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본 내용은 가상으로,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음을 밝힙니다!

<1950년 기준 청진시 현황. 붉은 선까지가 1954년 당시 청진 시가지 경계>

북진통일 청진의 역사를 다루는 편이 시작되었읍니다.

오늘은 1편으로, 유엔군정 시기의 역사를 서술할 예정. 설정상 이 시기를 현대에는 통칭 유엔 시대라고 통칭.

<군정 시기>

청진 수복 이후 임시 함북도청은 길주에 있었으나, 1951년 1월 20일 북한이 강계에서 항복하고 연변 가는게 확정되며 도청이 청진으로 복귀. 복귀했으나 치안은 북한 망명정부 게릴라나 추종 세력 등으로 인해 좋지 않은 상태.

한편 유엔군정은 기존의 부(府)를 유지하지 않고, 시로 일괄적으로 개칭된 것으로 처리. 또한 북괴 함경북도당과 함북 인민위원회는 연길로 도주하고, 빈자리는 신설된 함경북도청이 차지.

1950년이 끝나기 직전 군정법령 제3호(1950/12/24)로 인해 청진의 일본식 동명이 깔끔히 제거.(북한 지역 모든 도시의 일본식 지명을 제거하고, 진남포를 남포로 개칭)

조일동>호의동

대화동>청화동

길천동>길동

부도동>부주동

축동>축하동

행동>행복동

수동>장수동

파동>미덕동

일출동>일산동

영동>번영동

서동>조상동

상생동>화합동

보동>귀포동

명치동>현치동

입선동>선적동

미생동>청내동

부귀동>부곡동

항동>항구동

북성동>북청진동

목하전동>고서동

상반동>고중동

송도동>고동동

복천동>북쌍연동

고사동>서쌍연동

교립동>동쌍연동

나남본동>나중동

생구동>용전동

미길동>용남동

초뢰동>천남동


군정법령 제 XX호 조선지적복구령

1951년 2월 1일 조선지적복구령이 시행. 이로 인해 북한 지역의 지적도가 효력을 되찾음. 당연히 인민반 제도는 조선지적복구령과 동시에 일반 반으로 개편되었고, 국유지에는 지번을 부여하지 않은 상태.

한편 1951년 5월 1일에는 포항동이 내포항동1-8가와 외포항동1-9가로 분리되고, 시가지 개발지역의 법정동을 정리.

<일제강점기 함북도청 구청사, 일제강점기에 이미 전소됨>

1952년 함북도청 신청사가 준공(외포항동1가 1번지). 함북도청 신청사는 일제강점기 구청사를 모델로 3층으로 건설.

청진시청(현 중구청)(외포항동1가 2번지)은 아예 함북도청 서쪽에 새로 건설.


<유엔군정 당시 상황>

페허가 된 회령 등의 두만강변 일대 도시에서 피난민들이 속출하는 중. 이로 인해 청진 인구가 증가세고, 군정 정부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을 급히 실시하는 중.

이 세계관에서는 청진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부대찌개는 청진에서 만들어지게 됨.

한편 유엔군정이 되면서, 파괴된 도시들이 복구되기 시작. 이와 동시에 민간 불하 대상 등도 분류.

<국유화 대상>

철도 및 교통시설, 나남기지, 공공청사 건물, 제철소(임시), 제강소(임시)

<원소유주 환원 대상>

종교시설, 기존 청진시내 주택들 중 배분받은 자가 기존 북한정권에 부역한 자인 경우

<불하 대상>

방적공장, 북한 정권 하에서 신축된 주택을 배분받은 경우

<철거 대상>

청진 전역의 스탈린, 김일성 초상화(폐기 후 재활용 용지화) 및 해방탑(철거 후 건축폐기물화)


한편, 주택들을 두고 월남한 기존 소유주와 북한 하에서 주택을 배분받은 실 거주자와 주택 없이 빈 손으로 청진으로 피난온 피난민들의 3자간 분쟁이 대량 발생하면서 폭력사태까지 터진 상태.


도시계획은 일제강점기의 청진시가지계획을 유지하되, 대폭 손을 보았습니다.


나남로터리(나남 한가운데)에는 유엔군의 승전을 기념하는 탑이 설치.


<교육>

청진고등학교와 청진여자고등학교가 1951년 3월 1일자로 새로 개교. 함북고등학교 타이틀은 기존의 경성고보였던 경성공립중학교가 가져갔습니다.


<행정>

함북에 청진지방법원이 부활. 한편 1952년 1월 1일자로 기존 평양고등법원에서 함흥고등법원이 신설 분리되어 2심 재판 가기가 한층 가벼워진 상태. 유엔군정 시기이므로 현재는 3심 재판 받으려면 서울의 대법원이 아닌 평양의 중앙재판소로 가야 하는 상태.


<산업>

공업 등이 존재하고, 어항 역시 어민들이 물고기를 잡는 곳으로 이용 중.


<방송>

방송의 경우에는 HMKC 방송국(원래 JBCK였으나 1951년 재배당)이 함북 중동부(함북서부 지역은 HMKP 성진방송국 소속) 지역의 방송을 책임지고 있는 상태. 라디오만 존재하고 TV는 당연히 나오지 않습니다. 청진방송국은 대중공/대소 선전이라는 중대한 임무 역시 부여받은 상태.

북진통일 세계관 북한 지역 방송호출부호 배당 현황


<행정권 이양>

1952년 대한민국으로 행정권이 이양. 이와 동시에 국유지에도 지번이 새로 부여되고, 함경북도청은 재개청.


<행정권 이양 이후 군사>

행정권 이양 이후, 기존 전방 일대에 있던 사단이나 사령부급 부대들이 청진으로 대거 이전. 청진은 군사도시 역할도 자연스레 겸하게 된 상태.


<교통>

국도는 45번 국도(회령-경원), 4번 국도(서울-웅기) 등이 통과.

철도는 함경선(후에 1963년 동해선으로 병합)과 함북선 등이 지나는 중.

민군 겸용 공항인 청진공항(K-34) 역시 존재하나 당연히 중공, 소련행 노선은 모두 단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