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젠킨스. 1940년생 미국인. 


주한미군으로 파병된 그는 베트남전쟁에 나갈 수 있다는 말에 두려워 월북했음. 

당시 주 서독 미군 중 월남전에 차출되기 싫어하던 미군들이 동독으로 도망가서 소련으로 송환된 후, 소련이 협상용 인질로 이들을 이용하여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전쟁을 피했기 때문임. 


젠킨스도 이를 노리고 1965년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갔는데, 문제는 모스크바에서 주평양 소련 대사관에 ’탈북 미군들을 받아주지 말라‘는 전갈이 온 것… 그래서 그들은 그냥 북에 살아야 했음. 





젠킨스는 65년-71년까지 개고생을 하다가

1972년 북한 정권에서 미군 탈영병들을 우대하기 시작하며, 납북 일본인인 소가 히토미와 결혼까지 했음. 


이후 각종 영어 번역 및 영화출연으로 꽤 잘 먹고 살았음. 

특히 1980년대 북한영화 ‘이름 없은 영웅들’에서 ‘미국의 북한 침략작전’을 기획하는 악역 ’켈튼 박사‘로 출연했는데, 이때 큰 인기를 끌어 북한에서는 ’켈튼박사‘로 불리움. 





그러다가 2000년, 북한정부가 아내인 소가 히토미의 방일을 허가했고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납북이 사실이었다며 난리가 남. 그리고 일본에서는 아내를 1년간 돌려보내주지 않음. 


결국 북한은 가족과 아내를 인도네시아에서 상봉하도록 허가했는데,

젠킨스는 두 딸을 데리고 평양으로 돌아가지 않게 됨.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정일은 젠킨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고 함. 

물론 일본행을 선택한 젠킨스를 북한 관영매체는 ‘추악한 배신자 가롯 유다’라며 깜;;;


평양 태생으로 북한사람으로 자란 그의 딸들은 처음에 자본주의 일본행을 매우 달갑지 않아했다고 함. 





그는 주일미군 기지에서 미군으로 복귀했으며, 30일 징역을 살고 불명예 전역했음. 


그리고 90세가 넘은 노모와 35년만에 상봉함. 





그는 아내의 고향, 일본 사도 섬에서 기념품 가게를 하며 살았고 장사도 꽤 잘 되어 지자체의 공로패도 받음


그리고 2017년에 부정맥으로 사망함. 



같은 탈영병이지만, 평양에서 정착해서 만족하고 살았던 드레스녹과 달리

결국 북한을 떠나 일본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