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방


시군지도


읍면동 지도


<약사>

1951년 통일전쟁 승리 이후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단의 한시적 관리와 총선거를 거쳐 동년 8월 15일을 기해 38선 이북 전 지역의 주권이 대한민국으로 이양됨. 평안북도청은 전방의 신의주시에서 정주군 정주읍으로 이동.


1952년 인민해방군과의 교전 및 빨치산의 준동으로 압록강 연변 지역 소개령 선포. 압록강 연변 지역의 행정기관이 내륙으로 이동.

 - 용천군청: 용암포읍 → 외상면(남시면으로 개명)

 - 의주군청: 의주읍 → 비현면(1963년 의주읍으로 환원)

 - 삭주군청: 삭주면 → 외남면(대관면으로 개명)

 - 창성군청: 창성면(창주면으로 개명) → 대창면(창성면으로 개명)

 - 벽동군청: 벽동면(벽단면으로 개명) → 권회면(벽동면으로 개명)

 - 초산군청: 초산면(이산면으로 개명) → 고면(초산면으로 개명)

 - 위원군청: 위원면(밀산면으로 개명) → 화창면(위원면으로 개명)

 - 후창군청: 후창면 → 남신면


1955년 정주군 정주읍이 정주시로 승격. 잔여 지역은 정원군으로 개명. 강계군 강계읍이 강계시로 승격. 잔여 지역은 석주군으로 개명(1991년 강계군으로 환원).


1960년 영변군 용산면, 구장읍으로 승격.


1963년 압록강 연변 지역 소개령 해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행정구역 개편.

 - 정주시, 강계군 각 정원군, 석주군 일부 지역 편입으로 시역 확장.

 - 강계군 남부 6개 면을 낭림군(군청: 전천면)으로 분군. 정원군 서부 5개 면을 곽산군(군청: 곽산면)으로 분군.

 - 영변군 남송면을 운산군에 편입. 선천군 동면을 곽산군에 편입.

 - 의주군 광평면을 삭주군 청수읍에 편입.

- 영변군 영변면이 영변읍으로 승격.


1966년 구성군 구성면이 구성읍으로 승격.


1972년 영변군 구장읍이 구장시로 승격. 희천군 희천읍이 희천시로 승격. 잔여 지역은 희주군으로 개명.


1973년 태천군 태천면이 성서면과 통합 후 태천읍으로 승격.


1978년 영변군 영변읍이 영변시로 승격. 잔여 지역은 연주군으로 개명.


1981년 구성군 구성읍, 구성시로 승격. 잔여 지역은 귀주군으로 개명.


1986년 박천군 박천읍, 박천시로 승격. 정주시와 강계시, 구제 실시(각 2개 구).


1991년 용천군 용암포읍, 다사도읍(1968년 부라면이 다사도면으로 개명, 1985년 다사도읍으로 승격)이 용천시로 승격.


1995년 지방자지체 실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 신의주시의 용천시 및 의주군 일부 지역 편입

 - 강계시 + 강계군 → 강계시

 - 구성시 + 귀주군  → 구성시

 - 희천시 + 희주군 → 희천시

 - 영변시 + 연주군  → 영변시(단, 실질월경지인 영변군 백령면은 구장시로 편입)

 - 정주시 + 정원군  → 정주시

 - 용천시 + 용천군 → 용천시


1996년 의주군이 의주시로 승격. 의주읍 분동.


1997년 강계시에 평안북도 동부사무소(2시 6군 관할) 설치.


2000년 신의주시 구제 실시(2개 구).


2013년 평안북도청 동부사무소, 동부청사로 승격.


<현재 도내 상황>

서부권: 냉전기에는 한동안 정주 몰빵이었던 구조. 통일전쟁과 소개령으로 압록강 연변 지역이 몰락하고 피난민들이 도청소재지인 정주로 모여들면서 정주가 급성장했고 이후에도 정주 위주로 발전이 이루어짐. 이 밖에 박천, 영변, 구성 등 일부 도시들이 군사도시로 성장하고 구장은 석탄산업으로 한떄 번성함. 그러나 한중수교 이후 한중교역이 재개되면서 신의주와 용천 등 신의주권이 다시 성장. 신의주권의 성장으로 정주 등 청천강 연변 일대는 2선으로 물러났고 구장은 석탄산업의 사양으로 아예 몰락. 2000년대 이후 신의주는 한동안 정주에 빼앗겼던 평북 최대 도시 지위를 되찾아옴.


동부권: 평북 동부권 종주도시인 강계 몰빵 구조. 냉전기에는 최전방+개마고원으로 사람이 쭉쭉 빠져나가던 암울한 동네로 냉전기에도 군인으로 겨우 버티던 최전방 지역이었으나 한중수교 이후 말그대로 몰락함. 그나마 동부권 종주도시인 강계와 군사도시이자 교통요충지인 희천이 버티고 있지만 여기도 그리 상황은 밝지 않은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