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분단되어있을때 동독 사람들은 tv로 서독의 방송을 잡아봤다. 동독과 서독 모두 1952년 12월 한꺼번에 tv방송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미 동독인들은 서독방송을 잡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서독방송을 많이 잡아본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동독 국영tv가 공산주의 정부의 지시대로 방송하지 않았고 독자적인 색을 가지고 방송했기 때문이다. 초기 동독tv는 의외로 대놓고 정부당국과 당을 까고 자국 내의 자영업자들의 편을 더 들어주는 방송국이었다. 국영방송이었는데도 그랬다. 그때 동독 정부가 검열을 하지는 않았는데 tv 자체가 고가였고 방송권역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으며 대중화가 안됐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동독 자체도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나라여서 사람들이 정부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을 때였다.


그러다가 1953년 6월 동베를린 시위 사태 때 이를 자세하게 보도한 걸 계기로 그때부터 정부의 통제가 시작되었고 친정부 어용 방송국으로 전락하자 많은 동독인들은 그때부터 서독방송을 잡아봤다. 동독인들에게 동독tv가 인기를 끈건 딱 반년 동안까지였다.


이렇게 ard를 잡아보다가 1963년부터는 새로 개국한 zdf까지 잡아보고 하자 동독tv는 찐따방송이 되었다. 그리고 동독 정부가 통제를 하고 검열을 하는데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서독이 이를 노려서 동독 국영tv 채널에 서독방송국 채널로 겹치게 만들어서 볼 수도 없게 만들어놓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1973년부터 단속을 포기하고 암묵적으로 허용해줬다. 이때 폭발적으로 서독방송 시청이 늘었다. 다만 동독과 서독이 방송체계가 달라 수신에 약간 하자가 있어서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의 방송을 컬러 수상기로도 흑백으로 봐야했다.


그러다가 1980년 완전히 합법화돼서 동독 내수용 tv에 아예 동독 방송용 스위치와 서독방송용 스위치를 동시에 적용시키는 인터수상기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1961년부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 동독에서 서독방송을 수신하는 동독인들과 동독방송 전파가 잡히는 서독인들을 위해 서독방송이 허구라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자기네가 더 우월하고 진실하다는 방송을 하기도 했는데 동서독인들 모두에게 언제나 웃음벨이었을 뿐이었고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에는 그 전에 이 프로 진행하던 사람들은 단체로 침대에서 이불을 뻥뻥차게되는 신세가 됐다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