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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3일의 날이 밝을 무렵에 동쪽을 향해 바라보니 신라국의 서쪽 산들이 보였다. 바람의 방향이 정북풍으로 바뀌어, 돛을 옆으로 기울여 동남쪽을 향하여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갔다.


9월 4일

4일 날이 밝을 무렵에 이르러 동쪽으로 산들이 있는 섬이 보였다. 높거나 낮거나 하며 이어져 있었다. 뱃사공 등에 물었더니 이르기를 “신라국의 서쪽 웅주의 서쪽 땅인데, 본래는 백제국의 땅이다.”라 하였다. 하루 종일 동남쪽을 향해 갔다. 동쪽과 서쪽에는 산으로 된 섬이 연이어져 끊이지 않았다. 

밤 10시가 가까워질 무렵 고이도에 이르러 정박하였다. 무주의 서남 지역에 속한다. 섬의 서북쪽 100리 정도 떨어진 곳에 흑산이 있다. 산의 모양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듣기로는 백제의 셋째 왕자가 도망해 들어와 피난한 땅인데, 지금은 300, 400 가구가 산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9월 6일
오전 6시경에 무주의 남쪽 땅인 황모도의 니포에 도착해 배를 정박하였다. 이 섬을 또는 구초도라고도 부른다. 너댓 사람이 산 위에 있기에 사람을 보내어 잡으려 하였으나 그 사람들은 도망가 숨어버렸으므로 잡으려 해도 있는 곳을 알 수 없었다. 이곳은 신라국의 제 3재상이 말을 방목하는 곳이다. 

고이도로부터 구초도에 이르기까지는 산들이 있는 섬이 서로 이어져 있으며 동남쪽으로 멀리 탐라도가 보인다. 이 구초도는 신라 육지로부터 바람이 좋은 날이면 배로 하루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잠시 뒤에 섬지기 한 사람과 무주태수 집에서 매를 키우는 사람 2명이 배 위로 올라와서 이야기하기를 

“나라는 편안하고 태평합니다. 지금 당나라의 칙사가 와 있는데, 높고 낮은 사람 500여 명이며 경성에 있습니다. 

4월 중에 일본국 대마도의 백성 6명이 낚시를 하다가 표류하여 이곳에 이르렀는데, 무주의 관리가 잡아 데리고 갔습니다. 일찍이 왕에게 아뢰었으나 지금까지 칙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무주에 감금되어 본국으로 송환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여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병으로 죽었습니다.”라 하였다. 

6일과 7일에는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없었다.


9월 8일

나쁜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고 두려웠으나 바람이 없어서 떠날 수가 없었다. 배의 사람들은 거울 등을 바치며 신에게 제사 지내고 바람을 구하였다. 승려 등은 이 섬의 토지신과 대인신, 소인신 등을 위하여 향을 피우고 다 같이 본국에 도달할 수 있도록 불경을 외며 기원하였다. 즉 그곳에서 이곳 토지신과 대인신·소인신 등을 위하여 ≪금강경≫ 100권을 전독하였다. 

오전 4시경에 이르러 비록 바람은 없었으나 출발하였다. 포구를 겨우 빠져 나가니 서풍이 갑자기 불어왔다. 곧 돛을 올리고 동쪽을 향해 갔다. 마치 신묘한 이치가 있어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산들이 있는 섬을 따라 그 사이를 가니, 남북 양쪽에 산과 섬으로 겹겹이 겹쳐져 느긋하게 퍼져 있었다. 

오전 10시가 될 무렵 안도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 이곳은 신라의 남쪽 땅으로 왕실에서 말을 방목해 기르는 산이다. 동쪽 가까이에는 황룡사의 장전이 있는데, 띄엄띄엄 인가 두세 군데가 있다. 서남쪽으로는 멀리 탐라도가 보인다. 

오후에는 바람이 다시 좋아져 배를 출발시켰다. 산들이 있는 섬을 따라 신라국의 동남쪽에 이르렀다가 큰 바다로 나아갔다. 동남쪽을 바라보며 나아갔다.


신라 지역 부분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당시 신라 지역들의 모습을 기행문의 형식으로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인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