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화천읍의 마을 소개로 찾아온 돚챈릴레이 영서 북부지방(춘천권) 담당 @부여 라고 합니다.


일단 어제의 지도를 다시 봅시다.


< 화천읍 법정리 지도 >


< 화천군 마을 지도 >
cf. '화천'은 보통 '시내'로 통칭됨.
(저번 지도에서 배머리를 중2리로 넣어버리는 큰 실수를 해버렸음)

그럼 각 지역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음.

1. 시내 (마을지도 화천, 상2리, 중2리 일대)
화천읍 인구의 약 80%가 거주하는 지역. 이외에도 하남면 용암리, 위라리가 시내권으로 분류됨.
(하남면 강 동부 지역은 하남면이 아니라 화천읍인 수준)
참고사항으로, 행정리 상2리는 상리의 외곽지역 뿐이 아니라 신읍리의 남쪽까지 포함됨.

아리에 군청, 경찰서, 화천유치원과 화천초등학교가, 하리에 화천시장, 읍사무소, 화천정보산업고(구 화천실고), 화천시내버스터미널, 화천시외버스터미널이, 상리에 데시앙아파트가 있고 중리에 신아아파트와 화천보건소가 있는 화천 제1의 번화가이자 군의 심장. (화천중 · 고등학교, 화천소방서는 하남면 위라리 소재)

서쪽으로는 서화산, 북쪽과 동쪽으로는 화천천, 남쪽으로는 북한강이 흘러 확장이 불가능한 시내의 지형 때문에 시내권은 북쪽 신읍리와 남쪽 위라리, 용암리 방향으로 성장하는 중이며 최근 화천소방서가 위라리로 이전함.

- 하리 (下里)
하리는 화천 상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음. 대부분의 유흥시설, 화천읍사무소, 시내버스터미널, 시외버스터미널, 중앙로, 화천삼거리, 화천대교오거리, 붕어섬, 화천교육지원청, 화천향교, 화천실고, 화천교육도서관, 화천농협 등 화천을 상징하는 대부분의 시설들이 하리에 집중되어 있음. 옆동네 양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

위라리 방향으로 부교 하나와 화천대교가 있으며, 아리 방향으로 화천교가, 상리 방향으로 화천터널이 있고 산천어축제 때 빙등광장이 열리는 서화산 다목적광장이 2013년에 준공되었음. (옛날에는 빙등광장을 현재 하리 화천농협 안쪽 산천어공방과 주차장이 있던 곳에서 했음)

여담으로, 화천농협 지하1층에는 결혼식장이 있는데 우리 부모님도 거기서 결혼식을 올리셨음.

- 아리 (衙里)
전국 유일의 아리. 화천군청과 화천경찰서, 화천초등학교와 화천유치원(구 화천유아원) 등이 있는 화천 행정의 중심지.
화천경찰서는 철원경찰서를 그대로 빼다박은 것처럼 생겨서 (양구군청/양구경찰서도 화천군청/화천경찰서와 비슷하지만 이정도는 아님) 되게 옛날에 지은 느낌이 나지만, 실제로는 90년대에 경찰서에 불이 나서 아예 갈아엎고 다시 지었다고 함ㅋㅋㅋㅋㅋㅋㅋ

화천초등학교와 화천유치원은 급식실과 운동장을 공유하고 건물이 연결되어 있지만, 화천유치원은 특이하게 단설임. 병설이라고 보기에는 규모도 엄청나게 크고, 역사도 깊어서 어머니와 이모가 내 선배일 정도...

화천 최초의 아파트인 낙원아파트가 아리에 소재하는데, 과거와는 달리 산천어축제 도색으로 조금 더 화려해진 모습.

참고로 아5리는 시내권이 아니며, 대이리에 조금 더 가까운 대이리와 시내의 중간지점임. 아5리와 대이리의 경계 일대에는 나는 좋아하고 어머니는 싫어하시는 냉면집이 있음.

- 중리 (中里)
가운데 마을이라지만 시내에서 가장 존재감없는 동네. 중리에서 화천천 건너편 지역은 '배머리'라고 이름이 아예 따로 있기 때문에 존재감이 거의 없지만 2011년 새로 준공된 화천보건소가 존재감을 겨우겨우 때워주고 있음. (구 화천보건소는 화천군지식산업센터 자리인데, 옛날에는 여기 국토관리청이 있었음(홍천국토 북부지소). 2009년 당시 화천유치원에서 부모님이랑 서울에 다녀온 아이 때문에 신종플루가 퍼졌었는데, 나도 당시 2차감염자 중 하나라서 보건소를 갔던 기억이 있음. 그리고 건물이 매우매우 후져서 신보건소 보고 유리궁전이라며 감탄했었음ㅋㅋㅋㅋㅋㅋ)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어머니 초1~2때까지는 배머리 가는 다리는 나무다리라 비가 오면 위험했다고 함. 그래서 비가 오면 선생님들이 '배머리 일어나! 집에 가!'라고 했다고 함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후에 99년도에 군인아파트였던 신아아파트가 지어지고, 지금은 산수화터널이 생기면서 풍산리 방향으로 가는 경유지가 되었음.


- 상리 (上里)
윗마을. 과거에는 여기도 중리만큼이나 존재감없는 곳이었지만 헌병대가 이전하고 거기 군인아파트인 데시앙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전세역전에 성공함. 화천성당, 화천 3.1운동 기념공원, 화천문화원, 화천문화예술회관 등이 이곳에 있으며, 신읍리 최남부까지 행정리 상2리라 옛날에는 그동네도 상리인줄 알았다는...


- 대이리 (大利里)
한자 독음 그대로 읽으면 '대리리'지만 대이리로 읽음. 과거에는 구만리 대부분도 대이리에 속해 있었으며, 지금도 구만리는 대이리와 매우 밀접한 관계. 강 건너면 구만리에는 수로식 발전소의 대명사인 화천수력발전소가 있고, 일제 설계, 북한 교각, 남한 상판이라는 승일교보다도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근현대사의 산증인 구만교도 여기 있음. 과거에는 대붕초등학교가 있었지만 1999년에 폐교되었음.


- 신읍리 (新邑里)
남부는 화천의 택지지구, 북부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의 형태를 띄는 마을. 신읍1리 동지마을 또는 동지화마을을 기점으로 두 방향의 마을로 나뉘며, 서쪽 461번 지방도 방향으로는 보래골과 파수동이, 동쪽 율대로 방향으로는 율대리, 사구가 있음.

본인이 이 마을 보래골 인근 출신.

지금은 학교가 없는 이 마을에도 옛날에는 학교가 있었는데, 동지화에 신명분교가, 율대리에 율대분교가 있었으나 신명분교가 1999년에, 율대분교가 1993년에 폐교되었음.

과거 1919년 3월 23일과 28일, 3.1운동 시위가 이 지역과 풍산리에서 일어났고, 시위 참가 연인원이 무려 3천 명 가까이 되었다고 하니 당시 화천의 인구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시위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음.

노신로 방향으로는 포병연대와 칠성유격장이 있고, 율대로 방향으로는 637포병대대, 8연대 1대대 등의 부대가 있어서 한적한 마을이고 버스가 타 노선과 연계되지 않음에도 1일 4회나 다님.

- 풍산리 (豐山里)
풍산리는 국내에서 3번째로 큰 면적을 가진 법정리로, 남부 구 풍산리 지역에만 민간인이 거주하고 북부의 구 수상리 지역에는 민간인이 거주하지 않음. 여기에 읍내 유이한 초등학교인 풍산초등학교가 있으며, 읍내에서 새덕이로나 산수화터널, 처녀고개를 지나면 이 마을로 들어올 수 있음.

흠사리, 호음동, 풍산마을, 평촌, 전연동, 상승마을, 우장동, 해안동 등의 마을이 있고, 한묵령로 방향에 7사단 신병교육대가 위치하며, 이 일대에 3연대가, 수상리 일대에 8연대가 위치함. 그래서 인구에 비하면 버스가 무진장 많이 다니는 동네이기도 함. 일 20회가 넘게 다니는 지역도 있으니 일 4회 다니던 우리 동네는 안습ㅠㅠ

풍산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해산령 방향으로, 직진하면 한묵령 방향으로 갈 수 있으며 한묵령과 북진령 인근의 초소는 모두 폐지되었고(다만 민북지역인 것은 변함없어서, 함부러 풀 뜯으러 가다가는 처벌받음. 사실 처벌받기 전에 지뢰에 폭사당할 가능성이 크긴 함) 안동포 초소만이 남아있음. 해산령은 잘못하면 사람을 죽이는 도로이니 되도록이면 검문 귀찮더라도 한묵령 방향으로 가는 것을 추천.

안동포 초소를 잘 보면 왼쪽에 도로가 있는데, 수상령 방면으로 가는 도로임. 이 도로로 가면 나오는 곳이 곧 개장할 '백암산전망대'. 직진하면 안동철교가 있는데, 이 안동포 일대가 겨울에 정말 예쁨. 안동철교 서쪽으로는 양의대 하천습지가 있으며, 화천에서 가장 DMZ에 가까운 지역 또한 풍산리. 다만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땅은 없음. 수상리 일대의 지명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정전협정 지도인데, 놀랍게도 당시에도 강가에 도로가 없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음.

백암산 (1179m), 해산 (1194m) 등의 화천읍 최고(高)의 산 역시 풍산리에 있지만, 일반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음.


- 동촌리 (東村里)
동쪽 마을. 말 그대로 동쪽 마을이며 화천읍에서 체감상으로도 매우매우 동쪽 마을임. 과거 이 마을에는 신읍리의 2개교보다도 많은 3개교 (동촌분교, 수동분교, 모일분교)가 있었으나 1999년 동촌분교를 마지막으로 모조리 폐교당하면서 크고 도로도 없는 이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가려면 시내로 나가야 함.

화천에서 가장 행정구역이 크게 변한 사례이자 가장 법정리 내 마을들의 교류가 적은 편이며, 수많은 자연마을이 있음.
그 중 구 수하리 일대는 과거에는 '수동(水洞)리'였기 때문에 분교의 이름 역시 '수동분교'가 되었기도 함.

동촌리/태산리 일대에는 방천리 출신의 월하 이태극 문학관이 있고, 다람쥐를 팔면 돈을 번다고 하여 다람쥐를 방생했다가 섬이 연륙되어 다람쥐가 다 도망갔다는 다람쥐섬 등이 있으며, 파로호 북쪽 마을로 본래는 군내면이 아니라 동면-간동면 소속이었으며, 이것은 월하 이태극 문학관의 '본면 방천리 출신으로'라는 문구에서 찾아볼 수 있음.

태산리는 파로호 건설로 인해 리가 폐지되었으나, 월하 이태극 문학관 이동의 마을이 구 태산리 지역으로 아직 버스정류장이나 낚시터 등의 이름으로 남아있음.

한편 구 수하리 지역은 법정리가 왜 폐지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옛날에도 비수구미 쪽의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시내에서 자취를 했다고 하며, 옛날 지도를 봐도 수하리-수상리간 강변은 도로도 없으며 도로를 놓을 지형도 아니었기 때문에, 수하리 일대는 파로호를 짓기 전에도 엄청난 시골마을이었으며 지금도 육지 속의 섬으로 남아있음.

그리고 동촌리의 인구밀도는 2.46명/㎢로 몽골 수준.

이렇게 화천읍 마을들에 대한 소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