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이었던가요. 황교안 대표가 광주를 방문해서 한 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시민들은 어디에 살든, 다른 위치에서 다른 생각으로 다른 그 무엇을 하든, 광주시민"


이 발언은 저에게 마치 케네디의 베를린 연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2천년 전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로마 시민이다.(Civis Romanus sum)”였습니다. 이제 자유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Ich bin ein Berliner.)”입니다.


...모든 자유인은 그들이 어디에 있건 베를린 시민이라 할 수 있으므로 저 또한 자유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Ich bin ein Berliner.)”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냉전의 최전선에 있던 베를린 시민들에게 헌정한 이 연설. 베를린을 80년 광주로, 냉전을 독재 타도로 치환했다고 본다면-그 의도가 무엇이든-광주 시민들에게 바치는 훌륭한 은유이자 찬사일 것입니다.


저는 광주 시민입니다. 자유로운 시민이어서도 하지만, 실제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광주 사람들에게 5월은 아프고 애틋한 달입니다. 내 주위의 누군가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훌쩍 떠나버린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팠던 5월을, 저는 홍콩에서 다시 보고 있습니다.


역사를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한 저에게, 역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물으시면 저는 '기억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스쳐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억해야 할 것은 분명 존재합니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中


그들과 함께 절정에 서지 못하는 비겁한 제가 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자유로운 광주 시민으로서, 역사를 가감없이 기록하는 사관(史官)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홍콩을 기록합니다.


먼 훗날 누군가가 과거를 돌아볼 때 1963년의 베를린 시민이, 1980년의 광주 시민이 그러했듯 2019년, 가장 자유롭고 명예로운 이들은 '홍콩 시민' 이었노라 회상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홍콩 시민들이 자유와 인권을 쟁취할 수 있기를, 또 한 사람이라도 다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