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누 모시르 모음]

아이누 모시르 [1]: 태평양으로 가는 길

아이누 모시르 [2]: 쿠시로 습원을 가르며


본격적으로 홋카이도의 날씨가 영 별로가 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강건하게 나아가야죠. 



홋카이도 제4의 도시 쿠시로는 인구가 20만도 안 되는, 일본 기준으로도 상당히 작은 도시라 그 자체로 볼 것은 적죠. 하지만 쿠시로의 진짜 묘미는 그 주변이 있는데, 2일차 답사기에서 다루었던 쿠시로습원 국립공원 외에도 아칸 호, 마슈 호 등 칼데라들을 엮어 아칸-마슈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좀 더 서쪽으로 가면 그 유명한 다이세쓰 산 국립공원도 있긴 한데 그건 겨울에 좀 더 유명한데다 이번 답사기에서는 제외되었으니 넘어가고, 3일차의 주 행선지는 아칸-마슈 국립공원입니다. 


아칸-마슈 쪽으로도 대중교통이 없진 않습니다만 자유도를 위해서 이날만 예외적으로 렌터카로 이동했습니다. 



고속도로가 별로 없는 쿠시로라지만, 이런 쿠시로의 교외를 이런 도로를 거쳐 잠시만 벗어나면





이렇게, 진짜 자연 한복판에 온 듯한 도로가 펼쳐집니다. 이런 도로를 뚫고 쿠시로에서 1시간 반 정도 달린 끝에 첫 번째 목적지인 마슈 호에 도착합니다만...



엇! 날씨가 우리 편이 아니군요! 이날 아칸-마슈 호 전반적으로 안개도 끼고, 흐리고 나중에는 비까지 오는 바람에 전반적으로 날씨 면에서는 실패한 답사가 되었는데, 특히 마슈 호에서는 아예 뷰를 통째로 가렸습니다. 




참고로 안개가 없을 때 마슈 호가 어떤 모습인지는 별도 자료로 대체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 행선지로 또 20분 정도 가면



유황 연기와 유황 특유의 썩은 달걀 같은 냄새가 풍기는 이오산이 나옵니다. 예전에 여기서 유황을 채굴했었다가 지금은 더 이상 채굴하지 않는다는데, 그래도 유황 냄새가 자욱한 것은 똑같으니 가신다면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매캐한 유황 연기가 풍기는 방향으로 들어가면




유황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분출구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화산의 높이 자체는 그렇게 높진 않은데, 유황이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게 참 인상 깊은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름이 하필이면 유황에서 착안한 이오 산이다 보니까, 막상 화산 감상보다는 '이오지마도 이럴까?'하는 생각이 더 많더군요. 



또 산길을 달립니다. 노면이 젖은 게 뭔가 앞으로의 날씨를 암시하는 것 같다면 기분 탓입니다. 



79.3km2의 크기를 자랑하는 일본 최대의 칼데라이자 일본에서 6번째로 큰 호수인 쿳샤로 호수입니다. 미시건 호 같은 진짜 큰 호수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확실히 그간 보았던 어떠한 칼데라보다도 큰, '이게 진짜 칼데라인가?' 싶을 정도의 어마무시한 크기를 자랑하죠. 



쿳샤로 호는 일본의 네스 호라고도 불리는데, 네스 호의 괴물 네시마냥 여기도 '쿠시'라는 괴물이 호수에 살고 있다는 도시전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괴물이 사는지는 믿거나 말거나...



날씨가 기대와 달리 좀 흐려서 그렇지, 호수 전경 자체는 상당히 수려합니다. 꼭 슈베르트의 송어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진짜 어딘가에서 슈베르트의 송어가 들려올 것 같은 전경입니다. 



또다시 젖은 노면의 길을 달려 최종 행선지인 아칸 호로 이동합니다. 



이번에는 도로 한복판에서 우리의 시선을 강탈하는 노루입니다. 



번외로 끝까지 다 찍지는 않았는데 국립공원 인근 도로로 일본 육자대의 M270 MLRS 부대가 이동하더군요. 이런 모습을 보면 홋카이도가 북방, 특히 소련-러시아에 대비한 최전방이었다는 게 실감이 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당도한 곳은 아칸 호 방면에 있던 아이누족 테마로 한 민속촌, 아이누코탄이었습니다. 여기서 크게 한 건 없지만, 일단 점심을 먹기 위해서...



그렇게 점심은 저 사슴고기 덮밥으로 해결했습니다. 사슴고기라고 해서 생각보다 특별한 건 별로 없었고, 진짜 이게 사슴고기라는 것을 모르고 먹었다면 계속 모르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아칸 호에 왔으니 아칸 호도 어떻게 생겼는지 봐야겠죠? 아칸 호를 가로지르는 기선을 타기 전에 찍은 아칸 호의 모습인데, 여기도 진짜 일본의 한 호수가 아니라 진짜 슈베르트의 송어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놀랍게도 여기도 람사르 습지인데, 그건 이 호수 바닥에 매우 많은 마리모라는 친구들 때문입니다: 



대충 저렇게 생긴 해조류가 공 모양으로 뭉친 것을 마리모라고 하는데, 이런 애들이 아칸 호 바닥에 엄청나게 깔려 있다 합니다. 



화산을 배경으로 한 아칸 호 한 번만 더 감상하시고 이제 아칸 호를 가로지르는 기선 타러 갑니다. 



이렇게 생긴 기선이 아칸 호 북단에 있는 섬의 마리모 박물관에 15분간 정박하였다가 다시 아칸 호 남단으로 돌아오는 그런 일정이죠. 




분명히 이때만 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어쨌든 아칸 호 기선에서의 풍경 감상하고 가시겠습니다. 



아칸 호에서 저렇게 입수하여 낚시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좀 더 클로즈업하면서 지나가면 살짝 맹그로브 숲의 온대/냉대 버젼 같기도 해서, 여기가 왜 람사르 습지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슬슬 날씨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면 기분 탓이 아닌 게, 저거 찍고 나서 3분 뒤에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마리모 박물관이 있는 섬에 도착했을 때쯤엔 장대비가 오고 있어서, 상륙할 때쯤 저 나무 상자 안에는 우산이 다 준비되어 있더군요. 이 일대에 그렇게 비가 오는 것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닌 듯합니다. 




섬도 생태계 관점에서는 아칸 호 일대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지 않네요. 



아까 잠깐 이야기한 마리모들은 바로 이런 친구들 이야기입니다. 저 공 모양이 다 해조류가 뭉친 것이라죠. 


어찌 되었건 기선을 타고 다시 아칸 호 남쪽으로 돌아옵니다. 




아칸 호 남쪽 연안을 따라 이런 길을 또 지나가다 보면





봇케라고 해서, 이런 진흙 화산 (?)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 상당히 귀한 모습이더군요. 




진흙 화산이었던 봇케를 벗어나며 보인 아칸 호 전경을 끝으로, 아칸-마슈 국립공원에서의 일정을 마쳤습니다. 


사진으로는 담지 않은 내용으로, 저기서 쿠시로로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가 (또) 쏟아져서 날씨 운은 참 별로라는 생각을 하면서 왔는데, 다행히도 쿠시로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비는 그쳤더군요. 그렇게 쿠시로에 도착하며 3일차, 그리고 이번 여정의 절반이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답사기 다음 편에서는 드디어 쿠시로 일대를 벗어나, 처음 일본으로 입국했던 길인 삿포로 방면으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