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방


두반강 연변 군들의 경우 전후에도 계속되는 빨치산의 준동과 인민해방군과의 두만강 연변 주민들에 대해 소개령을 내리면서 군 중심지가 이동함. 무산군청은 동면(現 철산읍), 회령군청은 벽성면 대덕동으로, 종성군청은 행영면으로, 경원면은 경흥군 아오지읍으로 이동함.  군 전체가 소개된 온성군은 아예 폐지되다시피함. 강 하류라 강폭이 넓고 군사도시인 나진과 가까운 경흥군 정도만 예외.

소개된 지역은 빨치산이 대부분 소멸한 제3공화국 시기 이후에 재건됨. 재건된 온성면으로 복귀한 온성군처럼 원 중심지로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고, 벽성면이 회령읍과 통합한 회령군처럼 원 중심지와 합병한 경우도 있고, 아오지에 눌러앉은 경원군처럼 새로 이동한 중심지로 눌러앉은 경우도 있음.


청진시 - 최전방이자 빨치산의 준동으로 몰락했던 청진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조선족 난민의 유입과 제3공화국 이후 빨치산이 대부분 정리되면서 다시 반등을 시작하여 함북 제1의 도시 자리를 되찾음. 부령군 청암면과 경성군 경성면을 잡아먹으면서 시역 역시 확장됨. 광역시 승격 떡밥도 있지만 함북의 강한 반발로 인해 표류중.

성진시 - 빨치산을 피해 내려온 함북 북부의 피난민과 청진에 있던 대규모 공업시설까지 이전해오며 한동안 함북의 중심도시로 번영함. 제3공화국 이후 청진이 다시 반등하면서 함북 제1의 도시 자리는 빼앗겼지만 함북 제2의 도시이자 함남 남부의 중심지 지위는 유지중. 도농통합 당시 학성군과 통합하여 도농통합시가 되었고 탈냉전 이후 급격히 성장한 나진과 라이벌 기믹이 형성됨. 학성면 폐지 이전 舊 학남면 지역은 단천으로 넘어감.
나진시 - 냉전기 내내 중국-러시아 접경 군사도시 역할을 하다가 탈냉전 이후 중국, 러시아와의 교역이 늘면서 급격히 성장. 웅기읍과 노서면 중심으로 성장한 경흥군과 통합함.  웅기읍 분동이 이루어지고 구도 설치될 정도로 성장. 녹둔도 때문에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이 있음.

길주시 - 길주읍이 길주시로 승격하고 나머지 면 지역은 길성군으로 개칭되었다가 도농통합 당시 다시 통합. 양사면 서부 지역(통칭 백암)은 백암면으로 연암군에 넘어감.


경성군 - 청진의 확장으로 경성면이 청진에 편입되면서 경성 없는 경성군이 되어 군청은 주을읍으로 이동.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읍인 주을읍 남부를 분리해 보로면을 신설. 이름의 유래는 면내를 흐르는 보로천. 역시 면적이 과도하게 넓은 주남면 서부 분지 지역과 주북면 실질월경지로 낭서면을 신설함. 어'랑'천 '서'쪽에 있다고 해서 '낭서면'.

무산군 - 빨치산의 준동으로 군청이 동면으로 이동함. 무산읍 재건 이후에도 무산철광이 있는 동면 위주로 발달하면서 동면을 아예 철산읍으로 개명. 과도한 면적의 군을 분군하여 행정상 편의를 도모한다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방침에 의해 삼사, 삼장, 연암 서부 3개 면을 연암군으로 분군함.

명천군 - 삼향동 비료공장 덕분에 일찍이 성장한 서면은 명간읍으로 승격. 원래는 영안읍이었으나 지명 유래 때문에 부랴부랴 명간읍으로 개명. 명천읍이라는 지명은일제강점기 당시 군청이 이전한 상우북면이 가져가면서 조선시대 군 중심지였던 하우면은 그대로 하우면으로 남음. 동면과 서면 실질 월경지 4개 동으로 명동면을 신설. '명'천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명동면'.

회령군 - 재건 이후 탄광으로 한동안 전성기를 누렸고 한때 시 승격 떡밥도 있었음. 그러나 80년대 이후 석탄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다시 몰락. 인구는 청진이나 성진, 나진 등으로 지속적으로 유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