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이디 아민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을 때, 밀턴 오보테는 자신의 기반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음


이때 소련과 동독을 비롯한 제2세계 국가들은 우간다의 신생 군사정부와 우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역시 제2세계에 속하던 탄자니아 역시 아민 정권과 우호관계를 맺는것이 상식적인 행보였음


그러나 줄리어스 니에레레는 지지 기반을 완전히 상실한 밀턴 오보테의 망명을 받아주는 것을 선택했고, 심지어 1972년 오보테가 이끄는 우간다 반군의 아민 축출 시도를 지원하기까지 했는데, 이는 탄자니아의 국익이나 혹은 니에레레 개인의 이익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은 행보임


해당 작전이 실패한 후에도 일반적인 지도자라면 더이상의 이용 가치가 사라진 오보테를 내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겠지만, 니에레레는 오히려 오보테가 자신의 별장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었고, 심지어는 이따금식 발생하는 오보테의 우간다 침투 시도를 딱히 저지하지도 않았음


이후 1979년 우간다-탄자니아 전쟁에서 탄자니아가 승리하자 니에레레는 오보테를 우간다 대통령으로 복귀시켜 주었고, 이후 요웨리 무세베니의 대선 불복종으로 내전이 발발하자 대다수의 제2세계 국가들이 무세베니를 지원하는 와중에도 탄자니아와 북한은 오보테를 지원한 유이한 국가였음


1985년 니에레레 대통령이 사임한 이후, 탄자니아군은 곧바로 우간다에서 철수하고 사실상 무세베니 지지로 돌아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