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슈뢰더 총리의 하르츠 개혁은 한국의 노동개혁 담론에서 항상 끌려나오는 이야기임. 하지만 실제 하르츠 개혁은 한국의 노동개혁 담론이 흔히 언급하는 '고용유연화'와는 그 결이 상당히 다름.


하르츠 개혁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제조업 종사자에게는 고용안정성을 크게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임금 상승수준을 억제, 서비스업은 시간제 근로자와 파견 근로 조건 완화, 필요한 경우 생산시설의 오프쇼어링'임.


유럽의 병자라 불리던 2000년대 초중반 당시 독일의 실업률은 수년간 10% 안팎을 유지해오고 있었으며, 동독 주민들에게 서독 주민들과 동일한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하여 정부의 재정부담이 상당했음.


그래서 슈뢰더 총리가 폭스바겐의 노동이사인 페터 하르츠의 주도 하에 '하르츠 개혁'을 성사시킴. 하르츠 개혁은 '질나쁜 일자리라도 실업보단 낫다'라는 전제로 다음과 같은 정책을 시행함.


1. 미니잡(시간제 근로자) 활성화. 기존에는 주 근무시간 15시간 이하, 월소득 325유로 이하인 경우 시간제 근로자로 분류되어 근로자 본인에게 산재보험을 제외한 사회보험료와 세금이 면제되었는데 이를 주 근무시간이 15시간 이상이더라도 월소득 400유로 이하면 미니잡으로 인정토록 완화했으며 이들을 고용할시 면제되는 사회보험료와 세금을 대납한다는 명목으로 급여의 25%를 고용주가 국가에 지불하도록 했음.(그래서 서양권의 짧은 연평균 근로시간을 마냥 좋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것임. 실제로 서양권에는 저런 시간제 일자리의 비중이 높기 때문임. 물론 이런 시간제 일자리에서 근로하는 근로자는 대부분 기혼/유자녀 여성 또는 노년층이기는 함)


2. 파견근로자 고용제한 완화. 기존에는 2년 이내 기간제 근로자만 파견근로자를 쓸 수 있었는데 기간제한을 없애버림. 또한 창업 4년 이내 신생기업의 경우 기존과는 다르게 합당한 이유가 없어도 파견 근로자의 사용을 가능하게 함.(이후 2013년 개선과정에서 기간제한은 다시 부활함)


3. 해고보호법 미적용 사업장의 범위를 기존 5인 이하 사업장에서 10인 이하로 완화


4. 사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항목은 실업급여 삭감이었음.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기존 최대 32개월에서 12개월로 축소하고 지급비용도 기존 소득의 절반 남짓을 보장하는 것에서 '기초생활비용' 수준으로 축소, 공공 고용서비스를 통해 소개받은 일자리를 특별한 이유 없이 거부시 실업급여 삭감 등의 정책을 시행했고(이게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저 '공공 고용서비스'가 실적을 채우겠다고 아무런 고려 없이 실업자에게 마구잡이로 일자리를 소개시켜주고 취업시키기에 급급했기 때문임), 결국 슈뢰더 총리는 조기총선에서 메르켈에게 정권을 내주고 퇴임함.(이후 실업급여 지급비용을 '기초생활비용'까지 축소한 것은 헌법상 규정된 최저생활비용에 못 미친다며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려 다시 늘리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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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츠 개혁에 대해서는 독일 내에서도 논란이 많음. 하르츠 개혁이 독일을 유럽의 병자에서 탈출시켜줬다라는 평가가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절묘하게 비슷한 시기부터 시작된 유로존 결성으로 인한 경제효과(=화폐가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경쟁력 확보), 중국의 떡상으로 인한 대중 수출 급증 덕분이 더 컸다는 평도 있음.


실제 하르츠 개혁 이후 독일의 실업률은 크게 줄어들고 여성과 노년층 고용률이 크게 늘었으나, 실질 임금수준은 정체되고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는 제조업과 파견근로와 미니잡이 넘쳐나는 서비스업 사이의 양극화가 심해졌음. 그나마도 체코나 폴란드 등지로의 오프쇼어링으로 인해 그 안정적이라는 제조업 일자리의 수도 줄어들었고.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한국 노동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는게 바로 이러한 노동자간 양극화고 따라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부작용으로 따라온 하르츠 개혁을 노동개혁의 모델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음.


사실상 하르츠 개혁에서 추종할 수 있는 요소는 노동자의 임금상승 억제와 재취업 교육 시스템의 활성화 정도인데, 그나마도 전자는 한국 경제의 개편 방향을 고려했을 때 고르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선택지라는 게 함정이고, 후자 역시 진짜로 재취업 교육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냐를 가지고 독일 내에서 논란이 많은 상황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