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大蒙)견문록 시리즈

1편: 몽골 입국기

2편: 이 시국에 러시아? (1)

3편: 이 시국에 러시아? (2)

4편: 울란우데

5편: 바이칼 호수

6편: 부랴티야의 불교사원

7편: 울란우데 마지막 날

8편: 몽골 종단철도

9편: 울란바토르

10편: 울란바토르광역시(?)


오늘도 우선 노래와 함께 먼저 찾아뵙겠습니다. 몽골판 대한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몽골의 마지막 군주정 국가 복드 칸국의 국가 되겠습니다.

배경에 깔린 몽골-투바-알타이 전통의 배음 창법 흐미(Хөөмий)가 인상적이네요.


널찍널찍한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남서쪽 방향 도로를 타고 쭉 내려가다 보면


서울의 거리 시작점과


국립 극장이 보입니다. 이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꽤 현대적인 쇼핑몰이 보이는데, 바로 이 쇼핑몰 맞은편에


몽골 전통건축 풍의 건물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네, 바로 이곳이 복드 칸의 겨울궁전입니다.


겨울궁전이란 이름대로 그 반대인 여름궁전도 있겠죠? 하지만 이건 원래 전에 설명했던


바로 근처의 툴라 강변에 있었다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외부 펌, https://blog.naver.com/skngo888/222862248350)

겨울궁전 내의 박물관에 여름궁전의 조감도도 그려져 있는듯 한데, 이게 있었으면 꽤 멋졌을 듯 합니다... ㅠㅠ


옛날 요-원-금-청 등의 유라시아 동부의 유목민족계 제국들은 이렇게 여름궁전 혹은 수도/겨울궁전 혹은 수도가 따로 있었는데, 예를 들어 원나라의 경우엔 쿠빌라이 칸 시절부터 여름엔 내몽골 자치구에 있는 상도(제나두)에, 겨울엔 대도(칸발리크, 현재의 북경)로 황제의 거처를 계절마다 옮겨다녔죠.


궁궐의 동문인데, 굳게 닫혀있길래

어... 관람시간 지났나...? 하고 잠깐 쫄아있었던...


그렇게 입구 찾아 삼만리를 하다가 발견한 복드 칸의 동상.

담딘 수흐바타르나 칭기즈 칸 만큼은 아니지만 복드 칸도 몽골 국민들 사이에서 꽤나 존경받는 인물인데, 현재 한국에서의 고종 취급을 생각하면...;;

담딘 수흐바타르마저도 후레 입성 후에 복드 칸을 건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복드 칸이 죽고 얼마 안가 수흐바타르도 죽자 그제서야 수흐바타르의 최측근 처이발상이 몽골을 접수해 몽골 인민 공화국을 세웠으니까요...



남쪽으로 돌아 들어가니 그제서야 보이는 정문. 여기서도 화려한 궁전 건축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궁전의 입구 치곤 좀 작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네요.


매표소에 있는 겨울궁전의 미니어처 모형 조감도. 사진을 찍은 방향이 대략 북쪽에서 남쪽을 내려다보는 방향인데, 실제 칸이 거주하던 건물은 제일 동쪽에 서양식 건물 한채이고, 나머지는 주로 칸이 종교의식을 올리는 (복드 칸국에선 복드 칸이 종교지도자 역할도 겸임했음) 사원 건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참고로 이 점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티베트 불교의 달라이 라마 시스템은 티베트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몽골 제국(정확히는 북원 시절)에서 만들어진건데, 북원의 알탄 칸이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당시 티베트 불교의 수장이었던 소남갸초(བསོད་ནམས་རྒྱ་མཚོ)를 몽골어로 바다같은 스승이란 뜻의 "달라이 라마"라고 이름 짓게 됩니다. (달라이(далай)가 몽골어로 바다라는 뜻, 그래서 몽골에선 바다같이 넓은 훕스굴 호수를 가끔 달라이 에지(Далай ээж, 어머니 바다)라고도 부릅니다)


소남갸초는 공식적으론 3대 달라이 라마이지만,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을 처음 하사받은건 그이고, 1, 2대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선대 교주를 후대에 달라이 라마라고 칭하게 된 겁니다.

이 시스템이 외몽골로 다시 역수입되어 젭춘담바 후툭투(Жавзандамба хутагт)라는 환생 계승형 종교 및 정치 지도자 시스템이 만들어지는데, 복드 칸은 8대 젭춘담바 후툭투였기 때문에 이렇게 궁전에 칸으로써의 집무실과 사원을 갖출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또 한가지 참고로 말하자면 젭춘담바 후툭투는 비록 명목상 외몽골의 지도자였지만 청나라 때에는 어차피 티베트든 외몽골이든 한 나라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1대부터 9대까지 죄다 티베트인이었습니다. 복드 칸도 원래는 티베트인이다, 이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매표소 옆에 있는 개선문의 미니어처 레플리카.


실제 모습은 뒷면이 이렇게,


앞면이 이렇게 생겼고,


현판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겨울궁전 자체가 지어진지 얼마 안된 건물이긴 한데 (1893년에 짓기 시작, 1903년 완공), 그 당시엔 외몽골은 청나라의 반 독립적 속국 시절이었던지라 현판에 저렇게 한자, 몽골 문자, 만주 문자, 그리고 티베트 문자가 공존해 있는 모습입니다. 몽골이 일차적으로 주권을 되찾은 시점이 신해혁명 이후인 1911년이니 이 건물이 지어졌던 시대상을 현판에서 느낄 수 있겠네요.


이는 바로 옆에 있는 칸의 만수무강을 비는 비석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 뒤로 보이는 궁전의 대문. '평화의 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부랴티야의 이볼긴스키 닷산에서 봤던 저 법륜 문양이 여기도 달려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청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친근함... 확실히 건축 스타일이나 색 배합이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보단 한국의 것과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대문 뒤로 들어가면 서재와 사원으로 이어지는 문이 또 있습니다.


그 옆엔 몽골 스타일의 정자와 (이렇게 보니 한국의 그것과는 또 다른 모습)


그 뒤로부턴 본격적으로 칸의 2층짜리 사원 건물이 시작됩니다.


저 소욤보에 문장에 있는 태극(?)이 박혀있는 북.



역시나 청대에 지어진 건물답게 어느정도 중국풍의 건축 양식도 섞여 있습니다. 한국도 경복궁이나 창덕궁 가보면 청나라 스타일이 벽돌 건물들이 좀 있죠.


그 뒤에 또 하나의 3층짜리 사원 건물이 있고,



여러 불상들과


종교 서적으로 추정되는 물건들,


그리고 아마 칸이 공부하던 곳도 이 건물 안에 있습니다.


한국의 궁궐처럼 천장에 용이 박혀있는것도 이 곳의 특징.


뒷쪽 정원에서 바라본 2층 사원.


사원 구역을 빠져나와 이번엔 칸의 거주동으로 가봅시다. 가는 길에 왠 신삥 정자가 하나 있는데,


(외부 펌, https://blog.naver.com/skngo888/222862248350)

큰 솥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마 사원을 찾아온 신도들을 구휼하기 위해 대용량 솥을 마련해둔 것으로 짐작합니다.


이 게르는 그냥 기념품샵(...)입니다 ㅋㅋㅋㅋ


거주동 쪽에서 바라본 겨울궁전의 전경. 외적인 모습으로 보자면 확실히 부랴티야에서 봤던 여러 닷산들과 그리 건축 형태가 달라보이진 않습니다.


칸의 거주동 안은 지금 와서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복드 칸이 사용했던 마차,



복드 칸 전용 게르,


그 게르의 미니어처 모형,




알현실의 왕좌,


왕실의 전통 복장,




침실까지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었습니다.


입장료 자체는 싸지만, 사진을 찍으려면 꽤 비싼 값을 내고 들어와야 했는데, 그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은 관람을 했습니다.

제가 찍은 겨울궁전의 사진들은 여기까지고...


다음 편은 드디어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고비 사막으로 향하는 여정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고비 사막을 중국 내몽골에 있는 바단지린 사막으로 제대로 보여드리고자 했지만 국경이... ㅠㅠ

그리고 아직 울란바토르의 모든 것을 보여드린 것이 아니니 앞으로의 답사기들도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