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외국인 여행기)

- 항구에서 바라본 제물포는 가까이 가보니 생각보다 아주 괜찮고 아기자기하게 예쁘며 깔끔한 거리로 포장되어 있었다. 주요 거리의 가장자리는 기다란 석판으로 빈틈없이 포장되어 있었고, 가운데는 자갈돌로 덮여있는 형식을 취한다.


안내자의 말로는 이곳은 과거 포르투갈에서 온 상인들이 거류하던 곳이라 이곳에서 철도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수도에서 넘어오는 조선인 상인들과 물자를 교류했기 때문에 말이 빠르게 이끄는 수레와 행인을 구분하기 위해 생겨난 도로 형식이라고 한다. 


어제 저녁 달리던 말에 채여 중국인 행인 한명이 죽는 바람에 해당 블록은 통행이 금지된 채로 당국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환율로, 원이라고 통칭되는 조선화폐 서너장 정도가 1달러에 해당한다. 


조선의 물가는 발달된 중간 유통업자들의 수익 구조로 인해 일본이나 중국보다 훨씬 비싸다. 


조선 정부도 이를 아는지 제도를 개편해 이들의 과잉 이익을 빼앗으려 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의 반발이 심한지 서울 영등포역에서 내리자마자 정부 시책에 반발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어져 있다.




-조선은 민중 대다수가 붓다를 믿는 불교의 나라로, 과거 민간에서 믿던 불교의 일파가 일본으로 전해질 정도의 불교 종주국이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다수의 조선인은 불교의 교리를 따라 빨간 고기를 많이 먹으려 하지 않는데, 최근의 조선은 노동력을 많이 쓰는 공장들이 들어서있기 때문에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작은 관청에서 인당 하루에 한끼에만 붉은 고기를 마음껏 먹도록 제한하고 있다.




-조선인은 전통복장에 기다란 띠를 둘러 그 끝에 주머니를 넣어두는데, 이 안에는 좋은 향기를 뿜는 건조한 식물 더미가 뭉쳐있어서 체취를 가려준다고 한다. 


조선은 목욕문화가 발달하여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구석탱이에 각질을 없애는 이파리와 목욕을 위한 커다란 솥이 구비되어 있어 인상깊었다. 


때문에 인구밀도가 높아 거리마다 사람이 넘쳐나는 나라임에도 중국에서처럼 고약한 몸냄새와 입냄새로 고생하는 일은 없다.




-서양식으로 새로 지은 왕(최근 왕의 호칭이 “황제”로 바뀌었다.)의 집무실 근처 신도시는 매우 정돈된 직선 도로와 반듯반듯한 석조 사무실 건물이 맞이해준다. 이 기업체 본사와 관공서가 모여있는 ‘특별구역’은 조선 군대가 특별하게 관리하는 구역으로 거리마다 군인들이 일렬로 줄서서 행인들의 행동거지를 살핀다. 이들은 모든 용품을 현금으로 거래하며 매우 규율이 잡힌 채로 예의바르게 물어볼 것이 있는 나를 대했다.




- 조선의 정치 체제는 다소 특이한데, 정부와 더불어 법령을 공포하는 입법부가 있지만, 사법부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 역할을 왕의 직속기관이 담당한다. (엄밀히는 사법부가 왕의 하위기관이다.)


따라서 원칙 상 각 지역에 지부를 두고 인민을 관리하는 이들은 입법부의 결정 및 법령을 따라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은 왕이 즉결처분을 내려 말단 기관에 명령하며 이럴 경우 법이 그냥 무시되기도 한다. 


실제로 항소 제도의 최종 선고처 역시 왕의 과거 본궁의 해자너머 바로 동쪽에 있다.


지난해에 주택 임대사업자를 사칭하여 조선 전국의 대도시에서 불쌍한 서민을 속여 한탕 해먹은 사기집단 50명이 재판 도중 왕의 긴급조치로 총살되었고, 이들로 인해 조선의 임대사업 제도를 정비하라고 왕이 입법부에 일방적으로 요구를 행하는 일도 있었다.




-조선의 왕을 보좌하는 국무대신들은 사택에 머무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왕의 관저 근처의 커다란 집합주택단지에 살아야 한다. 이 주택단지의 중앙거리는 왕의 관저에서 한눈에 다 보이는 구조다. 


이는 반란 모의를 엄금하기 위한 조치이며 왕이 대신의 공저를 방문하는 것만으로 큰 영광이라고 여겨야 한다.




-조선의 집들은 대개 마당이 있는 ㄱ자나 ㅣ자의 집 위에 집 한채가 더 얹어 있는 2층 구조로 돼 있다. 


대체로 주택가의 2층집들은 2층의 발코니를 빨래 넣어놓는 장소로 쓰는 모양이다. 가난한 집들은 평범하였지만, 중산층의 가정집만 되어도 처마 가장자리를 살짝 올려짓는 방식이 대다수인데 이 때문인지 조선의 주택가는 허름하여 부서져가는 중국의 주택가나 밋밋 단순한 일본의 집들보다 더 동양적이고 화려해보였다.




-조선 도시 민중들의 옷맵시는 서양 도시에 꿇리지 않을 정도로 매력 있다. 최근 서울 한강변에 방직 공장이 많아지며 질좋고 값싼 옷감이 대거 시장으로 유통된 탓이라고 한다. 


전통 복장과 서양식 복장을 둘다 활용한 복장도 있고, 화려한 무늬의 전통을 강조하는 옷차림도 있는가 하면 그냥 흑백의 단순미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의 장시는 상사에서 파견한 정장차림의 판매직원과 현지 상주 상인, 그리고 타지역 및 다른 나라에서 온 상인들로 북적인다. 


정부는 이들이 거리를 무질서하게 덮는 일이 없도록 이들이 물건을 팔 구획을 각각 사각형으로 정해놓았다. 구획을 정해놓긴 했어도 서로 장사가 잘되는 구획을 차지하려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빠르게 달리는 인력거들이 서로 부딪히는 바람에 욕설로 말싸움을 하는가 하면, 수레 위에 가두어돈 짐승들이 탈출해 인파를 가로지르며 난장판을 만드는 일도 허다하다(대개 이것들은 잡히자마자 즉석에서 도마 위에 올려진다.)


화려한 기와집들이 일렬로 나열된 복잡한 시장 입구에서 풍겨오는 자극적인 조선의 길거리음식과 기름냄새, 그리고 담배냄새가 뒤섞여 날아오는 풍취는 복잡한 인상을 실어온다.




-조선의 수도 서울은 유럽의 대도시에 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거대한 도시이며 동양의 수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긴 하나, 외곽으로 나가면 무질서하게 난립한 주택가들과 공장 단지가 뒤섞여 매연에 휩싸인 채 생업에 종사하는 불쌍한 인민들의 거주지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조선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가 약 230만명인데, 이들 중 150만명 정도가 호흡기 기관에 불편을 감지한다고 하니 정말 심각한 것이다. 


정부는 서울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바다같은 강 남쪽에 새로운 택지를 개발하고 있으나 택지를 조성하는 민간 사업자들이 값싼 땅값과 배후 인력을 노리고 로비를 행하는 제조업체의 제안에 휘둘려 새롭게 지은 주택가 주변 나루터에 금세 시커먼 연기가 나오는 공장이 들어서는 형국이다.




-조선 도시의 실개천은 겉보기에 예쁘지만 웬만하면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고즈넉인 기왓집 사이로 버드나무가 감싸는 실개천은 언뜻 보기에 좋아서 뛰어들고 싶게 생겼지만 각 가정에서 내보내는 온갖 오물이 덮개로 막아놓은 길바닥 양쪽 하수구를 지나 전부 하천에 버려진다. 강바닥 중 어디에 똥무더기가 있는지 맨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으니 아예 입수는 생각도 하지 말아라.




-10년전부터 조선 정부는 전국민을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다. 때문에 아침마다 길거리는 학교에 가기 위한 아이들로 뒤덮히다시피 한다. 이들의 제복은 대개 조선의 전통 복식을 약간 개조하여 폭이 널널하니 활동에 편한 형식이다.


 집집마다 엄청난 양의 책을 꽂아놓은 책방(조선말로 서재라고 칭한다.)이 있는데 낮 시간에 성인 남자가 노동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고 뛰놀고 나서 저녁시간이 되면 창 너머로 어른과 아이가 책을 읽는 광경이 대다수의 집에서 관찰된다. 이러한 교육열 덕분에 조선의 문맹률은 아주 낮으며 인쇄 산업이 크게 흥한다.




-조선은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영국보다 조금 작은 땅에 2500만명이 모여 산다. 영국보다 인구 절대치는 작으나 조선인이 사는 강토는 영국과 달리 험준한 산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를 고려하면 말도 안되게 인구가 가까이 모여 살고 있는 것인데 이는 인구부양력이 좋은 비옥한 토지 덕분에 가능했고 날이 갈수록 산업이 부강해지는 요즘은 이 인구가 더 빨리 불어나고 있다.


 높은 인구밀도 탓인지 훌륭한 공공치안 체계 탓에 그런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조선의 범죄율은 아주 낮다. 실제로 내가 머물고 있는 구역을 통틀어 지난 1년간 살인이 세 건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또 동네마다 설치된 민간 자경대의 자치소 건물 앞에는 항상 누군가 길에 떨어뜨린 물건들이 한무더기씩 쌓여있다.




-조선은 훌륭한 국민성을 지닌 국민에 의해 이루어진 나라이며 교육열이 매우 높고 다른 동양 국가들보다 일찍이 자신들의 힘으로 효율적인 정부 체제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과거에 군주국이던 중국과 거대한 러시아를 일본과 쓰러트리고 난 뒤 잽싸고 기민한 일본인들이 사사건건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려 하기에 조선 국내외의 정세는 심상치 않다.


 지금은 몇 가지 난관이 있지만 이를 잘 거치는데에 성공한다면 조선인들은 지금껏 발휘한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들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낼 것이다.


 이들을 방해하고 싶어하는 일본인들 탓에 다소 지연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과거의 군주국이었던 중국은 지금의 격차보다 말도 안되게 크게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