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보면 비종교성이 정말 강한 나라임. 


중국의 철학자인 양수명(전 북경대 교수)의 <동서 문화와 철학>에서 나온 구절을 인용하면 


세계에는 또 중국인만큼 종교에 무심한 민족도 없다. 중국은 종교를 만들어내지 않았고 또 외래종교도 , [중국에 들어오면] 반드시 그 모습을 바꾸거나 혹은 정신적으로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였다. (불교가 그 모습을 바꾸었고, 기독교는 끝까지 중국정신의 중심에 들어와 철학과 문학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이 구절을 서울대 철학사상 연구소에선 이렇게 분석했음. 


전통 중국은 서구나 인도와 비교할 때 특별히 종교의 역할이 미약하였다는 점이 중국적 전통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어 왔다. 가령 풍우란 같은 사람은 중국에 유불도 삼교가 있다고 말해지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았다. 풍우란에 의하면 철학으로서 도가는 자연을 따르라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하여 자연에 역행하는 방법 즉 불로장생술을 가르치는 종교로서의 도교와 다르다. 불가에도 종교적 신앙으로서의 불교와 철학적 학문으로서의 불학이란 두 측면이 있으며 중국의 지식층은 불교보다는 불학에 더 흥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가사상이 중국인의 생활관념 속에 깊숙이 배여 있어서 마치 일종의 종교처럼 보이지만 유가사상은 결코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 제도화 조직화된 종교의 결여가 중국문화의 특징이라고 보는 관점은 대체로 공인되는 견해로서 양수명도 그러한 견해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적 특징에서는 이러했음. 현대에 들어서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문화대혁명(이때 거하게 종교인을 탄압함)을 일으키고 아직까지도 종교를 탄압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기독교 인구가 공식적으론 중국 인구 전체의 1~2%에 불과함. 



일본에서는 1549년에 기독교가 성 하비에르에 의해 들어오고 처음에는 번성을 누렸음.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포르투칼 선교사를 추방시킨 사건 이후로 기독교는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됨. 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에서도 계속 이어져왔고 '시마바라의 난'이라는 무력 충돌도 벌어짐. 


이 탄압은 1873년에 폐지되었고 선교사들이 들어왔지만 세속주의적인 일본 지도자들은 여전히 기독교에 회의적이었고 2차대전이 끝나기까지 국가주의자와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기독교는 힘을 못 쓰게 됨. 


2차대전 이후에는 여전히 미국(기독교와 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다는 점, 문화적으로는 일본 특유의 애니미즘(신토) 문화와 기독교와의 마찰(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선 이를 두고 '성 하비에르는 기독교의 신을 대일(大日)로 번역했지만 일본인들은 인간을 초월한 신이라는 존재를 상상하거나 인식할 수 없다.'라고 표현함. 또한 엄격한, 부성(父性)적인 신의 모습은 일본 문화와 잘 맞지 않는다 라고 말하기도 했음.)등을 이유로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1%밖에 안됨. 




출처: https://philinst.snu.ac.kr/html/menu6/extra_number.php 의 <동서 문화와 철학>


https://japaneselaw.sydney.edu.au/2018/12/japanese-legal-history-culture-and-hidden-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