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년 전인 1990년, 서울의 하수시설이 아직 미비하던 시절에 저지대 주민들에게 장마철이나 태풍은 호환마마 같은 것이었다.


브라운관에서 물이 가득찬 한강변을 보여주며 아나운서는 한강의 수위를 말해준다. 지금은 천호역 일대라고 하면 꽤나 번화한 도심이지만, 그 앞의 풍납동은 한강이 넘치면 서울에서 가장 먼저 잠기던 곳이었다. 그런 풍납동은 서울시민들에게 홍수가 남기는 일종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풍납동에 들어온 한강물은 차례차례 성내동과 천호동을 집어삼켰다.


아아, 결국 풍납동이 침수되었다는 소식의 저지대 주민들의 마음은 불안해지기만 한다. 지금 짐을 쌀까? 그래도 좀만 더 있어볼까?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넘실대는 한강물은 다음으로 침범할 동네를 찾고 있었다.


금호동, 옥수동, 한남동은 그 다음이었다. 지금은 한강뷰라면서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온 자리지만, 30년 전만 해도 홍수에게는 가장 지역이었다. 저지대에서는 사람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서 배를 타고 다니고, 고지대의 부잣집들은 그런 수재민들을 내려다 보는 조금 어처구니 없는 광경이다.


중랑천 수위가 높아지면서 응봉동 저지대도 침수되었다. 저지대를 따라 놓인 경원선 철도부지를 따라 물은 파고들어 왕십리역 앞으로 밀려들어갔다. 사근동과 마장동도 예외 없이 청계천 물이 채웠고, 산 위에 홀로 우뚝 선 한양대학교는 섬처럼 변했다.


용산역은 대합실까지 물이 차서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었고, 노량진과 영등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고양군은 아예 제방이 무너져 군 전체가 물에 잠겼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 제방을 복구하면서 만든 도로가 지금 자유로라나. 옛날 그 물바다로 들어온 도시가 바로 일산신도시다.


앞에 나열한 동네들의 공통점은 서민 주택가였다는 점이다. 한강변으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지역만 잠기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참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 을축년 대홍수의 얘기를 듣는 것 같지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까지는 서울도 이랬다.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이런 후진적인 수재가 70년도 넘게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서울에서 수재란 옛날 옛적 사라진 전염병 같은 존재가 되었다. 90년 대홍수 이후 한강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덕택이다. 예전에는 기피의 대상이었던 한강변 동네에는 지금은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서울에서 가장 먼저 침수되던 풍납동이 이제는 그 일대에서 홍수에 가장 안전한 동네가 되었다고 하니 상전벽해랄 밖에. 오늘 도쿄에 닥친 홍수를 보니 30년 전 서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