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기억에 따라 왜곡되거나 변질됬을 수 있음
*중국 임시정부 답사기 1, 2, 3일차와 이어짐

 
흠... 사실 이렇게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될 지는 몰랐는데 제작자가 게을러서 5일 수기 다 쓰는게 3개월이 걸렸네요 ㅋㅋㅋㅋ
 계속 봐주셨다면 정말 감사드리고 지금 보시는 분들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D
마지막이라 그냥 날려써서 글 상태는 엉망임(ㅈㅅ)
기회가 되면 후기로도 뵙겠습니다.





'마지막이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해외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다행히도 마지막 날은 늦지 않아 호텔의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중앙반점의 조식은 호텔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는 상충되게 끔찍했다.
나는 배라도 채우기 위해 과일 몇개를 담아와서 먹었다.
곧 이동 시간이 되었다. 우리를 계속 인솔하시던 선생님의 표정에는 피곤하면서도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셨다.
나는 버스에 짐들을 가득 싣고 마지막으로 몸을 맡겼다.

(그냥 마지막이라서 버스에서 찍은 풍경)
우리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난징 대학살 역사관.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의해 희생된 것을 기리는 곳.
그 안타까운 일을 기억하는 곳으로, 우리는 떠났다.
난징 대학살 역사관의 입장료는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난징 대학살 역사관의 입구부터 죽은아이를 든 조각상과 평화의 여신상이 보았다.
(평화의 여신상)
(죽은 아이를 들고 절규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상.)

우리는 더 안쪽으로 이동해 전시관 내부로 들어갔다. 
전시관의 내부에는 발굴된 난징대학살(중국 명칭 난징대도살) 피해자들의 유골들과 난징대학살을 입증하는 자료들, 그리고 학살에 사용되던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시물의 수위는 시체로 가득 찬 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정도로 매우 높았다. 
사진을 보여주기엔 너무 수위가 높아 올리지는 않겠고 대신 기억에 남는 신문기사가 있었는데 이것을 올리겠다.

(난징에서 두 장병이 목 베기 경쟁을 펼쳤다는 기사)
보다시피 난징이 함락된 이후 두 병사가 각각 106명, 105명 씩 죽였으며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이다. 군인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묘사하고, 이를 경쟁했다는 것에 나는 구역질이 났다. 
난징 대학살 역사관의 사료들에 의하면, 난징 대학살이 일어날 때, 난징의 가옥 중 28.8%는 방화되고, 88.5%는 파괴되었다고 서술하며. 또한 난징의 여성중 2~8만명이 강간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산되어 있다.

(곳곳에는 난징 대학살 당시 사망한 사람의 수인 30만명이 적혀있다)
모든 전시물들이 일본어로 쓰여 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이런다고 일본인들이 이곳을 기꺼이 찾아올 지도 의문이다. 이런 잔인한 행태를 자신의 조상들이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과연 이곳을 찾아 올까.
우리는 관람을 마치고 출구로 나아갔다. 출구는 어두컴컴한 통로 주변에 난징 대학살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하롱하롱 거리는 형태였으며 12초마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뜻하기 위해 12초마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불려졌다. 전시실의 끝에는 '과거를 기억해 미래의 스승으로 삼자'는 글이 새겨져있었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난징 대학살 역사관을 빠져 나왔다.

중식을 먹으러 동준식당으로 향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식사는 꽤나 빠르게 끝났다. 여전히 맛은 없었다.

우리는 난징공항으로 향했다. 
난징 공항에 도착 후 우리는 가이드와 작별인사를 했다.
보안 검사를 받는 도중 공안이 너무 꼼꼼히 몸 수색을 해서 놀랐다.
그런데 자켓 앞주머니에 검색대에 제출하지 않은 사탕이 있어서 압수당했다;

나는 면세점에서 기념품으로 판다 인형을 사려다가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다. 
만년필을 살려고도 했지만 기본 가격이 1000위안부터 시작해서 그냥 포기했다.

비행기는 첫날과 동일하게 아시아나를 이용했다.
비행기 좌석은 비상탈출구 바로 옆자리라서 뭔가 불안했다.
기내식으로는 양념된 닭고기와 밥이 나왔다.
어김없이 터뷸런스(난기류)는 또 우리를 반겨주었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노래를 들으며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영화를 보고 있었다.

비행기는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과 관련된 종이를 작성하고 보안검사를 마쳤다. 
인천공항은 첫날과 같이 안개가 끼어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누구는 드디어 끝났다며 기뻐하고,
또 누군가는 피곤에 못이겨 잠들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여행이 끝난것을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나는 여행이 이리 벌써 끝나버린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이런 활동을 더 해볼걸', '더 사진을 찍어올걸' 따위의 자책이나 하며 나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산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평지가 아닌 들쑥날쑥한 산들로 가득했다. 

정말 이제 한국에 있구나,
라는 생각에 빠져 
나는 얼빠진 사람처럼 창밖을 계속 바라보았다.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버스가 학교에 도착하자 우리를 맞아 부모님들이 나와계셨다.
부모님은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건네면서도 내게 괜찮은지, 아픈 곳은 없는지 물으셨다. 
나는 그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작별인사를 보낸뒤에 해어졌다.

그렇게 임시정부에 대한 나의 여정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