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 미국 유타주(州) 4학년 학생들에게 중국에서 온 편지가 도착했다. “중·미 우호를 위한 젊은 대사가 되거라”라는 내용이 담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명의의 편지였다. 편지를 받아든 학생들은 “시진핑 할아버지는 정말 멋진 분”이라며 기뻐했다. 앞서 이 학교 중국어 교사가 중국 춘제를 맞아 학생들에게 시 주석에게 편지를 보내게 했는데, 일국의 지도자인 시 주석이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 답장을 했기 때문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 연합뉴스© 제공: 조선일보

유타주 학생들이 편지를 받고 시 주석을 친절한 할아버지로 묘사하며 기뻐하는 모습은 중국 관영매체를 통해 전파됐다. 그 장면을 본 유타주의 한 상원의원은 “정말 친절하고 개인적”이라며 흥분하기도 했다.

AP통신이 입수한 이메일을 통해 이 사건이 주미 중국대사관과 학생들의 중국어 교사가 사전에 서신 교환을 통해 물밑 작업을 벌인 것이며 중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P통신은 이 같이 중국이 장기간 유타주에서 주의회 등에 인맥 구축 후 영향력 확대 공작을 해왔고 그것이 성공을 거뒀다고 2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인맥 구축은 주로 유타주를 거점으로 하는 모르몬교 통해서 이뤄졌다. 정보 공개 요청 통한 공공기록 수백 페이지와 수십 건의 인터뷰 등을 통해 확인한 내용들이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모르몬교 사원. /로이터© 제공: 조선일보

모르몬교 거점으로 알려진 유타주는 종교 색채가 깊고 보수적인 곳이다. 그간 중국과 별다른 인연이 없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모르몬교가 해외 선교 활동에 적극적이고 중국에서의 교세 확대를 원한다는 점을 중국이 역이용했다. 중국의 지령을 받은 중국계 인사들과 옹호자들은 모르몬교를 통로로 유타주에 인맥을 쌓아갔다.

이들은 모르몬교를 믿는 지역 의원들에 종교를 활용해 접근했다. 이메일, 문자메시지나 편지 등에 모르몬교 성서에 담긴 문구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친밀감을 높이거나 모르몬교 지도자인 러셀 넬슨이 중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발언한 내용을 첨부하는 식이었다.

중국의 지령을 받는 사람들은 또한 모르몬교와 직접적으로 우호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했다. 유타주를 방문할 때마다 중국 외교관과 고위 관계자들은 모르몬교 지도자 및 신도, 의원들을 찾기도 했다.

중국의 지령을 받는 이들의 모르몬교를 활용한 공작은 학생들이 시진핑 주석과 편지를 주고 받은 사례 외에도 다양하게 전개됐다. 중국 기반 컨설팅사 직원이자 전 유타주 상원의원의 아들인 댄 스티븐슨이란 인물을 이용해 유타주 의원들에게 중국에 대한 친밀감을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스티븐슨은 유타주 상원의장에게 중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줬으며 2020년 코로나 대유행 당시 중국과의 연대를 표명하며 도입한 친중국 결의안이 통과되도록 했다.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상하이 시민들을 위해 유타주 의원 다수가 중국어로 ‘찌아요(加油·힘내라)’라고 응원하는 영상을 만들어 중국 웹사이트에 게제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미국에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자리를 잃어가던 중국 공자학원을 친중국 성향의 유타주 의원들이 1년간 폐쇄 조치를 연기하는 밥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전직 연방수사국(FBI) 방첩 요원 프랭크 몬토야 주니어는 이 사건과 관련해 “중국이 미국에 영향을 미치려고 얼마나 널리 퍼져 있고 끈질기게 노력해왔는지 보여준다”며 “중국인들이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성공할 수 있다면, 뉴욕과 다른 곳에서도 성공(중국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중국 정부가 미국의 각 층위의 정치인들에게 베이징을 옹호할 수 있도록 사전에 양성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한 자료들이 드러나면서 FBI는 관련자들을 수사, 심문하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다만 FBI는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