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하자마자 수원화성 박물관을 방문했다


화성을 짓는데에는 3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정조는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릉을 이장하기 위해 민가를 철거하고 그 주민들이 살 곳을 위해서 화성을 건설했다.

또한 자신의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고 노후에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서 화성을 건설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조가 젊은 나이에 죽으며 실현되지 못한다.


전례없이 비극적으로 죽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효심은 대단했다. 하지만 끝내 사도세자는 정조대에 추존되지 못하고 고종대에 가서야 추존되게 된다.

 

625 전쟁 이후 손상되었던 화성을 복원하는데에는 화성성역의궤가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대에 복원한 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은 기록대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명니의궤가 아님)

뎡니의궤는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한글로 쓴 의궤이다.

다만 현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병인양요때 약탈된 것은 아니고 선교사에 의해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물관에는 외국의 성곽에 대한 내용도 있었는데 화성 축조에 동서양의 기법이 융합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약간 뜬금없는 조총


야외에는 거중기, 녹로가 설치되어있었다.

솔직히 박물관은 빈약한편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수원천을 건너면 화성 행궁이 있다.


수풀이 우거진 모습


행궁 앞에는 홍살문이 세워져있어 고고한 분위기를 풍긴다.

뒤로 보이는것은 정문인 신풍루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좌익문이 나온다.


행궁 안에는 이런식으로 연출이 되어있다.


행궁 뒤에는 팔달산이 있고 산성도 지어져있다.

행궁이 한눈에 보이는 모습.


행궁 앞에는 수원시립미술관이 있었는데 안에 행궁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행궁 옆에 있는 거대한 불상도 그려져있는 모습




나혜석의 자화상도 전시되어 있었다.


북쪽으로 이동하여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으로 왔다.

보통 남문이 정문인데 화성은 임금이 북쪽에서 행차하기 때문에 북문이 정문인 것이다.


장안문은 옹성을 쌓아 이중인 구조였다.


성문 안쪽에는 용이 그려져있었다.


뒷모습


성벽 위에서 본 모습


전각 안쪽 모습


성벽 위로 올라오니 길게 뻗은 성벽이 잘 보였다.

성벽이 매우 가파르고 견고하게 되어있었다.


성벽에는 홍이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성벽에는 이런 구멍같은게 나있는데 방어적 용도인것으로 보였다.


令자가 적힌 깃발이 세워져있다.


성벽을 따라서 걸었는데 날이 매우 더웠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동쪽으로 성벽을 걸어 창룡문에 도착하니 유네스코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돌과 들판이 있었다.

성 뒤로 흙을 쌓은 것은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있다.


창룡문은 성문을 정면으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옹성이 쌓여있었다.

사실상 재래식 성곽의 최종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창룡문 앞에는 열기구가 있었다.

화성을 한눈에 보기 위해 탔다.


방금 봤던 창룡문이 한눈에 보인다.


수원화성의 특징인 돌출된 망루가 잘 보인다.

이러한 구조는 망루끼리 서로를 돕고 삼면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이것을 치성이라고 하며 이것이 더 발전한게 성형 요새이다.


더운 날에 걸어다니니 지쳐서 더 돌아다니기는 힘들었다.


오는 길에 찍은 타임머신 타고온 여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