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선시대 충청도가 충청도라고 불린 시기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거임. 이게 다 반역향으로 찍혀서 행정구역이 강등당한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고려 또한 조선과 같이 반역이나 큰 사건이 발생하면 행정구역의 읍격을 강등하기도 했음.

그 중에서도 특이한 사유로 강등당한 고을들을 정리해봄.


930년 순주 -> 하지현으로 강등

사유: 견훤에게 함락

923년 고려에 귀순하여 순주로 승격하였다가 견훤에게 함락당해 승격 7년만에 다시 현으로 강등당함.


1161년 감음현 -> 감음부곡으로 강등

사유: 자화의 무고 사건

감음현 사람 '자화'가 정서의 처와 향리 인량이 임금과 대신을 저주한다고 하는 소문을 퍼뜨림. 이 소식을 들은 의종이 '임문분'을 시켜 사건을 조사토록 했는데 자화가 인량을 거짓으로 모함한 것으로 밝혀짐. 결국 자화는 강에 던져져 죽임을 당하고 감음현은 부곡으로 강등당함.


1199년 의성현(현령) -> 의성현(감무)로 강등

사유: 적에게 함락

정확히 어떤 적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음. 다만 1199년 2월 명주와 동경 등지에서 도적이 창궐해 삼척, 울진 2현이 함락되고 3월 말 진압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 이 시기에 동경과 가까웠던 의성현 또한 함락되었던 것으로 보임.


1204년 동경유수부 -> 경주로 강등

사유: 반역

동경 사람들이 신라가 다시 번성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격문을 전달하는 일이 일어남. 결국 경주로 강등당하고 동경에 소속되어 있던 고을들 또한 찢어서 다른 군에 내속시킴.


1217년 황주목 -> 고령군으로 강등

사유: 거란군에 함락


1221년 의주 -> 함신으로 강등

사유: 반역

1221년 3월 반역이 일어남. 체포된 주모자들은 3일 동안 조리돌림을 당하고 참수됨. 1221년 한 해 동안에만 의주, 인주, 가산, 곽주에서 반란이 일어나 모두 읍격이 강등됨.


1221년 인주 -> 사인으로 강등

사유: 반역


1221년 곽주 -> 정양으로 강등

사유: 반역


1221년 가주 -> 무령으로 강등

사유: 반역


1257년 양주현(현령) -> 덕령현(감무)로 강등

사유: 적에게 항복

정확히 어떤 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기상 몽골군으로 추정됨.


1259년 원주 -> 일신현으로 강등

사유: 왕명 거역

정확히 어떤 왕명을 거역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기상 몽골 사신이나 몽골에 관련된 왕명으로 보임.


1270년 의령군 -> 진주현으로 강등

사유: 임연이 멋대로 승격해놓은 것을 복구

무신정권 시기 무신정권의 집권자였던 임연이 자신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승격함. 이후 임연이 나가리되자 강등하여 다시 현으로 복구함.


1275년 밀성군 -> 귀화부곡으로 강등

사유: 고을 수령 살해, 삼별초에 협조

군민이 고을 수령을 살해하고 삼별초에 협조하는 일이 발생해서 이전부터 강등 논의가 계속 있었음. 하지만 고을민들이 뇌물을 주고 계속 강등을 막고 있었는데, 결국 1275년이 되어서야 부곡으로 강등당함. 하지만 부곡으로 강등되고 나서도 왕의 측근들에게 또 뇌물을 바쳐 '소복별감'이라는 특수기구가 고을에 설치되었다는 후문이 있음. 


1355년 전주 -> 부곡으로 강등

사유: 몽골 사신 구금

1355년 2월 원의 사신 예스부카의 무리들이 전주에 와서 뇌물을 요구하며 깽판을 놓는 일이 발생함. 당시 전라도 안렴사였던 정지상(<송인>으로 유명한 정지상과는 동명이인)이 요구를 거절하자 되려 예스부카가 정지상을 감옥에 가둬버렸는데,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 전주 백성들이 정지상을 풀어주고 반대로 예스부카의 무리들을 구금해버림. 이 과정에서 예스부카의 동생인 '서응려'가 분노한 백성들의 몽둥이에 뚝배기가 깨져 반병신 상태로 며칠간 골골거리다가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함. 소식을 들은 공민왕이 매우 놀라(실제 고려사에 '경악'했다고 기록되어 있음.) 정지상을 옥에 가두고 전주를 부곡으로 강등시킴.

자세한 에피소드는 고려사 정지상 열전에 기록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는 것도 좋음.


1362년 수원부 -> 수원군으로 강등

사유: 홍건적에 항복

홍건적의 침입때 양광도의 고을 중 가장 먼저 항복함. 이 일로 인해 수원에 소속되어있던 고을들 또한 갈기갈기 찢겨 다른 군에 내속되게 됨. 하지만 얼마 안있어 뇌물을 주고 다시 부로 승격함.


1373년 해주목 -> 해주군으로 강등

사유: 목사가 살해당하는 것을 방관

1373년 9월 왜구가 해주에 침입하여 목사 엄익겸을 살해하였는데, 이를 구하지 않은 향리들을 처형하고 해주목을 군으로 강등시킴.




시간 나면 2탄도 써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