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기점 정주시 지도>

<정주시 행정구역 포함 지도>

<정주시 시설 지도>

오늘은 1960/70년대.피드백은 댓글로 받습니다.

정주시의 편입 역사.


1980년 12월 31일 기준 정주 일대 행정구역 현황.


평안북도의 도청소재지

정주시

定州市/Chongju City(청주시와 영어 동일)

인구:751,226명(1980년)

하위 동:77개 법정동


<확장사 및 행정구역>

1960년데 상단동2가가 상단동2가(남쪽), 상단동3가(북쪽)으로 분할.

1963년에 정원군 일부 지역이 정주시로 먹히면서 정원군이 두 동강.

1963년 정주 편입지역:

고안면:구 신안면 지역(단, 연봉동(평북의 동리 단위가 리로 바뀌는 것은 1988년 가서야 일괄 변경)은 고안면으로 넘기면서 정원군에 잔류) 및 소암동 잔여지역이 편입.

덕언면:구 아이포면 지역(석산, 대산, 중봉동)을 제외한 전역(구 아이포면 지역 전부가 70년 정주시에 편입 이후 폐지)

남서면:전역


1970년 덕언면 석산동, 대산동, 증봉동이 정주시로 편입되고 관할 동이 한 곳도 앖는 덕언면은 폐지. 기존 아이포면 지역은 아이포동이라는 단일 행정동으로 편제.


1973년 1월에 군인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대전면이 운전읍으로, 고안면이 봉명읍으로 승격. 이곳은 군사기지로 크게 승승장구하는 중.


1975년에 정주시가 달천강을 경계로 서구/동구로 분할. 당시 정주시 인구 63만명.


<정주 일대 상황>

현재 정주는 압도적 평북 제1도시이자 관서지방 제2위 도시로 군림 중. 평양(477만)이야 절대 넘을 수 없는 넘사벽. 아직까지도 평북 북부지역(독자 중심지인 강계가 있는 동부지역 제외)까지 대부분이 정주에 의존했던 상태였지만 평양 접근성를 등에 업은 남포가 이미 60만대 초반까지 성장한 상태고, 순천(順) 역시 대규모 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인구가 40만까지 증가. 순주군 역시 평양의 위성도시인 사인장, 은산 등의 발전으로 인해 인구가 많은 편.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인해 신의주와 의주가 급격히 커갈 예정으로, 입지가 위태해지는 중. 실제로 신의주의 인구는 1970년대 이후 기존 8만에서 5만이나 증가. 의주읍도 시 승격 직전.

하지만 평북 남부권의 구성, 영변, 박천, 선천 등은 정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평북 남부권 중심지는 유효할 전망.

영변 역시 종전 이후 대규모로 개발된 군사기지들로 인해 시 승격 직전.


한편 경의선을 경계로 서구와 동구에서 남구를 분구시키자는 여론이 존재.

한편 정원군은 곽산읍 지역으로 군청소재지를 옮기려는 준비를 하는 중이고, 후적지는 평북도청이 먹으려고 준비 중. 이예 정원군 서쪽을 곽산군으로 분리시키자는 여론 역시 존재하지만 곽산과 아주 먼 동부 지역은 정원군 유지를 강력하게 희망하는 중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적은 편.


1970년대 전국 여느 도시가 그렇듯 정주에도 그린벨트가 지정. 다행히 북부 지역은 대다수가 개발할 수 없는 산지고, 남부도 정주 시가지와 좀 먼 편. 신의주의 경우 중소도시에다 외곽 지역이 모두 군용지라 아예 그린벨트가 미지정.


한편 정주가 직할시로 승격된다는 설이 돌고 있는 상태. 물론 직할시는 부산/평양 뿐이지만 대구/함흥이 직할시로 승격된다는 설이 돌고 있는 상태.


<개발>

1960-70년대 이후 신규 개발은 전방인 서구 지역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후방인 동구 지역 위주.

196-70년대 제10.제11.제12토지구획정리사업이 추가로 건설. 이로 인해 전쟁과는 관계없이 평북 내부의 이촌향도가 정주로 쏠리는 중.

1975-1980년 정주동부/남부지구가 개발되면서 1975년 정주 주공1단지 건설로 평북에서 최초로 민간인용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건설. 정주시의 모든 주공아파트는 단지가 이어진 상태.


<정주의 인구>

평북 각지에서 중심지인 정주로 인구가 몰려드는 중. 한편 강계(14만 5천, 1955년 시 승격)과 구성(8만 7천, 1963년 시 승격)과 희천(8만 3천, 1970년 시 승격), 구장(8만 4천, 1963년 시 승격)에도 인구가 몰려드는 중이나 정주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상태. 신의주(13만)은 최전방인데다 군사도시라 인구 성장이 거의 없으나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아주 떡상할 예정. 한편 평북 피난민들이 대규모로 들어온 탓에 정주의 인구는 정주 내부 토박이보다는 타 평북 지역 출신이 대다수. 한때는 중공에서 난민들까지 유입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정주 외곽에는 큰 난민촌이 자리잡았던 상태.(1970년대 개발사업으로 싹 다 철거)

이제는 직할시 승격 후보 중 한 곳.


<정주의 문화>

정주의 문화는 전편에서 전술했듯이 평북 여러 곳의 문화가 짬뽕된 상태. 예를 들어 영변촌, 강계촌, 의주촌 같은 지역 출신들의 집단거주지도 존재하고, 음식들도 여러 지역이 섞인 모습이 존재.

이외에도 유엔군정 시기 복원된 정주읍성이 존재.


<문학인마을>

한편 제4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일대에 1950년대 정주 출신 문학인들이 이주해 마을을 형성. 한편 전쟁이나 최전방 지역의 군사지역화로 고향을 잃은 다른 일부 평북 출신 문화인들도 이곳으로 이주. 70년대 이후 꽤 유명해지는 중.


한편 영변 약산은 관광지로 관광객을 맞고 있는 상태.


<체육>

정주종합운동장이 1976년 건설.


<정주의 경제>

1967년 1도 1은행 정책에 따라 정주에 평북은행 설립. 원래 이름을 정주은행으로 하려고도 시도했으나 타 평북 지역이 반발하면서 그냥 평북은행으로. 1960년대 말에는 정주 동부에 산업단지가 건설. 정주 시내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가는 중. 역전로터리 앞 평북백화점은 지금도 존속 중.

도시들의 건설도 계속적으로 되는 중이고, 15층 아파트도 건설된 상태.

또한 평북의 거대한 군인 수요를 흡수할 대도시인지라 군인 경제도 매우 활발.


<정치>

정주시는 2개 선거구로 4명의 국회의원을 선출.

정원군은 박천군과 단일선거구 구성.


<행정>

평북도청, 평북지방경찰청 등이 정주에 존재. 평북의 행정 중심지이나, 직할시 승격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중이라 신의주, 선천, 강계 등 다른 도시들의 눈치싸움이 치열.


<사법>

법원은 정주지방법원이 존재하고, 하위에 신의주, 강계, 초산 3개 지원이 존재. 상위 고등법원은 평양고등법원.


<정주의 교육>

1962년에 국립 평북대학교가 정주 동쪽 산자락에 설립. 한편 세를 불린 오산고등학교도 정주에 대학교 설립을 시도했고 이는 70년대 성공.

1979년에는 인제대학교가 원역사와 달리 정주에 개교. 백병원도 정주에 설립.


<의료>

병원은 평북대학교병원과 인제대학교 정주백병원이 존재. 평북에서 유일하게 대형병원이 2개나 있는 곳.


<정주의 교통>

전편에서 서술했듯이, 1950년대 후반에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평북선이 복선화. 정주역은 지금도 군인 수요와 민간인 수요가 겹쳐서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는 중. 역사(驛舍)는 정쟁 이후 재건된 것에서 그대로 유지 중. 한편 정주역 앞 상권도 매우 커지는 중.

버스도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

1970년 정주에 경의고속도로(초기 명칭:1-2번 국도(서울-정주)4차로, 당시 개통 구간은 안주-곽산 구간)가 개통되면서 드디어 평북에도 고속도로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신의주는 1978년에야 고속도로 개통.


1966년 12월에 국도 체계가 전면 개편되면서 기존의 2번 국도(서울-신의주)가 없어지고 3번 국도(서울-목포)와 병합해 1번 국도(목포-신의주)가 신설, 기존 71번 국도는 61번 국도로 노선번호 개칭.


<방송>

TV는 현재 지상파 3사 중 KBS, MBC만 나오는 실정.

한국방송공사 정주방송국이 존재하고(총국 전환은 1987년), 1965년 세워진 정주문화방송이 존재. SBS는 이때는 있을 리가 없고, TBC는 평북에 가맹 방송국을 구할 예정. 지상파들의 송신소는 북부의 독장산에 존재.


2022-08-19 16:15:40 중앙동1.2가 경계 누락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