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2때 썼던 한국지리 보고서입니다. 분명히 그 때 봤을 때는 정말정말 잘 쓴 보고서였는데 이상하게도 지금 보니 오점투성이 보고서네요 ㅎㅎ
Ⅰ. 탐구 동기 및 목적
평택고등학교 주변의 조개터 자리가 과거 갯벌이었다가 간척 사업으로 인해 지금처럼 일반적인 토지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신기하였다. 마침 지리탐구 보고서를 걷는다길래 조개터처럼 간척으로 인해 토지 이용이 바뀐 사례로는 무엇이 있는지 더욱 알아보고 싶었고 더욱 나아가 간척 사업을 진행할 때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어서 이러한 탐구를 기획하였다.
Ⅱ. 이론적 배경 및 선행연구
1. 이론적 배경
가. 간척
토지의 확보를 위해 주로 바다의 일부를 방조제로 막고, 그 안의 바다나 갯벌 등을 매립하거나 물을 빼내어 육지화시키는 일을 말하며 때로는 호수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주로 농지 확보를 목적으로 많이 시행했으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이후에는 공업용지 확보, 주택, 공항, 항만의 건설 등 다양한 목적으로 진행된다. 간척사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럽에서는 주로 국토에 저지대가 많은 네덜란드와 북해에 면하고 있는 독일과 덴마크 등이 간척사업을 많이 진행하였으며 아시아의 경우 일본은 13세기 간척사업에 대한 기록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공식적으로 13세기 고려시대 강화도 지역의 기록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간척 사업을 진행하였다.
간척사업은 한편으로 인위적인 환경 조성으로 인한 환경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대부분의 간척지 조성에는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 다량의 물을 확보하기 위해 큰 호수를 같이 조성하는데, 방조제로 막힌 호수가 세월이 지나면서 오염되어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일부 선진국들에서는 간척사업 계획을 취소하거나, 심지어는 간척사업으로 육지화한 곳을 다시 방조제를 헐고 간척사업 이전의 자연상태로 되돌리는 역(逆)간척사업의 사례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적으로는 많은 나라에서 새로운 토지에 대한 요구로 인해 간척사업이 계속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Ⅲ. 탐구내용과 과정 및 결과 정리
<탐구 1>
서산 A, B 지구 간척 사업 이야기
사업 배경
간척 사업을 추진했던 현대건설
1970년대에 서산 지역에서는 식량 증대를 위한 농경지 확보의 중요성이 상당히 두드러졌었다. 때마침 서산 지역에는 많은 양의 갯벌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에 현대건설 쪽에서는 중동에서 철수한 장비를 활용해 갯벌을 매립하여 농경지로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현대건설은 1979년 국가로부터 서산 일대의 갯벌을 간척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내었으며 이듬해인 1980년 서산 A, B 지구 간척 공사를 시작하게 된다.
사업과정
유조선으로 조류를 막는 모습
중동에서도 잘 돌아가던 장비를 사용해서 그런지 사업과정은 상당히 순조로웠다.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2년 만인 1982년 10월 26일 서산 B 지구의 물막이 공사는 끝나버렸으며 이제 A 지구의 물막이 공사만을 진행하면 되었다. 그런데 공사에 문제가 생겨버렸다. 서산 A 지구의 조류는 매우 빨라서 매우 무거운 돌덩어리도 휩쓸려 보내버리는 바람에 도저히 방조제를 세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버려진 유조선에 물을 가득 채워 넣어 물에 휩쓸려가지 않게 한 뒤 이 유조선으로 조류를 막고, 물막이 공사를 진행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아이디어는 공사에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 폐유조선이 조류를 막아주어 물막이 공사를 더욱 수월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에 힘입어 1984년 서산 A지구의 물막이 공사를 완료하였으며 농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염분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끝에 1986년 일부 지역은 농지로 사용이 가능해졌으며 1995년에 전면적으로 농지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3. 사업 결과
사업 결과 서산시는 154.08㎢의 토지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이중 A 지구가 96.26㎢를, B 지구가 57.82㎢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중 개발된 농지의 면적은 A 지구 63.83㎢, B 지구 37.49㎢를 합쳐 101.32㎢에 이른다. 토지만 획득한 것이 아니다. 이 사업으로 서산시는 담수호 두 개를 얻었는데 이중 A 지구에 위치한 간월호가 27.33㎢, B 지구에 위치한 부남호가 15.62㎢이며 이는 우리나라에 위치한 담수호 중 최대의 넓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산 B 지구의 태안 지역은 2005년 골프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형 도시가 유치되어 현재 골프장 조성 및 골프 중심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 진행 중이다. 또한, 민간인이 잘 출입하지 못하는 기계화 영농 단지가 조성된 덕에 철새들의 월동지가 되었으며 야생 동물들도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서산 A, B 지구는 가장 다양하고 많은 수의 겨울 철새가 머무는 월동지가 되었으며 이는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점 또한 발생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물을 가둬둔 탓에 부남호와 간월호의 오염은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충청남도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3개 면[홍성군 결성면·갈산면, 서산시 부석면]에 공공 하수 처리 시설을 신설해 농·축산 폐수와 생활하수를 정화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서산에 모여든 철새들의 모습
<탐구 2>
호조벌 간척 사업 이야기
사업 배경과 사업 과정
과거 조선시대 때 이 지역은 농업 용지가 매우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수시로 오가는 조류 등으로 인해 농업 용수 확보가 매우 어려운 지역이였다. 이에 조선 조정은 이 지역을 간척할 것을 계획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방죽을 세워 바닷물의 진입을 막는 일이었다. 경종 1년(1721년) 이 지역에 시흥시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를 잇는 길이 약 720m의 인공 둑인 호조방죽이 건설되었으며 이 호조방죽은 아직까지도 국도 39호선이 지나가는 등 교통의 요충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지역은 석장평, 인천안산언답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결국은 그러한 이름은 사라지고 이 지역을 간척한 호조에서 이름을 따서 호조벌이라고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한편 방죽만 완성되었다고 만사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땅은 생겼는데 농업용수가 아직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일제강점기 시절에 소래저수지, 매화저수지 등의 저수지들이 축조되었고 그 결과 1970년대에는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호조방죽이 나타난 고지도
2. 호조벌의 현재
호조벌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
현재 호조벌은 약 150만평 이상의 농지가 조성되어 있어 이곳에서 나는 쌀의 양은 시흥시 전체를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또한, 이곳에서 나는 쌀은 품질도 좋아 시흥시에서는 햇토미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타 지역 사람들에게 시흥을 홍보하는 수단으로도 사용한다. 또한 호조벌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조성된 매화저수지는 금개구리의 서식처로 알려져 보존의 대상이 되었으며 2005년부터 매년 호조벌 축제가 개최된다. 호조벌 축제를 주관하는 호조벌축제추진위원회는 시흥 9경의 하나인 가을 들녘의 아름다운 호조벌을 주민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호조벌 걷기를 중심으로 축제를 진행하고 있으며 호조벌과 관련된 글과 그림을 창작하는 백일장 사생 대회, 관내 청소년들의 문화 예술 장기 자랑, 청소년 락 페스티벌, 관내 문화 예술 동아리의 공연, 관내 주민들의 문화 예술 공연, 주민 노래 자랑, 호조판서 행차 퍼레이드, 호조벌 사진 전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Ⅳ. 탐구해석 및 결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간척 사업은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이 매우 많다. 우리에게 농경지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거대한 담수호를 만들어 농업, 공업용수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며 주거지로도 활용되어 주택난 해소에 앞장서기도 한다. 또한, 서산의 사례처럼 독특한 환경을 조성해 관광상품으로 활용되기도 하며 생물들에게 살아갈 공간을 조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간척 사업에는 부작용 또한 도사리고 있다. 어찌 됐건 바닷물이 원래 가던 통로를 방해하고 땅이 아니었던 공간을 반강제로 땅으로 만드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간척 사업을 계획할 때 꼭 필요한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따져가며 신중하게 계획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