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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아 정원의 개인공간에 묻혀 있었다고 함.


폼페이 유적을 발굴할때 문헌자료도 발굴되었음을 아는가? 물론 중세 코덱스 발명 이전이라 죄다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인데 그래도 서방 고대 문헌 자료가 부족한 차에 학자들은 싱글벙글하면서 두근거리며 이것을 펴보게 되는데.. 


펼치는 순간 부서져서 아주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랬다.

베수비오 화산은 동식물과 인간 뿐만 아니라 파피루스 두루마리까지 아주 바삭하게 고열로 잘 구워놓은 것이었으며 그렇게 첨에 아무 것도 모르던 고고학자들 손에 귀중한 파피루스들이 산산조각 나서 영원히 요단강을 건너버린다. (가루가 났으니 읽을 수가 없게 됨.)

그라서 찾아낸 파피루스는 일단 살아남은 것도 펼칠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펼쳐 보지 않으면 읽을 수가 없으니 역시나 내용이 뭔지 알 도리가 없으니 학자들은 대략 난감했다.

이에 학자들은 일단 엑스레이로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단층촬영으로 스캔을 떠놓으면 나중에 기술이 발전하던가 해서 누가 해독하지 않겠냐며 엑스레이로 36겹에 달하는 두루마리를 정밀 스캔한 자료를 공개하며 이거가지고 함 판독 ㄱㄱ라며 공모전을 열었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가 도전하며 21세기에 발달된 AI기술을 동원, 마침내 판독을 성공시킨다. 첫번째로 판독된 두루마리의 내용은 고대 에피쿠로스 학파 저술이었다. 중세에 교회가 쾌락주의 ㅈ까를 선언해 자료가 실전되어서 단 두 권의 당시 문헌기록만이 남았고 달랑 이것만으로 연구하던 차에 학자들에겐 귀중한 1차 사료가 나왔으니 가뭄의 단비 그 자체였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찻아낸것이 이번 플라톤의 정확한 무덤 자리라고 한다.



플라톤이 세웠다는 고대의 학원 아카데미아의 유래를 아는가? 사실 아카데미아는 사람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지금으로치면 세종로학원 정도쯤 되는 이름인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서방세계의 대학교육 기관의 대명사가 되면서 오늘날 대학원이나 사관학교등을 의미하는 아카데미의 유래가 되었으니 여간 기합이 아니었다! (이외에 지명이 일반명사화된 것은 도자기를 의미하는 차이나가 있다)

그렇다면 왜 폼페이서 발굴된 아카데미아의 플라톤 무덤 위치에 대한 기록이 중요한지 궁금할 것이다?

이유는 해당 기록이 기록되었을때 아카데미아는 현역으로 정상작동하던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즉 아카데미아가 존재하던 당시에 쓰여진 귀중한 1차 사료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유학가듯 로마인들도 그리스로 유학을 갔다. 

물론 로마시대에 작성된 자료라면 플라톤사후 수백년 뒤에 작성된 기록이긴 하지만 폼페이 유적에서 탄화된 채로 발굴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시대에 작성된 기록물이란 보장은 없다. 즉 플라톤이 사망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작성된 문서가 폼페이에 보관(혹은 필사)되었다가 탄화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니 고고학자들은 좋아 죽을 수 밖에 없다.


아카데미아 폐교는 플라톤이 아카데미아를 설립한지 1000년 후 동로마제국 유스티나아누스 대제 때 비기독교적인 교육기관을 폐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입장에선 '고리타분한 구닥다리 학문 연구하는 불온 사상 퍼뜨리는 대학대신 최신 학문(신학) 가르치는 새 대학교 세웠으니 거기 오쇼' 였을 것이다.


참고로 아카데미아 위치는 어딘지 현대에 알고 있다. 

여기가 현대의 아카데미아 유적지다. 지금도 한창 발굴중이다. 그렇게 때문에 플라톤이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아카데미아가 현역이었고 플라톤 사후 300년 후 시점 사람들이 쓴 기록을 손에 넣은 이상 플라톤 무덤은 이제 찾기가 무지 쉬워지는 것이다.


즉 눈 감고 땅 쑤시는 것보다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좌표 따고 거기부터 바로 삽을 꼽는 것의 난이도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니 여간 기합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