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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후를 다루는 3편부터는 지도를 구 의주 일대까지 확대할 예정.

<1960년 신의주시의 지도. 압록강철교가 끊겨 있고, 군사기지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구:81,101명(1960년)


<북한 당시 신의주>

북괴 정권 당시에서도 신의주는 평북 도청 소재지로 승승장구. 한편 동들이 대규모 개편.


<6.25 전쟁과 정주로의 도청 이전>

(1951년 신의주시가지계획은 계획 영역이 축소되고, 전체적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재설계되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고 남한이 승리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되었음. 적국인 중공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에다 시가지도 많이 파괴되면서 도청과 행정기관이 정주에 뜯기는 게 확정되었고, 도시 자체도 심하게 파괴. 하지만 군사기지로 각광받으면서 신의주는 기존의 교류 도시 기능에서 최전방의 군사도시로 기능이 변화. 기존 평북도청은 군사사령부로 징발. 파괴된 지역이나 군 시설로 결정된 부지의 거주자들은 대다수가 정주나 평양 등지로 이주. 이제 신의주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완전히 군사도시로 전락.


<전체적 상황>

전쟁이 끝난 이후 인구의 대다수는 군인이나 군 관련 종사자들이고, 도시 전체가 군사기지와 비슷하게 돌아가고 이에 따라 전체적으로 군사적인 분위기가 강한 편. 한편 여객열차의 경우는 제한적인 수준으로 운영 중. 당연히 신의주 내 군사시설에 민간인 출입은 금지.


<군사>

종전 이후 신의주비행장 등이 건설되면서 본격적으로 군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 한편 신의주식 부대찌개도 생겨나는 중.


<인구>

과거에는 인구가 11만명 이상일 정도로 큰 도시였으나, 이제 인구가 8만명 초반까지 몰락.

25 전쟁 직후 임시인구조사 결과 당시(1953년) 신의주의 인구는 38,772명. 대신 군사기지가 대거 이전하면서 군 관련 종사자들이 유입되는 중. 실제로 현재 신의주의 유입되는 인구 대다수가 군 관련자들. 과거 신의주에 살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은 정주, 평양 등지로 피난하거나 이탈.


<경제>

과거 신의주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기존 인구들은 대다수가 평양이나 정주 등지로 이주하면서 대다수의 경제는 군인이 담당하는 전형적인 군사도시로 몰락. 공장은 완전히 증발.


<행정>

신의주시청이 존재. 평북 일대 경찰청과 소방, 우편 등의 본부, 법원들은 모두 정주로 이전하고, 지금은 소방서와 경찰서뿐. 한편 일제식 동 지명 청산이 신의주에도 실시.(근거법령은 여타 북한지역 도시와 동일)


<농촌지역 이주정책>

당연히 중공과의 분쟁으로 지역은 개판이 되었고, 공도정책과 비슷하게 평북 최전방 마을들의 기존에 살던 주민들의 정주 등지로의 계획적인 이주가 실시.


<교육>

신의주교원대학은 정주로 옮겨져서 정주사범대학으로 바뀌었고, 이외 교육 인프라들이 모두 정주로 이전하면서 기존 신의주 시민들을 위해 분교가 운영 중.


<교통>

서울-신의주간 2번 국도(1번 국도로 개편되는 건 1966년)의 종점. 당연히 경의선의 종착지로, 압록강 철교가 전쟁 중 파괴되었기 때문에 신의주에서 철도가 끊긴 상태.

한편 원역사의 덕현선인 의주선은 1959년 군용물자 수송용으로 개통.


내가 고자라니 패러디:

평안북도:어.. 하필이면.. 중요한 곳이 이전했어요.

신의주시:그건 무슨 소리요?

평안북도:어... 어느 정도 후에 말해 주려고 했는데... 잘 알아 두세요. 당신은 이제 도청 소재지가 아닙니다. 에, 도청은 정주로 옮겼다 이 말입니다.

신의주:뭐요?! 이보시오, 이보시오!! 도청양반! 아유우우우…!

평안북도:안정을 취하세요. 너무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걷잡지 못합니다.

신의주:나 이렇게… 오래 있을 수가 없소… 도청, 도청 좀 갖다주시오!

평안북도:이보세요! 당신은 중공과 너무 가깝습니다! 어차피 도청은 정주로 이전했으니 그냥 푹 쉬세요!

신의주시:뭐라고? 도청이 없다고? ... 아니... 내가...

내가... 몰락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