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답사기에도 이어지는 여러분들의 성원에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도지챈 여러분들의 개추와 댓글을 통한 응원, 다음 답사기로 이어지는 힘이 됩니다.  

1일차 밤 늦은 시간에 쿠시로역까지 걸음을 옮긴 것은 2일차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죠. 



다름이 아니라 쿠시로 습원 국립공원 (釧路湿原国立公園) 동부를 가로지르는 쿠시로습원 노롯코호 (くしろ湿原ノロッコ号)를 타기 위함이었죠. 쿠시로 습원 국립공원 연선에는 열차가 세 가지 다닙니다: 



오호츠크 해 연안의 센모 본선 아바시리 역까지 가는 시레토코-마슈호가 정기적으로 다니며, 임시열차로는 두 가지 열차가 다니는데



겨울 (해마다 다르지만 매년 1-3월)에만 다니는, 일본 내에서도 몇 안되는 증기기관차인 SL 겨울의습원호가 있고



오늘 답사기의 하이라이트인, 쿠시로습원 노롯코호가 있습니다. 노롯코호는 SL 겨울의습원 호와 달리 일본의 골든 위크, 여름, 가을에만 다니죠. 이번 편에서는 이 쿠시로습원 노롯코호를 타고, 쿠시로습원 국립공원의 중심에 있는 쿠시로시츠겐역 (쿠시로습원역)까지 가 볼 생각입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인 것도 있고, 열차가 오전 11시 넘어서 있으니 그 전까지 쿠시로를 조금 둘러봅니다. 



일본 전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홋카이도의 역사는 아이누족의 역사도 있지만 150여 년간 '개척'의 역사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있는 편인지라, 전반적으로 미국이 미국서부 '개척사'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 서부의 '개척사'나 150여 년간 홋카이도 '개척사'에서 모두 빠질 수 없는 게 철도인데, 이를 반영하듯 쿠시로의 일개 공원에도 이렇게 쇼와 시대 때 굴리다 헤이세이 2년에 퇴역한 증기기관차를 전시해 놨네요. 



공원 건너편에 일본의 나름 유서깊은 야당 중 하나인 입헌민주당 지부가 있어서 찍고 지나가고





그 근처에 있는 쿠시로의 시장들 중 하나인 와쇼 시장을 지나가봅니다. 

하단의 두 장은 쿠시로의 명물 중 하나로, 밥을 파는 가게에서 밥을 산 다음 각 가게를 돌며 싱싱한 해산물을 추가로 사서 카이센동처럼 먹는 문화입니다. '내맘대로 회덮밥'이라고 생각하면 편한 문화죠. 물론 당시엔 일정 때문에 '이런 게 있구나' 정도로만 보고 지나갔습니다. 점심 일정은 따로 있기 때문이죠. 



되게 고풍스러운, 진짜 일본 애니 한 장면에 나올 법한 집을 지나가면



쿠시로 역입니다. 역이 참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면 도지챈러 당신만의 생각이 아닌 게, 홋카이도 기준으로 봐도 한 도시의 중앙역 치고는 많이 낡았습니다. 쿠시로가 이래봐도 삿포로, 하코다테, 아사히카와에 이은 홋카이도 제4의 도시인데, 그것치고는 참 역의 규모를 보면 좀 실망하게 됩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역 근처에 제가 당시 있던 숙소를 포함해 어지간한 시설이 다 있어서 다니기는 편했다는 것...

그래도 솔직히 미국 도시들 대부분의 철도가 이정도만 되었어도 진짜 감사하면서 미국에서 철도 애용했을 것 같네요.



쿠시로가 네무로 본선에 위치해 있는 역이다 보니까, 여기 주로 오는 열차는 더 동쪽의 네무로 방면으로 가는 하나사키나, 삿포로로 가는 오조라 특급 (딱 여기서 시종착), 그리고 임시열차로 있는 관광열차 정도입니다. 전광판 상으로 11시 12분에 출발하는 저 열차도 네무로행이었던가...



상당한 기대를 안고 쿠시로역의 개찰구를 통과해봅니다. 이미 저쪽 플랫폼에 오늘 일정의 핵심인 노롯코호가 와 있군요. 



홋카이도에는 전반적으로 전철화 구간이 거의 없다 보니 이렇게 클린한 (?) 선로를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플랫폼 끝 한번 찍어주고 열차 타러 갑니다. 



쿠시로습원 노롯코호, 지금 만나러 갑니다!



노롯코호의 1호차는 자유석, 그 외 2-4호차는 지정석으로 운행됩니다. 쿠시로습원역까지 가는 것 기준 지정석을 타게 되면 840엔을 추가로 내야 되는데, 위의 표 사진에서 보고 오신 눈썰미 있는 분들은 알아채셨겠지만 저는 지정석을 구매했습니다. 당연히 그 이유는 더 나은 뷰 때문에...




마침 바로 옆 플랫폼에 1량짜리 네무로행 노삿푸가 있어 찍어주고 갑니다. 한국 같으면 1량짜리 열차는 상상도 못할 텐데, 홋카이도는 도로를 한국의 고속도로급으로 깔 여건이 안 되어서 그런지, 기존 철도 인프라로 인한 경로의존성 때문에 그런지 1량짜리라도 철도가 들어가더군요. 



오늘은 운이 좋은 모양인지, 타이밍에 맞게 삿포로로 가는 오조라 특급도 비슷한 시간대에 플랫폼으로 들어왔습니다. 신치토세에서 실은 저걸 타고 와도 되었지만 (실제로 저게 항공편보다 쌉니다), 저게 4시간 반이나 걸리는데다 일행분이 시간상 항공편이 낫다 하셔서... 



그렇게 쿠시로를 벗어나 습원으로 향합니다. 



쿠시로습원 초입에 있는 수문을 지나 좀 더 달리면



쿠시로습원역에 도착합니다. 





우거진 녹음 속 약간의 오르막길 다음에는



전망대가 있고, 전망대에서 올라가서 보는 쿠시로습원은...




같은 람사르 습지인 순천만처럼 특징적인 형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날씨 버프에 힘입어 압도적인 크기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에의 경외감이 들게 합니다. 녹음이 적당히 우거진 곳에 넓은 습원이 펼쳐진 것이 어찌보면 순천만에 우포늪을 겹치고 적당한 평지에 쭉 펼쳐놓은 형상이 쿠시로습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시 쿠시로습원역으로 내려오니 비전철화된 단선 선로 위에 노루가 올라와 있습니다. 역시 국립공원...

실제로 쿠시로습원에 있는 동안 이런 노루들이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노롯코호를 타고 쿠시로로 돌아갑니다. 건널목이 아닌데도 중간에 차를 세우고 노롯코호가 지나가는 것을 보는 길가의 노부부가 시선을 강탈하는군요.



정신차려보니 노롯코호는 거의 쿠시로에 도착해 있습니다. 



점심은 역 근처의 탓쵸 시장의 라멘집에서 맛이 그렇게 진하던 라멘으로 해결하고



아까 노롯코호는 쿠시로습원 국립공원 동부 라인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쿠시로습원 국립공원 서쪽 라인에 있는 온네나이(恩根内)로 향합니다. 



실제로 서부 라인에서는 꽤 많은 범위를 볼 수 있지만, 이번에는 시간상 온네나이 일대만 보고 오기로 했습니다. 



원시림까지는 아니라도 꽤 녹음이 우거진 곳을 지나면




꽤 깨끗한 데크 산책로가 습원을 가로지릅니다. 




진짜... 말이 필요 없습니다 (1). 




온네나이 쪽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강탈하는 노루는 덤입니다. 




와... 말이 필요 없습니다 (2). 굉장히 고요하고 정돈된 습원 한복판에 있으니 옛 선현들이 이야기한 물아일체, 자연과의 합일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는 기분이더군요.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지평선 감상하시고 가시겠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도 우리의 시선을 강탈하는 노루입니다. 



쿠시로역까지 바로 찍어주는 버스가 하루에 몇 번 안 다니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시간상 약간 서둘러야 했죠. 



저녁은 쿠시로 사람들의 소울푸드라는 '스파카츠'라는 것을 먹었는데,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이 '스파카츠'라는게 스파게티 위에다 돈가츠 올려놓은 겁니다... 생각보다 간단히 보이지만 저 철판 위에서 그대로 지글지글거리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맛있기 그지없습니다. 




날씨의 신은 오늘까지는 우리의 편인 겐지, 안개가 많은 쿠시로의 여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날도 석양이 쿠시로의 하늘에 펼쳐졌습니다. 

다음날에도 만만찮게 다이나믹한 일정들이 펼쳐지는데, 우선은 이만 쿠시로의 석양으로 이번 답사기를 마치고 다음 답사기에서 뵙도록 하죠.


쿠시로 습원을 돌아본 개인적 후기로는 미국 국립공원들도 좀 더 많은 데에서 저렇게 철도가 다니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Empire Builder가 글레이셔 국립공원 가로지르듯), 미국의 국립공원들 다수가 있는 곳이 철도가 향후에도 안 들어올 것 같으니 개인적인 소원에서 끝날 듯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