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미군정기, 60, 70, 80, 90, 00년대 등등 여러가지 지도를 통해 알아보았읍니다.


비록 지리나 역사학도는 아니지만 일하다가 중간중간 머리 식힐 때 서핑하면서 현재와 과거 지도 비교해보기도 하고 옛날 사진들 스크린샷 찍어놓은 것들 정리해서 도지챈 같은 곳에 올리면 좋아할 사람들도 있겠다 싶어서 그동안 모은 자료들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반응 괜찮으면 서울이나 다른 도시들도 정리해서 올려봄. 아마 서울은 자료 모아놓은게 워낙 많아서 영등포 사대문 강남 식으로 분리해서 해야할 듯; 뭐 여튼..


지금은 마+창+진이라는, 통합이라고 쓰고 창원으로의 합병이라고 읽는, 뭐 그런 과정을 통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마산시는 한때 지역 중심지의 역할도 했던 도시였다.


여기 대동여지도를 잠깐 보자. 조선의 5대 대호부였던 내륙의 창원(파란 원)과 그 밑의 빨간원에서 마산포(馬山浦)를 확인 할 수 있다. 마산포 옆에 합포(合浦)가 있는데, 마산과 합포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분리도 되고 합쳐지기도 하는 등 여러 번 바뀐다.


적색원 바로 위의 고병영(古兵營)은 고려시대의 합포성터이다. 본래 이곳이 지역 중심지였으나 마산포의 어시장이 16세기 이후 활성화되며 중심지가 해안가로 옮겨졌다고 한다.



참고) 고려시대 합포성지와 조선 후기 마산포 위치 비교





자 그럼 이제 구한말로 가보자

1899년에 제작된 마산 지도이자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던 마산의 가장 오래된 현대적인 지도이다. 저 위의 검은 삼각형 부분이 마산포로, 현재 마산의 원도심이다. 현재 위치는 마산합포구 오동동 북부로, 구마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구마산의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은 산호리로, 현재 지명은 마산합포구 산호동이다.


구한말 시기 마산포의 복원도 (출처: https://www.u-story.kr/290). 구마산은 어시장이 활성화되며 조선 초기부터 점차 성장했는데, 18세기 중반에는 마산창이라는 이름의 조창도 설치되었다고 한다. 지도에서 초록색 네모부분이 마산창의 위치였다. 참고로 이 조창이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다가 파괴된걸 그 자리에 다시 지었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학자도 있고 뭐 이 부분까지 이해하기는 너무 복잡해서 시원하게 스킵하겠음.


참고로 이 마산창은 일제시대에 사거리가 관통하며 사라진다.현재 sc제일은행 마산지점 사거리가 그 위치다. 





여튼 이렇게 어촌 도시(?)였던 마산포는 1899년 대한제국 정부가 개항장으로 지정하며 각국공동조계지가 들어서기 시작한다.


첫번째 지도는 1899년 당시의 계획도. 두번째 사진은 1908년 한일합병 직전의 도시 모습이다. 구한말 10년 사이에 조계지는 부산과 함께 일본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며 철도(마산선)도 들어서는 등 빠르게 성장했으나 구마산은 여전히 근대적인 도로도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새로 개발된 구역은 이후 경성의 남촌과 비슷하게 일본인 거주 구역이 되었고, 신마산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리고 구마산과 신마산 사이를 중앙마산이라고 불렸는데, 이 시기 일본 정부는 조계지의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중앙마산 지역을 군용 철도부지로 묶어버리며 개발을 제한한다. 이곳에 화교들이 잠깐 차이나타운을 형성했었으나 본격적으로 일제의 통치가 시작되며 몰락한다. 


참고로 구한말 조성된 신마산의 도시구획은 지금도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다.





이제 일제시대로 넘어가보자.

일제시대가 시작되며 신마산에 각종 관공서가 들어서며 마산은 창원군에서 분리되어 '부'로 격상된다. 이러한 배경으로 신마산은 일제시대 초기에 지역의 행정 중심지가 된다. 그러나 이후 진해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신마산은 기존의 입지를 진해에 빼앗기며 단순한 일본인 거주지로 변하고, 그 일본인들마저도 상권이 더 활발했던 구마산으로 점차 옮겨갔다. 1920년대부터는 아예 마산의 지역 중심상권이 구마산으로 다시 돌아온다.


첫번째 사진은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1916의 지도와 현재 위성사진을 겹쳐놓은 것이다 (하늘색은 당시의 해안선). 북쪽의 빨간원이 구마산, 남쪽의 녹색원이 신마산이다. 두번째 사진은 1920년대 중반에 제작된 지도. 진주로 향하는 경남선이 추가된 것 외에는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없다. 1900년대의 빠른 성장과 확실히 대비되는 부분. 여담으로 이 두 철도는 운영주체가 달랐기 때문에 열차가 마산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창원에서 신마산까지 내려온 후 방향 전환을 하고 다시 올라가야 했다. 후술하겠지만 이 문제는 1970년대 후반에서야 통합마산역이 탄생하며 해결된다.


구마산이 다시 경제 중심지로 떠오르자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지를 구마산으로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관공서들은 신마산에 모여있었는데, 이에 대해 위치가 구마산에서 멀어도 너무 멀다는 불만이 커진다. 그런자 자연스럽게 구마산과 신마산의 중간인 중앙마산 개발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1920년대 후반, 군용지로 묶여였던 중앙마산으로 각종 관공서들이 이전하며 서서히 개발된다. 그리고 이와 거의 동시에 1930년대 초반 중일전쟁이 시작되며 마산은 군수물자 공급창으로 이용된다.  덕분에 제국의 재정이 무리한 전쟁 때문에 힘들어지는 와중에도 마산은 빠르게 개발된다.


해방 직후 미군정청이 제작한 1946년 마산 지도. 중앙마산이 매립되어 넓어지고 개발되며 둘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던 마산이 하나의 도시로 연담화되어 가는 모습에서 1930년대 일제의 마산 개발 결과가 보인다 (아 물론 식민지 근대화론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다).




참고로 이 지도는 해상도가 꽤나 좋아서, 시대별 항공사진들을 비교해보면 지금도 남아있는 일제시대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일제가 개발했던 신마산부터 찾아보자.


신마산은 구한말 공동조계구역으로 시작해 일본인 거주지가 된 곳 답게 영사관과 각종 고급 관사들, 그리고 이들이 소비할 유곽이 많았다. 관공서가 많이 모여있어서 지금도 건물은 재건축 되었지만 같은 관공서 용도로 사용 중인 곳이 많은 중앙마산과 다르게, 신마산의 딱히 쓸모가 없고 공간만 많이 차지했던 영사관과 고급 관사들은 해방 후 개발 과정에서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선 북쪽의 빨간원은 과거 마산의 신사였던 곳이다. 지금은 제일여고로 바뀌었지만 계단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늘색원은 지금도 남아있는 일제의 마산 헌병분견대



공동조계구역 당시 푸른원이 일본 영사관, 보라색원이 러시아 영사관 자리였다.


일본 영사관 건물은 이후 마산시청, 창원군청 등으로 사용되다 1995년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으로 재개발된다.


마산에 있었던 러시아 영사관. 미군정청 지도에 따르면 여고 기숙사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한지 모르겠어서 원으로 따로 표시해 놓지는 않았다.



노란원은 마산의 유명한 유곽이었던 망월루의 자리다. 흑백사진이라 그런지 상당히 웅장하고 호화로워 보인다.


1950>1982>2019: 사진 속의 H모양 건물이 망월루이다. 이곳은 1988년쯤 교회(!)로 재개발된다.


녹색으로 표시된 도로는 구한말~일제 초기 신마산의 중심대로 였던 현재 문화남 2길이다.

두번째 사진의 건물은 완전히 다른 위치의 다른 건물이다. 왜 저렇게 지었는지는.....



신마산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들어가면 일제시대 중포병 부대 주둔지가 나온다.

놀랍게도 이곳 막사들은 1990년대 후반까지 주거지로 활용되었던 것 같다.


1950>1989 항공사진. 이 곳은 지금 아파트 촌인데, 대부분 준공연도가 1998년이다. 



중앙마산이랑 구마산도 찍어놓은 것들이 많은데 생각보다 정리하는데 오래걸려서 다음 2부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긴 글 읽어줘서 모두들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