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적으로 근대화된 선진국들은 격차가 존재는 하되 상대적으로는 적지만

대부분의 후발 주자인 국가들 예를 들면 이란, 터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의 국가들이 수도와 지방간의 차이가 진짜 큼.

수도는 중앙 정부 중심의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지방에는 여전히 남아있는 지방 토호들 중심의 전근대적 관행들이 존재함.

거기에 다양한 민족이 존재하는 국가면 그 격차가 훨신 더 커짐. 미얀마 같이 여전히 많은 국가들에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존재함.

근본적인 원인은 중앙 정부 권력의 힘의 부족, 지방 호족들의 저항, 그리고 당시에 부족했던 자원을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함이었음.

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수 많은 국가들 내부의 갈등의 씨앗이 되었음. 지금도 이스탄불과 다른 지역들은 정치적 문화적 차이가 크고 갈등도 꽤 있음. 이는 이란도 마찬가지임.

거기에 아프가니스탄도 보면 탈레반의 본거지는 지방이고 이젠 망한 정부의 중심지는 카불임.

이러한 갈등이 표현된게 이슬람 원리주의, 한국의 민족주의 총본산 NL 등이 있음. 거기에 중국 MZ 세대의 민족주의도 있을테고. 근대화의 출처가 외부 이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민족주의적 성격을 띔.

실제로도 이러한 민족주의적 갈등은 다양한 민족들이 존재하는 수 많은 국가들에서 내전의 씨앗이되었음. 필리핀만 봐도 지금도 갈등이 크지.

그런데 이러한 격차는 한국에서는 꽤나 적은 편인데. 이는 누구나 아는 비교적 빠른 한국의 민족 의식 형성 시기와 강한 중앙 집권적 문화와 더불어, 박정희가 큰 역할을 했음.

당시에 박정희가 설치한 인프라는 교통과 소통이 용이하게 했고. 무엇보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강력한 지방 근대화를 밀어부쳤음. 낡은 집들을 부수고 낡은 관행들을 뜯어고치고 농기구와 최신 농법을 보급함.

이는 박정희가 남베트남을 보고 충격먹어서 진행했다는 말이 있음. 당시에 남베트남도 미국의 영향이 큰 수도와 그러한 근대화로부터 소외된 지방간의 갈등이 있었음.

북베트남은 이러한 갈등을 절묘하게 이용했고 많은 지방민들이 이에 호옹하며 게릴라를 적극적으로 도움.

이런걸 본 박정희는 지방의 근대화를 밀어부쳐서 평균 소득을 높이고 또 통장 같은 강한 통제책을 마련하고자 함. 이게 새마을 운동의 주요 동기 중 하나고.

또 박정희에 더불어 농지로 구성되어있던 기존 토호들의 자산을 자본으로 바꾼 이승만의 정책도 유의미했을꺼임. 다른 국가들에서 지방 토호들이 여전히 견제하며 근대화에 저항하는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