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기억에 따라 왜곡되거나 변질됬을 수 있음
*중국 임시정부 답사기 1, 2일차와 이어짐


'야 일어나!'

'깜짝이야! 왜요 형?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눌러 가라 앉히며 말했다.
'우리 6시 30분까지 조식 먹고 가야하는데 지금이 7시야! 챙길거 챙기고 빨리 나가자.'
간단히 세수를 하고, 나는 선배를 따라서 뱃지와 안경을 챙겨 나왔다.
방에서 나오니 여자 선배들이 옆방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왜 그래? 거기 남자 애들(남자 선배 2명) 안깼어?'
'아까 깨웠는데 다시 자나봐. 벨 눌러도 답이 없네.'
'너희들 먼저 가서 조식 먹어. 우리는 선생님 불러올게.'
하긴 우리는 새벽 세시나 되어서 침대에 누웠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고 4시간 밖에 못 자다니...
나는 로비 식당에 들어가 간단하게 국수와 소세지를 담아 먹었다. 이 호텔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이렇게 마친다고 생각하니 꽤나 안타까웠다.
여튼 대부분의 인원이 늦게 식사를 해서 일정이 30분 지연되어 꽤나 촘촘하게 바뀌었다. 
우리는 각자 방에서 카드키와 어젯 밤 미리 싸둔 짐을 들고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호텔 밖의 버스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5일간 중국에서 묵었던 호텔 중, 
그 호텔만큼 좋은 호텔이 없었다. 
버스에 짐과 몸을 올리고 오늘 일정을 확인해보니 여러 도시를 이리 저리를 돌아다녀야 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잠깐 눈을 붙혔다.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싱 하이옌현 재청별서에 도착했다. 
이곳은 다음으로 갈 김구 자싱 피난처에서 도망나온 김구 선생이 자보성의 도움으로 잠시 머무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처인 해염 주씨의 별장이다. 
관광버스 밖으로는 수 없이 펼쳐진 녹차밭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별장 안으로 들어가기 까지는 꽤 거리가 있기에 우리는 작은 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김구의 피난을 도운 자보성에 대한 내용, 김구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구가 잠시 머무르던 침실과 집무실도 보았다. 
우리는 재청별서를 나와 자싱 매만가 76호(김구의 피난처)에 도착했다. 이곳도 자보성의 도움으로 마련한 곳으로 자보성의 수양아들 진동생의 별채다. 자싱시 매만가 76호는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2층 목조건물로 보였다. 주변의 다른 건물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국외유적지와 별반 다르지 않게 관리원이나 공안이 없었다. 
표지판이 있는걸 감지덕지로 여겨야겠지. 
우리는 1층 접견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은 제각각 높이가 다르고 가파라 오르기가 사나웠다. 2층에 다다르니 먼저 바닥문을 볼 수 있었다. 바닥문을 열어 아래를 보니 제법 높이가 있었다. 
사다리를 놓아 썼으리라 짐작은 되었지만 일제 경찰들이 달려드는 상황에서 사다리를 타고 도망가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으리라고 생각했다. 
2층에 위치한 김구 선생의 침실과 방을 둘러보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집과 이어진 남호 호숫가로 가보니 카악같이 생긴 작은 배가 있었다. 
두 사람 남짓이 겨우 탈 수 있을정도로 배는 작았다. 김구가 일제 감시를 피하기 위해 결혼해 같이 살던 뱃사공 주애보가 몰던 그 나룻배인지는 모르겠으나 임정 요인들에게까지 자신의 거처를 숨겼을 정도로 마음고생을 하던 김구 선생에게는 이 작은 나룻배에서 호수에 떠 있으며 주애보와 함께하던 시간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근데 충격을 받은 부분이 있었는데, 1층에 오래된 부엌을 지나 더 들어가면 창고같은 곳이 나오는데, 그 곳에는 오토바이 여러 대가 세워저 있었다.
 그 오토바이들은 누군가 그곳에 잠시나마 둔 것일지 아니면 원래 이 집의 주인이 세워둔 것일지 나는 몰랐다. 
한국의 국외사적지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다 못해 땅에 쳐박힌 것은 알 수 있었다.
(김구 선생의 침실)
 그 후 걸어서 100m 정도 되는 거리에 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지가 있었다. 
내부는 임정 요인들이 당시 쓰던 물건들과 장소의 용도가 잘 표기되있었다. 
1층에는 재청별서같이 199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던 자보성에 대한 내용이 세세히 적혀있었다. 그는 임정 요인들과 김구가 피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가족까지 동원할 정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는 무엇을 위해 임정 요인들에게 온 힘을 다했을까.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는 항저우로 이동하기 전 중식을 먹으러 외파교에 갔다. 
우리가 간 식당은 옛 중국식 목조 건물들이 모인 마을에 있었다. 
들어가자 마자 1층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어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건물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주 보았지만 식당에서 피는 것을 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자리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밥을 먹었다. 
다양한 요리들이 준비되어 있었으나 생선찜과 고기에서 향신료의 향이 세 먹을 수 없었다. 
나는 겨우 향신료 내가 덜한 고기조림과 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거리에서 버블티 전문점에 들어가 흑당버블티와 생과일주스를 주문했다. 
가격은 간식비가 선생님에게 있기 때문에 내가 계산을 안해서 모르겠지만 내가 받아든 흑당버블티는 얼음이 거의 없고 음료 용량은 800mL정도로 매우 대용량이었던것 같다. 
어제 예원 옛거리에서 먹었던 흑당버블티와는 완전히 다르게 맛도 좋았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자싱에서 항저우까지 거리가 꽤 된다는 것이었다. 
흑당 버블티는 고용량에 카페인이 들어있어 이뇨 효과를 촉진시켜 결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를 세우고 우리 모두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입구)
항저우 임시정부청사에 도착했다.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가 광복 전까지 항일운동의 대표기구 역을 수행했던 마지막 청사인 만큼, 굉장히 보존이 상해 임시정부 청사같이 잘 되있고 안내원과 관리인도 있었다. 임시정부 청사 내부에는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에 대한 내용과 임시정부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중국 국민당이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지원했다는 내용의 전시물이 있는게 다른 국외사적지와는 다른 차이점이 있었다(국민당 언급).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내부의 기념관이 생각보다 커서 관람 시간이 많이 든 탓에 항저우에 임정요인들이 처음으로 와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로 이전하기 전까지 쓰던 청태 제 2여사를 방문하는게 취소되었다. 대신에 한국독립당 사무소 터가 있다고 추정되는 사흠방을 가기로 했다. 사흠방으로 향하는 길에는 낡은 아파트들과 담벼락에는 빨간 배경에 노란색의 중국어로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 길은 더럽고 불쾌한 냄새가 났다. 나는 상하이의 높은 빌딩들을 생각하며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빈부격차가 있다는것이 모순적이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흠방에 도착했다. 사흠방에 한국독립당의 터가 있다는 것말 알려져 있고, 현지인들이 살기 때문에 입구에서 더 들어가지 못하고 사진만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사흠방 입구)

(더 안쪽에서 촬영한 사진)
우리는 다시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쪽으로 돌아가 항저우의 서호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온 길을 따라 도로를 건너려는데, 
'조심해!'
선배가 내 팔을 잡아 당겼다. 
순식간에 오토바이가 내 옆을 소리없이 지나갔다.
중국의 오토바이나 스쿠터는 매우 조용하지만 빠르다.
 전기차 산업을 정부에서 적극 장려해 오토바이, 스쿠터 같은 웬만한 차종은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리소문없이 달리기 때문에 순식간에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도로 위의 암살자'인 셈이다.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지나쳐 더 가보니 서호가 나왔다. 
서호는 중국에서 손에 꼽는 호수답게 매우 넓었다. 
(뿌옇게 보이는 서호)
그러나 그날 기상이 좋지않아서 멀리까지는 볼 수 없었다. 덕분에 가져온 마스크를 쓸 이유가 생기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서호는 5일의 탐사 중 별로 인상깊지 않았다.  
석식을 먹으러 갔다.
(버스에서 찍어 흔들린 식당 사진)
우리가 석식을 먹으러 간 곳은 부상인상용이란 곳이었는데 입구에 들어가자 해산물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해산물 요리를 나올 줄 알았지만 칵테일 새우가 든 볶음밥이 있는 것 외에는 별반 다를바 없는 식사였다. 근데 3일차 석식은 일정 중 가장 끔찍한 식사였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고 있어서 담배연기가 직접 왔다. 나는 그냥 식사를 빨리 마치고 화장실에 틀어박혀서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송셩가무쇼를 보러갔다. 입구가 매우 화려했다.
(화-려한 입구의 모습)
송셩가무쇼를 하는 극장은 민속촌 내부에 있었다. 민속촌에서는 놀라운 묘기를 하는 사람들과 각종 조형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많았다.
극장에 도착하니 관람석의 수가 상당했다.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는 동안 무대에서는 봉을 가지고 하는 묘기가 펼쳐졌다.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됬다. 공연의 내용은 중국의 탄생과 남송에 대한 내용으로 남송 황제 즉위식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각 나라 사신들의 공연, 그리고 서호에 얽힌 이야기에 대한 것이었다. 공연은 주로 감동적인 연기라기보다는 화려한 액션과 묘기, 그리고 놀라운 특수효과들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황제 즉위식에서의 웅장함과 서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레이져쇼가 가장 인상깊었다. 그런데 중화사상이 영향을 준 까닭인지 러시아와 중동에서 사신이 와 공연을 하기도 하고, 한국의 아리랑이 나올 때에는 배경에 경복궁이(...) 나와서 역사적 고증이 엉망이었다. 그리고 레이져쇼를 할 때는 눈이 부셔서 뒷좌석에 앉은 중국인들도 다 성질을 냈다.

(레이져쇼)
(경복궁 무엇;)
(앞자리에서 일어남;)






우리는 연극이 끝나고 민속촌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그냥 집합 지점에 선배들과 모여있었다.

(민속촌의 모습.)
시간이 다 되어 항저우에서 묵을 호텔인 마르코 폴로 호텔로 왔다. 
로비는 비교적 작았다. 방은 깔끔했다. 우리는 짐을 풀어 놓고 몸을 씻은 후 로비에 있던 작은 매점에 들렸다. 
나는 건망고를 생망고로 착각하고 샀다. 꽤 오래 되어서인지 맛은 별로였지만 나눠먹었다. 우리는 각자 매점에서 산 간식과 함께 보드게임을 즐겼다. 벌써 여행의 반절이 지나갔다.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내 마음과는 별개로 나는 침대에 눕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