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개혁개방 직전의 모습. 

중국인들의 옷은 어두운 색의 인민복에 여자는 땋은머리 혹은 단발만 가능했음. 




개혁개방 초기 상하이의 여성들. 

개혁개방과 함께 국가와 당은 더이상 개인의 의상에 터치하지 않았으며, 순식간에 해외의 유행이 타고 들어옴. 




수도 베이징의 옥외 상업광고. 

당의 선전만을 위해 사용되던 옥외광고판이 자본가들의 상업광고를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음. 




자본주의 일본의 기업 도시바의 광고판




한동안 문을 걸어잠구었던 중국이 개방하면서 글로벌 시민으로서 올바른 의식수준을 함양시키기 위한 캠페인이 대거 진행됨




중국공산당 베이징시위원회는 수도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문명적 품위에 대해 특히 많은 캠페인을 진행함 




더이상 국영백화점이 아닌 상업 백화점은 거래가 활발했고, 신제품과 할인정보를 표기하는 전광판도 설치됨





지루한 춤만 추던 베이징시 인민문화궁전에서는 젊은이들이 해외 춤을 추며 데이트를 하게 되었음. 




텔레비전에도 상업광고가 나왔는데

특히 전자제품 광고가 대거 등장하였음





베이징대학 조선문화연구소에는 원래 평양에서 발간된 서적이 대다수였으나

서울에서 발간된 서적이 대거 보이기 시작함





상하이시의 멋쟁이 청년들

뒤로 고층건물이 대거 건설 중임





동방명주 공사중





공산화 이후 다시 상업지구로서 번화하기 시작한 상하이 시내




첫 개혁개방 도시로 개발되고 있는 선전. 

인구 30만 농촌 선전은 이 과정을 거쳐 지금은 인구 1000만의 세계적인 IT거대도시가 되었음. 





선전에 중국 최최로 문을 연 맥도날드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광저우




1990년 락 콘서트. 





베이징시에 처음 등장한 KFC





텔레비전 공장의 모습. 


덩샤오핑은 중국의 경제모델을 ‘세계의 공장‘으로 정했고, 글로벌 대기업의 물건을 생산하며 발전했음.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전략적제휴나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하여 해외 기업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했고, 지금은 자체 기술화에 성공하여 ’세계의 공장‘에서 벗어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