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 제물포구(구 중구+동구)(약 10만명)

1954년 처음 구를 신설할 때 생긴 중구 및 동구가 전신. 1995년 개편 당시 통합되었으며, 중구가 제물포구로 바뀌고 동구의 모든 구역 및 자산이 제물포구로 넘어가는 형태로 통합했다. 동구의 데이터는 같은날 신설된 연수구로 바뀌어서 사용중. 인천항은 제물포구를 상징하는 시설과도 같다. 


주황 : 미추홀구(구 남구)(약 40만명)

1954넌에 중, 동구와 함께 남구로써 탄생. 1980년에 구의 동부(현 인천1호선 동부)가 남동구로 분리되었고, 1995년에 문학산 남부를 연수구로 분리되었다. 구 인천도호부청사 등이 위치했단 점을 살려서 1995년 분구 당시에 미추홀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예전에 용현동에 버스터미널이 있었으며, 현재는 인하대학교가 위치해있다. 


노랑 : 남동구(약 36만명)

1980년 남구의 동부를 분리하여 신설. 이후 1988년 남동구의 동부를 소래구로 분리하고, 1995년 구의

남부를 연수구에 내준다. 남동구의 이름 유래는 구 남촌면 및 조동면이나 탄생 이후 한동안은 남구의 동쪽이라는 의미로 착각되었다. 구 남촌면 지역 대부분이 연수구로 넘어갔음에도 마땅한 대체 명칭을 찾지 못하여 남동구라는 이름을 현재도 유지중이다. 인천광역시청과 인천터미널 등이 있고, 구월동으로 불리는 인천의 중심지가 바로 남동구에 존재한다. 


분홍 : 소래구(약 21만)

1988년 구 소래면 지역을 남동구에서 분구한 지역. 인천도호부 출신 지역중 가장 서울과 가깝고, 소사구 등 부평도호부 지역과도 교류가 많은, 인천 출신 지역 중 가장 인천스럽지 않다고 불린다. 한편으로는 가장 늦게 철도가 들어선 구 중 하나로, 2009년 서해선 전철이 개통되기 전에는 구 경계를 스치는 노선마저 없었다. 그러나 서울과 가까운 이점을 살려 서울 통근객들에게 주목받는 지역. 


라임 : 연수구(약 30만명)

1995년 남구/남동구의 남부 지역에 신설된 구. 구의 데이터 등은 당시 사라진 동구의 것을 이어받았다. 1기 신도시와 함께 지정된 연수지구 개발에 따라 분리된 지역으로, 원래는 구 남구 지역만 분구하려 했으나 도심지역이 된 남동구의 업무량 증가와 연수지구 만으로는 규모가 애매하다 판단되어 남동구 남부 또한 편입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남동국가산업단지가 남동구가 아닌 연수구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후 2015년 송도국제도시 지역을 송도구로 분리하게 된다. 남동산단 외에 구)송도유원지, 소래포구 등이 연수구에 위치해있다. 


초록 : 송도구(약 21만명)

2015년 연수구에서 분구된 지역으로, 2000년대부터 간척사업으로 생긴 송도국제도시 지역에 신설된 구이다. 송도국제도시는 경제자유구역 및 국제도시로 지정되었고, 인천대교를 건너 연결되는 인천국제공항을 발판 삼아 국내외 다양한 기업들을 유치하게 되었다. 현재 송도국제도시는 인천의 부도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송도국제도시의 높은 월세와 물가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뽑힌다. 연세대 송도캠퍼스와 인천대학교, 송도컨벤시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포스코타워, 인천타워, 인천신항 등 수많은 유명 시설들이 위치해있다. 


파랑 : 부평구(약 51만명)

부평구는 원래 인천시가 아닌 부평시 지역으로써, 인천광역시가 탄생한지 얼마 안된 1976년 구 부평시 지역 전체에 인천시 북구라는 이름으로 신설되었다. 1978년 구의 동부를 소사구로 분리하고, 1988년에는 서부 해안지역을 서구로 분리한다. 북구에서 부평구로 이름이 바뀐 때는 1995년으로, 경인고속도로 북부 지역을 계양구로 분리하면서 부평구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북구 당시의 흔적으로써 구)부평도호부 지역에는 '북인천'이라는 지명을 자주 찾아볼 수 있고, 부평역-부평시장 지역은 구월동과 더불어서 인천광역시의 양대 도심으로써 기능한다. 부평구 서부에는 군 관련 시설이 많이 존재하였는데, 이는 부평지역이 서울과 인천 양대도시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써 수비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옛 군부대 지역은 아파트로, 옛 군수공장 지역을 타 산업단지나 상업시설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늘 : 청라구(구 서구)(약 42만명)

1988년 북구(현 부평구)에서 분구된 지역으로, 옛 서곶면 지역에 설치되었다. 당시에는 산과 바다 사이에 낀 얇고 길쭉한 지역으로써 부평과 인천의 점이지대로써 무계획적인 개발이 이루어진 곳이였다. 이후 간척사업의 진행으로 서구의 면적이 상당히 증가하였으며, 간척지에 존재하던 청라도의 이름을 따서 청라지구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후 2012년 청라지구의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청라구로 이름을 바꾸었다. 청라구에서 제물포구로 넘어가는 경계에는 최근 의미없는 다리로 주목받는 인천교를 지나가는데, 예전에는 바다를 건너서 인천항 지역과 연결하던 유일한 길이였으나 간척의 진행으로 내륙지역이 되자 물이 마르고 땅이 평탄해져서 의미없는 다리로 불린다. 인천교 지역은 최근 홍수에 대비하기 위하여 유수지로써 활용하고, 작은 수변공원을 조성하여 다리 밑에 다시 물이 흐르도록 할 예정이다.


청록 : 소사구(약 47만명)

소사구는 옛 부평시의 동부 중심지로써, 최초의 철도역 중 하나인 소사역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인천광역시 편입 당시에 북구의 일부로 편입되어서 행정상 불편함이 발생하자 2년 뒤인 1978년에 소사역이 위치한 북구의 동부 지역을 소사구로 분리한다. 서울, 인천과 가까우면서도 경인고속도로, 경인선 등으로 교통이 편리하기에 1970년대부터 많은 사람들과 공장들이 들어왔고, 주변 오정, 소래 지역에서 서울로 나갈때 소사역을 찾아 소사역 일대는 경인선의 혼잡을 상징하였다. 1992년에 계남대로 이북을 오정구로 분리하였고, 1기 신도시인 중동신도시가 계남대로를 중심으로 양 구에 건설되었다. 인천광역시청의 혼잡도를 덜어주기 위하여 중동신도시 지역에 인천광역시청 2청사가 존재하는데, 이 관할지역이 옛 부평도호부와 비슷하다. 


남색 : 오정구(약 29만명)

1992년 계남대로를 기준으로 소사구의 북부를 분리하여 오정구로 신설하였다. 오정구 동부지역은 여타 인천지역보다 서울의 양천지역과 교류가 더 많은데, 이는 원종동, 고강동 등의 지역은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지구의 일부로써 개발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천광역시에 편입되면서 서울 편입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현재에도 그 분위기가 근처 신월동, 화곡동과 비슷하고 교통편도 화곡역 방향으로 주로 발달되어 있다. 또한 인천광역시 지역중 가장 서울시내버스가 많이 운행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반면에 오정구 서부는 중동신도시 등이 위치하여 아래의 소사구와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다. 오정구 지역에는 여타 인천지역과 달리 아파트형 공장을 볼 수 있는데, 오정구 분구 당시에 환경오염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써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파트형 공장으로의 전환과 강력한 환경오염 규제 등을 실시한 오정구는 처음에는 타 지역으로 이전하는 공장들이 많았으나, 이후에는 대표적인 친환경 산업 전환의 사례로 떠오르게 된다.


보라 : 계양구(약 32만명)

1995년 설치된 계양구의 이름은 구의 중앙에 위치한 계양산에서 따왔다. 옛 부평도호부의 중심은 부평구가 아니라 계양구로, 이곳에 부평향교, 부평도호부청사 등이 존재한다. 계양산은 인천시의 주요 산 중 하나로써, 특히 도시와 자연, 그리고 김포공항을 한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주목을 받아 등산객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계양구 중 굴포천방수로 이북 지역을 김포구로 편입하려던 적도 있었으나, 이미 계양구와의 교통이 편리하고, 한때 계양면이였던 지역으로써 주민들의 반대로 편입이 무산된 적이 있다. 인천공항철도의 개통 이후 김포공항과의 거리가 단 한정거장 차이로 좁혀져서 서울 통근객 이외에도 계양테크노밸리를 유치하는 등 인천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올리브 : 김포구(약 35만명)

1995년 경기도 서부의 파편화되고 불편했던 행정을 인천광역시로 일원화하면서 경기남도와 경기북도를 오가던 김포시가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옛 김포읍, 고촌읍 지역을 관할하게 된 김포구는 예전부터 서울과 강화도를 잇는 길목에 해당했고, 서울과 강화 외에도 인천, 일산과의 교류 또한 상당하여 특정 중심지에 종속되지 않은 지역 중 하나이다. 원래 김포공항은 옛 김포군의 남쪽 끝에 지어질 예정이였으나 이후 규모를 증가하여 양천구 쪽으로 옮기고, 개항 이후 공항 주변 부지를 모두 서울특별시 양천구에 편입하게 되어 개항 이후부터 김포군-김포시-김포구 지역은 김포공항의 소음만 받는다는 불만이 있지만 김포공항의 이름 개정이 수많은 논란 이후 취소되어서 한동안 김포공항이 김포구에 있다는 오해는 지속될 전망이다. 2기 신도시로 김포신도시가 운양동, 장기동과 양촌면 구래리, 마산리 지역에 발표되었으나 경인권 인구증가 정체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취소되었으며 이후 운양동, 장기동 지역만 별개로 개발되었다. 김포신도시가 생겼을 경우 양촌면 구래리, 마산리 또한 김포구에 편입될 예정이였으나 신도시의 취소로 편입되지 못하였다.


갈색 : 검단구(약 27만명)

1995년 김포군의 인천광역시 편입 당시 설치된 구로써, 옛 검단읍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검단구의 인구는 대부분 동부에 몰려사는데, 이는 검단구의 서부는 수도권매립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검단구 주민들은 늘 수도권매립지의 조기폐쇄를 요청하나, 재활용 산업의 활성화로 인하여 쓰레기가 감소하자 정부는 매립지 사용기간을 대폭 연장하여서 검단 주민들은 당시 정부에 불만이 상당히 많다. 인천광역시에서는 서울의 난지도처럼 수도권매립지를 공원화 하려는 시도를 하고있으나, 난지도보다 훨씬 거대한 부지와 검단만의 특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인하여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인천 편입 이후 김포와 별개의 지역이 되면서 예전보다 김포 대신 청라와 더욱 밀접해지고 있고, 검단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3기 신도시로 검단신도시를 추진하고 있지만 부지 부족과 수도권 주택수요 감소, 3기 신도시 자체에 대한 정책적 논란이 이어지며 추진이 밀리고 있다. 특히 검단신도시 계획상에 세계문화유산인 장릉에 훼손이 가해질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인하여 여론의 질타를 맞고 있다.


대부도, 영흥도, 덕적도, 영종도 등 : 서해군(약 10만명, 이중 8.5만명 정도가 영종지역 거주)

비록 인천광역시에 편입된 것은 1995년이나 그 이전에도 이미 미추홀구에 군청이 있는 등 인천과는 연이 깊었던 지역이다. 이는 서해군 지역의 중심지가 없기 때문으로, 모든 배편이 모이는 인천항이 바로 서해군의 중심지로써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중 영종읍, 용유읍 지역은 간척하여 두 지역을 연결하고 인천국제공항을 지어서 수도권, 나아가 한국의 관문으로써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인천국제공항으로 도착하는 외국인은 바로 서해군 용유읍의 땅을 처음 밟게 된다. 영종읍, 용유읍, 신영종읍, 북도면 4개 지역은 영종지역으로 따로 분류되는데, 공항지원도시 건설로 인하여 영종도를 중심으로 하나의 생활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영종지역에 영종구 내지는 영종군의 신설이 추진중이다. 서해군청은 신영종읍에 위치한 2청사와 미추홀구에 위치한 1청사로 나뉘어져 있으며, 서해군 및 영종지역 내부에서만 좌석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간선버스와 동일한 요금을 받는다.


강화도, 교동도, 통진읍 등 : 강화군(약 14만명)

강화군은 1995년 인천광역시에 편입할 때 옛 김포군 중 김포구, 검단구에 들어가지 못한 지역을 편입하였다. 이 지역은 구 통진군과 비슷한데, 따라서 현재의 강화군은 옛 강화군에 통진군과 교동군을 합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강화도는 한강 하구에 위치한 섬으로써 고인돌이 많이 발견되어 옛날부터 사람이 살던 지역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부터 한강 수운의 중심지로써 취급되었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 임시수도로써 지정된 적도 여러번 있다, 인천 제물포가 개항하기 전까지 서울의 외항을 맡아왔던 지역으로 고려, 조선시대에 현재의 인천을 비유할때 강화도가 뽑히고, 예로부터 '강화도로만 들어가면 어떻게든 산다'라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  또한 인천광역시 지역 중 유일하게 황해남도 연안군, 황해북도 개성시와 연결되어 있어 해서지방의 영향을 받는 곳 중 하나이다. 강화군내버스는 인천시내버스와  별개로 운영되며, 강화군내버스는 인천 지선버스와 동일한 요금을 받고, 인천시 좌석버스를 강화군 내부에서만 이용할 경우 인천 간선버스와 동일한 요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