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이 조선 제2의 도시였어도, 조선의 중심인 경성과는 규모차이가 크긴 할 수밖에 없으니


고등교육기관도 매우 부족했고

기타 거대 홀이나 극장 등도 없었고

영화 스튜디오랑 인력도 없어서 해방후 영화를 못만들다가 평양에 국립영화촬영소가 발족하고 1949년에 만든 ‘내 고향’이 첫 영화였음. 


당연히 주요 인력풀도 처음에는 서울에 비해 매우 부족했다고 하니…


소련군정기 및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시절은 이러한 수도로써의 인프라를 평양에 빠르게 구축하는데에 많은 힘을 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