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이런거 한번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댓글이 기억나서 모아봤는데 이제 와서 댓글 보니까 비추만있네.

 ......하지 말걸 그랬나...?


1. 고봉로

광주 시가지에서 임곡동으로 가는 길이며, 이곳이 고향인 조선 중기의 유학자 기대승의 호 '고봉'에서 유래. 임곡동을 넘어서 장성으로 길이 이어져 있지만 그럴 바엔 1번국도나 고속도로 타는게 나으니 역할은 확실히 임곡동 가는 길 정도. 호남고속선 신설이랑 하남3지구 개발로 끝이 약간 잘려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기대승에 대해 말하기 앞서 유교 원리에 대해 언급하자면, 유교에서 이기론은 우주 원리를, 사단칠정은 인간의 감정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이기론에서 이는 변하지 않는 것, 기는 변하는 것이며, 사단칠정 중에서 사단은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 4가지(이 사단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로 '인의예지'), 칠정은 '희•로•애•락•애•오•욕' 7가지이다. 

 이때, 사단칠정과 이기론을 연결하고자 이황은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며, 이와 기가 별개의 것이라 말했다. 기대승은 이에 반하여 사단과 칠정 모두 기에서 발하며 이와 기를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여 사단칠정논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기대승은 장장 8년에 거친 문답의 결과 이황의 주장을 철회시킨다.


 어렵다. 원래 더 많고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데, 이정도로만 하는걸로. 아마 수능 국어유형 공부하며 이기이원론/일원론에 대한 문제를 보았거나 윤리계열 사회 선택과목을 공부한다면 그나마 익숙할지도 모를 이야기.

 사실 사단칠정이니 이기론이니 하는 내용보단 기대승이 복잡미묘한 유교를 조금 더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으며 이를 높게 평가받는가는 것 정도만 이해하는게 더 편할거다.



2. 용아로

 광산구 북부의 남북축 도로 중 하나. 하남산단의 정중앙을 뚫고 내려와 소촌동에서 딱 끊겨 송정동을 가질 못한다. 뭔가 도로가 이어질 낌새만 보이고 마는게 특징.

 일제 후기 활동한 시문학파 시인 박용철의 호 '용아'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출생지는 소촌동이며, 용아생가가 남아 사적지로 지정되어있다.


 그의 초기작, 식민지 통치에 대한 설움을 노래한 '떠나가는 배'가 가장 유명하다. 다만 박용철은 김영랑 등과 함께 순수시를 즐겨 쓴 시문학파인게 특징. 순수시란 시에 (주로 정치•사회적인)목적이나 의도를 넣지 않고 순수하게 서정성만을 표현하려는 것으로, 작가의 의도보다는 시 자체의 형태 등을 연마한 시문학파는 그 특징을 눈여겨본 사람들에 의해 기교파라고도 불리게 된다.

 이들의 순수시 운동은 곧 한국 현대시로 발전하게 되어 현대에도 높이 평가받는다. 이들과 함께한 정지용이 하필이면 북으로 끌려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판에 한동안 이름도 꺼낼 수 없던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쉬운 부분.



3. 임방울대로

 마찬가지로 광산구 북부 남북축 도로중 하나. 광산구 시가지 정중앙을 관통하는 사암로를 기준으로 용아로가 서쪽, 임방울대로가 동쪽이다.

 첨단지구가 생길때 그 중앙에 첨단로, 운남지구가 생길때 그 중앙에 운남로, 그 사이에 수완지구가 생기며 하나된 임방울대로가 된다. 언급된 택지지구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나고도 엄청난 교통량이 이 도로를 의존하고 있음은 예상 가능한 부분.

 이것도 송정동은 가질 못하고 무진로에서 끊기는데 공항이 재개발되면 분명 연장하지 않고는 못버틸거다.


 임방울은 일제강점기 판소리 명창으로, 고향은 송정이다. (임방울대로 타고 그의 고향을 못간다...) 호는 고향을 따서 송정, 임방울은 예명이고 본명은 임승근이다. 서편제에 속하며 목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라디오출연과 음반발매까지 이룬 당시 판소리계의 슈퍼스타.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의 고문으로 국악진흥에 힘쓰며 판소리활동을 이어가다 51세의 나이로 사망, 장례는 최초의 국악예술인장으로 치러졌다.



4. 송강로

 무등산 너머 소쇄원 가는 길. 이 길이 끝나는 곳에 담양군 가사문학면이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송강 정철의 이름을 기리는 길, 많은 설명은 하지 않아도 정철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정철이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렸을때 은거한 곳이 바로 자신의 고향 창평, 지금은 담양의 일부인 이곳이다. 여기서 많은 작품을 집필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수험생들을 괴롭히는 가사문학의 정수 그거 맞다. 이외에도 주변엔 그가 즐겨 찾았다는 식영정이나, 조광조의 기묘한 사화 때문에 정치에서 손을 뗀 양산보가 지은 소쇄원 등등. 가사문학면이란 이름에 걸맞게 주변에 볼거리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