로 추정되는 곳 일대에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우루루 이동하였다.



트레일에 진짜 끝에 도착하긴 했지만, 기대한 뷰는 볼 수 없었지만 안개가 낀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신선들이 노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먹고 있었던 간식을 마저 먹었고, 같이 이동했던 다른 등산객들도 자리를 잡고 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조금 더 풍경을 감상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아랫배에 불길한 신호가 감지되었다.


아침에 대변을 보고 나오지 않고 급하게 나와서일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일단 즉시 내려가기로 하였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2.4마일, 올라올 때 1시간 20분 정도 걸렸으니 내려갈때는 약 50% - 75%선인 40분 - 1시간정도가 걸릴 예정이다. 그리고 주차장에는 화장실이 없어, 가장 가까운 화장실은 캠프그라운드의 화장실이 될 것이다. 예상 이동시간은 넉넉하게 잡으면 약 15분 정도. 따라서 최소 50분 이상은 버텨야하는 상황.


5분도 지나지 않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30분도 버틸 수가 없는 위급상황이라는 것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아랫배에 성난 녀석들을 품고 하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크게 2가지 옵션이 있었다.

1) 일단 몸을 숨겨서 처리하기

2) 버틸 수 있을때까지 버텨보기


1)번 안을 실행하기 위해 가방을 뒤졌는데, 여분의 비닐봉지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일을 보고 그 자리에 내버려두거나, 아니면 가방안에 해결하는 것인데, 가방은 얼마전에 새로 구입한 가방이라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그 안에 카메라나 다른 장비가 있어 처치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보고 그 자리에 내버려두는건 사실상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미국 국립공원 내에서 정해진 트레킹 코스를 벗어나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프론트컨트리/백컨트리 여부에 관계없이) 거기에 쓰레기를, 그것도 인분은 유기하는 것은 심각한 행위로 간주될 것이다. 이미 그랜드 캐년에서 속도위반으로 레인저에게 단단히 혼난 경력이 있어, 1)번 안은 실행하기가 너무 꺼려졌다.


따라서 남은 선택지는 내 예감이 틀렸길 바라면서 최대한 빨리 하산하는 것. 정말 풍경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미친 사람처럼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레이드가 심한 구간은 없었다. 트레일은 보통 한사람 또는 두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폭이라, 익스큐즈미를 외치면서 미친 사람처럼 다른 등산객들을 추월하였다. 거의 등산로를 날라다녔다. 그럴때마다 고비의 순간들이 여러번 있었는데, 그래도 바지 뒤를 부여잡으면서, 거의 탈출 직전인 녀석들을 도로 집어넣는다는 심정으로 움켜잡으면서 내려갔다.


그렇게 15분을 미친 사람처럼 내려간 후, LTE 신호가 잡혀 지도를 켜봤다. 이제 막 1마일을 내려왔고, 앞으로 1.4마일 정도를 더 가야 한단다. 예상 시간은 35분. 이때부터 머릿속 한군데에서

"그냥 포기하자"

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5분 정도 더 걸어갔지만, 아직도 갈 길은 까마득했다. 그리고 내 정신도 아득해지면서, 엉덩이쪽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수치심과, 안도감, 그리고 쾌감, 3가지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 중 의외로 쾌감의 비중이 높았는데, 와중에 이성적으로는 프로이트가 말한 anal stage 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수습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바지가 남색으로 상당히 어두운 색이었으며, 아침 온도가 낮았던 탓에 남방, 플리스, 그리고 윈드브레이커까지 3개의 상의를 챙겨왔다. 일단 생리터진 여자들이 수습하는 것처럼, 3개의 겉옷을 허리춤에 묶은 후 조심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냄새가 상당히 지독해서, 다른 등산객이 보인다 싶으면 멀찌감치 비켜서서 풍경 감상하는 척을 하며 멀리 떨어지기를 기다린 후 내려가기를 반복하였다. 운이 좋게도, 팬티는 드로우즈 타입이라, 불쑥 나온 친구들이 대량으로 탈출하는 것을 그나마 잘 막아준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시간이 이른 오전이라, 밤사이에 야생 동물들이 여기저기에 배설을 한 덕에, 조금 묻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완주 약 10분정도가 남은 시점에, 앞서 하산하던 대가족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들을 추월하여 가려던 순간, 그룹의 리더로 보이는 할머니가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원래대로라면 사진 요청은 흔쾌히 들어주는 편이지만, 정말 찍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얄궂게도 주위에 이 대가족을 제외한 어떤 인원도 보이지 않아, 사진이 줄 수 있는 의미를 잘 아는지라 결국 다양한 구도로 사진을 찍어주고,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요청을 정중히 거절한 채 무사히 차로 복귀하였다. 


이제 남은건 운전을 하여 캠프그라운드로 복귀하여 화장실로 가 뒷처리를 하는 것이었다. 걸어다닐 땐 몰랐는데, 운전을 하려고 좌석에 앉으니 양이 참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엉거주춤하게 앉은 채로 운전을 하여 위험하였지만, 다행히 거리가 멀지 않아 무사히 캠프그라운드에 도착하였고, 챙겨온 물티슈, 갈아입을 옷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첫날 밤을 보낸 Chisos Basin Campground의 경우 샤워 시설은 없고 화장실만 있어, 여기서는 완전한 처리가 어려웠다. 거의 새것에 가까웠던 물티슈를 전부 사용하여 뒷처리를 하였다. 나온지 시간이 좀 되어 일부는 굳어있어서, 물티슈가 참으로 유용하였다. 15분간 화장실에서 하반신을 닦아낸 후, 옷을 갈아입었다. 바지와 속옷, 그리고 남방을 둘둘 말아 캠프그라운드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믿기 어려웠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 우선 물티슈를 더 사서 더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날 방문했던 visitor center 옆 general store에 가서 물티슈를 3팩을 사서, 화장실로 가 2팩을 다쓰고 더 닦아냈다. 


그리고 나서는 다음 일정을 고민했다. 여기서 현실 부정해봐아 달라질 것은 없고, 스스로에게 밑바닥을 보인 이상 여기서 즐길 것은 최대한 즐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는 2일차에 빅 벤드의 최고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외곽에 위치한 산타 엘레나 캐년을 가려고 했지만, 뜻밖의 배설 활동 및 뒤처리로 시간도 지연되었고, 무엇보다 샤워 시설이 갖춰진 리오 그란데 지역으로 가서 샤워를 하는게 낫다고 판단, 일정을 바꿔 리오 그란데 지역으로 향했다.


2차 물티슈 뒷처리로 한결 나아진 청결상태에 만족하여, Dugout Wells 지역을 경유하기로 하였다.

빅 벤드의 여타 인공 구조물과 마찬가지로 과거 1900년대에 랜처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고, 메인 도로에서 비포장 도로로 살짝 빠지면 갈 수 있다.


NPS 구역 내에서 네이쳐 트레일은 웬만하면 하는게 좋다. 난이도가 쉬운 반면 전시물이 많아서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 동식물 구성, 역사 등에 대해 집약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 빅 벤드의 경우 치와완 사막의 일부라서, 소노란 사막의 사와로, 모하비 사막의 조슈아 트리에 필적하는 식물로는 오코티요가 널리 자라고 있었다.

오코티요의 모습. 얼핏 보면 죽은 나무 같은데, 뾰족뾰족한 가시를 통해 건조한 환경에 적응하였다.

하트 모양으로 자란 프릭클리 페어 선인장. 오코티요와 마찬가지로 치와완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어떤 새가 선인장에 둥지를 틀어놓았다.

오코티요, 프리클리 페어, 그리고 솟아오른 메사 타입의 지형.


가벼운 하이킹을 마치면서 지역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었으니, 이제 샤워를 할 시간.

리오 그란데 빌리지로 가서, 샤워를 하였다. 샤워는 General store 에 붙어있는 건물에서 가능하고, 하루 중 청소시간인 오전 9시를 제외하고는 23시간 사용 가능하다. 2불을 내면 5분 가능하고, 샤워기 옆에 동전 투입구가 있어 동전을 넣으면 연장 가능하다.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찬물도 잘 나와서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서는 인근의 국경도시 보키야스를 보러 갈 준비를 하였다.


보키야스 검문소.

보통 미국 국립공원 안에는 NPS 직원들이 대부분이고, 관할 구역이 겹치는 경우 BLM이나 USFS, FWS 등 자연 보호와 관련된 부서 직원들을 종종 볼 수 있지만, 빅 벤드의 경우 국경에 있다는 점 때문에 Border Patrol 도 볼 수 있고, 검문소도 있기 때문에 CBP도 상주하고 있다.

건물 안에 들어가면 CBP 직원은 서류를 검토하고, NPS 직원은 국경을 넘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볼게 뭐가 있는지에 대해 브리핑을 해 준다.


서류 검토가 끝나면 CBP 직원이 오케이 사인을 주고,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 약 5분 정도 걸어가면, 리오 그란데를 넘어가 멕시코로 갈 수 있다.

강 수위가 높은 경우 배를 노를 저어 지나가는데, 이렇게 수위가 낮은 경우 그냥 배를 끄는 방식으로 사람을 실어나른다. 비용은 왕복 5불인데, 이렇게 수위가 낮을 경우 원하는 사람은 돈을 지불하지 않고 강을 건너가도 괜찮다고 한다.

강을 건넌 후 약 0.7마일을 가면 보키야스 델 카르멘에 갈 수 있는데, 걸어가도 되고, 말이나 트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나는 걸어서 이동했다.

마을에 도착하면 이렇게 흰색 컨테이너가 보이는데, 여기서 입장료 같은 것을 징수하고 (약 4불정도였던듯) 팔찌를 채워준다. 팔찌를 찬 사람은 외국인, 팔찌가 없는 사람은 내국인이다.

원래 미국-멕시코 국경이 빈부격차를 잘 드러내지만, 이 곳은 유난히 그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학교의 모습. 공휴일이라 학교는 텅 비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 전적으로 방문객에게 생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기념품 노점이 꽤 많았다.


NPS 레인저가 추천해준 식당. 가격은 미국에서의 3분의 1 수준이다.

가게 주인은 미국인을 많이 상대해서인지 영어가 아주 유창했다.

치와와식 케사디야. 맛있고 간편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아이들도 기념품 판매에 동원된다.

배를 끄는 멕시코 아저씨의 모습.

미국 검문소로 다시 복귀하는 길.


미국 검문소에서는 고기류나 과일류의 물품을 반입했는지 짐 검사와 서류 검사를 간략하게 한 후 통과시켜준다. 사면 안되는 품목에 대해 사전에 자세히 안내해주니 잘 새겨듣자.


이어서 보키야스 캐년 트레일로 향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끊고 다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