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글은 아니고, 혼자 정리하려고 쓴 글임. 집단지성으로 정리를 도와주신다면 매우 감사해 하겠습니다.


양주(현재 광진구)

 - 북한산군(고구려) → 한양군(신라) → 양주(고려)

 - 신라 당시 속현으로 황양현(현재 남양주)→풍양현(고려), 우왕현(현재 행주)→행주(고려) 있었음.

견주(현재 양주시 고읍동)

 - 매성현(고구려) → 내소군(신라) → 견주(고려)

 - 신라 당시 속현으로 중성현(현재 적성)→적성현(고려), 파평현(신라~고려) 있었음. 


1018년 견주가 양주 밑으로 예속됨. 견주 밑 속현들이 어찌됐는지는 잘 모르겠음. 

1067년 양주를 남경으로 고치고 유수관을 둚.  

고려사 기록에 文宗以楊州爲南京 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양주=남경인 건 맞음.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양주도호부 밑에 관할로 원평도호부(파주), 와 현 6개(고양, 교하, 임진, 적성, 포천, 가평)가 속해 있었다는 걸 보면,

양주⊃(견주, 풍양, 행주, 적성, 파주) 일 수도 있다는 건 이해가 가는데, (현재 서울시 동북 지방은 양주의 직할령 정도로 생각해도 될듯)

견주가 양주에 예속되면서 견주⊃(적성, 파주) 라는 종속관계가 깨진 건지는 확실하지 않음....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양주도호부 밑에 속한 현들은 따로 설명하고 있고, 양주도호부 문서에서 견주, 풍양에 대해서도 설명하는걸 보면, 견주, 풍양은 지방관 없는 속현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고려 초기에 양주에 예속시켰어도 감무를 설치했던 견주가 언제 완전 속현화(?) 되었는지도 불투명...


어쨋든 기존 양주는 현재 광진구 일대이고, '양진'이라는 지명에서 어렴풋이 그 흔적이 남았는데,

1406년 양주 부치를 견주(양주시 고읍동)로 옮기면서, 광진구 일대는 '고양주면'이 되었고,

1506년 다시 양주시 유양동 일대로 옮기면서 견주 지역이 '고읍동'이 됨.


고려/조선시대 행정구역의 종속관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정리 좀 도와줘요.....



+) 개인적 뇌피셜 추가

세종실록지리지 한성부 문서에서

"양주(楊州)에 목멱양(木覓壤)이 있는데, 가히 도읍을 세울 만합니다."

라고 써있는걸 보면 목멱양(현재의 사대문안이겠지)이 양주읍치는 아닌 거 같음. 아니었으면 양주로 옮기자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을까. 굳이 양주에 있는 목멱양이라는 지역이 좋더라라고 서술할 이유는 없었을 듯. 

그러면 양주=남경이라고 했을 때, 남경 역시 현재 광진구 밑이지 않았을까..... 아님 말고ㅎ

사대문안은 도선센세가 왕십리 하신 후에 '목멱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번성하게 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