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창덕궁을 사유화하는 2층짜리 개인 주택에 대한 논란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문화재청

[땅집고]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1405년 북한산 자락에 들어섰다. 자연과 건축이 물 흐르는듯한 조화를 이루면서, 과거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궁궐로 꼽힌다.

그런데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에서 왼쪽 궁궐 담을 따라 1~2분 정도 걷다 보면 희한한 광경을 맞닥뜨린다. 문화재인 궁궐에 2층짜리 주택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 궁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주택의 소유자는 개인이다. 총 269㎡(81.5평) 토지에 1층 33평, 2층 17평 규모로 연면적이 도합 50평에 이른다. 이 집주인은 창덕궁 돌담을 담벼락 삼고, 궁궐 조경시설을 개인 정원처럼 쓰고 있는 셈이다.

창덕궁은 국가 문화 유산인 만큼 출입 시간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로 제한될 정도로 관리가 엄격하다. 그런데도 어떻게 개인이 궁궐을 사유화하며 집까지 지을 수 있었던 걸까.

[땅집고] 서울 창덕궁 내부에 있는 개인 주택 전경. 담벼락을 개조해 철문을 설치해뒀다. /네이버 거리뷰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집은 궁궐을 문화재로 보호하는 제도가 마련되기 전, 1960년대 창덕궁 관리소장이 관사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이후 문화공보부 간부가 정부로부터 관사 땅과 건물을 63만원에 사들이면서 개인 소유 주택으로 둔갑했다. 당시 국유재산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건물은 1957년, 토지는 1964년 각각 이모씨에게 소유권이 이전됐다.

국가가 개인에게 궁궐 땅을 판 이유는 정확하지가 않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반이어서 문화재 관리가 소홀했거나, 국가 재정난을 이유로 간부에게 월급 대신 국유지를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후 1981년 유명 도예가이자 국민대 명예교수인 김익영(88)씨가 이 집을 매입해 소유 중이다. 김씨는 이 집을 본인의 도자기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도자예술관 ‘토전’ 매장으로 쓰고 있다. 2층에는 아로마 테라피 등과 관련한 교육센터, 웨딩 플래닝 업체 등이 입점해 있다.


그동안 이 2층집이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을 사유화하는 데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또 이 주택으로 인해 궁궐 담이 훼손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법건축물 논란도 불거졌다. 현행 문화재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를 손상했을 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19대 국회 때인 2014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서용교 의원은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 궁궐 담 안에 2층 개인주택이 들어서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창덕궁 돌담 일부는 주택을 출입하는 철문으로 개조돼 문화재청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답변만 내놨다. 주택을 매입하기 위해 예산 15억원까지 책정했지만, 김씨가 길 건너편 주택 시세만큼의 보상을 주장해 매수에 실패했다고 했다. 또 2층집이 문화재를 보호하는 법이 제정되기 전에 들어섰기 때문에 훼손죄를 소급해서 적용하기도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당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 초기에 문화재청으로부터 17억원에 주택을 넘기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가격이 맞지 않아 거절했다. 비슷한 규모의 주변 땅은 30억원 정도 한다”며 “문화재청이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면 팔 생각이다. 시세의 90%는 되어야 한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땅집고] 도자예술가 김익영씨는 정부가 보상한 2층집에 대한 보상가가 너무 적어 협조에 응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JTBC 캡쳐

대법원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창덕궁 내 2층 주택은 아직까지도 김씨 소유로 남아 있다. 결국 문화재청과 김씨 간 매매 논의는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창덕궁 맞은편 168㎡ 부지에 들어선 지상 2층짜리 단독주택이 26억9000만원에 팔렸다. 토지 3.3㎡(1평)당 가격을 계산하면 5274만원이다. 이 시세로 김씨의 2층 집 땅(269㎡)을 매수하려면 최소한 43억원 이상을 제시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사실을 접한 네티즌들은 “과거 국가가 재산을 부실하게 관리하는 바람에 역사가 깊은 궁궐을 개인이 쓰게 됐다니, 너무 어이가 없다”, “차라리 문화재청이 예전에 김씨로부터 집을 얼른 사들였으면 더 저렴했을 수도 있겠다. 그동안 집값이 너무 오르는 바람에 매수에 필요한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버려 문제 해결이 아예 불가능해진 것 아니냐. 정말 답답하다”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