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NoMatterWhat입니다. 정말 도지챈에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네요. 그동안 개인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일이 많아서 글을 쓸 여유가 많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힘들다보니 글을 쓰고 읽을 엄두가 안나더군요(창소챈에 올라간 소설은 전에 미리 신청을 해놓은거라..). 글을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그냥 그렇다고 해주세요ㅎㅎ) 죄송합니다. 제가 꽤 오랜시간 동안 쉬고 왔는데, 저 뇌절 문제는 여전하더군요. 그에 관한 저의 생각은, 적당히 근거를 붙이고 현실성을 가미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떠올라, 그런 분들께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바로 하박국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전쟁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슨 자기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는 중2 마냥 '하하! 미천하고 벌레같은 인간들 다 죽어라!'..라는 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전쟁은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두 세력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역사의 방향이 획기적으로 바뀌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류의 기술이나 사상이 진보합니다(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전쟁을 긍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치, 외교, 경제, 기술, 예술, 철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바뀌었죠. 이것도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뤄보도록 할게요. 암튼 대전 중 전쟁기술 분야의 혁신을 한 가지 뽑자면 역시 거함거포주의의 몰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맞붙은 태평양 전선에서 그 모습이 두드려졌죠. 그 이유는 간단한데, 태평양이 뒤지게 넓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이(두 국가가 2차대전 해군기술 정도를 가진다고 하고) 전쟁을 한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양상이 어떨까요? 간단하죠. 대한해협에서 두 국가의 함대가 모여 결전을 펼칠 겁니다. 여기에 항공모함이 들어갈 여지가 있을까요? 거의 없겠죠. 좁아터진 대한해협에 항공모함을 밀어넣어 봤자 전함의 함포에 맞아 비행기도 날려보지 못하고 침몰할겁니다. 그런데 넓디 넓은 태평양이라면요? 인공위성이나 무인 정찰기, 현대의 레이더 없다면 당연히 항공모함이 우위일 것입니다. 간단하잖아요. 정찰기 띄우고 확인하면 폭격기/뇌격기를 출격시켜서 공격한다. 튄다. 이러면 전함이 백날 쫓아도 아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의 중심은 더 이상 전함이 아닌, 항공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말레이 해전과 비스마르크 추격전입니다. 전함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항공기에 의해 무릎을 꿇었죠. 아무튼. 


대서양, 그리고 유럽 전선은 약간 상황이 달랐습니다. 대규모의 함대전이 펼쳐졌던 태평양과는 다르게, 대서양은 함대와 함대가 정면으로 힘싸움을 하는 장면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대서양이 뒤지게 좁다-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전쟁이 발발한 이후 해전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영국은 본토만으로는 별 볼일이 없습니다. 그 본토에서 나오는 자원이나 인력으로만은 세계패권을 논하기에는 불가능하죠. 2차 대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토의 힘만으로는 전쟁 수행이 매우 힘들었던 영국은 반드시 다른 국가-미국-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즉, 대서양 해전의 목적은 어떻게든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원을 끌어모으려는 영국과 그것을 차단해야하는 독일이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항공모함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일단 이 사진을 먼저 보시죠.



1941년 당시 대서양 전역. 검정색 라인이 지상발진 항공기의 운용범위이고, 파란색이 침몰한 영국 수송선의 위치이다. 출처:위키피디아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항공기의 운용 범위가 너무나도 제한되어있다는게 느껴지십니까? 물론 구축함이나 순양함이 호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호위에 구축함과 순양함이 동원된다면 연료 소모량이 엄청날 것이며, 선체 및 병사들의 피로도 굉장할 것입니다. 게다가 전함 비스마르크가 침몰했다지만, 남아있는 자매함 티르피츠와 독일 잔존 함대는 영국 해군에게 굉장히 신경쓰이는 존재였습니다. 모든 함선이 유보트의 활동을 저지할 수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남은 건 바로 항공기였죠. 당시의 잠수함은 평시에는 부상해있다가 일정 시간 정도만 잠수할 수 있기 때문에(잠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됩니다) 항공기가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자, 이렇게 항공모함이 필요한 이유는 납득이 가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항공모함을 만들기 위한 자원이 없었다는 점이죠. 아니, 당장 상선 만들어서 미국하고 교역안하면 말라죽게 생겼는데 언제 항공모함을 만들겠습니까? 항공모함이 필요하긴 했지만... 이렇게 대가리가 깨질 듯 고민하던 영국 내각에 한 가지 미친 제안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하박국(혹은 하버쿡)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성경은 잘 모르지만 히브리의 예언자 하박국이 "크게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너희가 들어도 믿지 않을 일을 내가 행할것이니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합동작전본부에 근무하던 저널리스트겸 과학자겸 금융 투자자였던 제크리 파이크는 "철이 없으 없으면 얼음으로 배를 만들면 되지!"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싸다귀를 갈기는 주장을 합니다(앙투아네트가 그런 말 안했다는거 압니다). 물론 모든 선체를 얼음으로 만들자는 건 아닙니다. 그는 물과 톱밥을 함께 얼린 파이크리트라는 물질을 주로 하여 항공모함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이누이트가 얼음썰매를 만드는 걸 보고 만든 이 물질로 만든 배는 총과 포탄이 튕겨나갔으며, 얼음에 비해 녹는 속도가 느렸다고 합니다. 물론 이게 녹기는 녹습니다. 그러니 배 안에 냉각 시스템을 만들어 선체를 유지시켰습니다. 암튼 꽤나 미친 이 물건은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설계와 스펙이 나옵니다.



왼쪽이 현대의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이고 왼쪽이 아이오와급 전함이다. 참고로 제럴드 포드급의 전장은 330m에 달한다.


항속거리: 11,000km
배수량: 220만 톤
전장: 610m
전폭: 90m
동력기관: 25,000 킬로와트를 생산하는 증기발전기가 26개의 독립설치된 외부 엔진에 전력을 공급.
외벽: 어뢰에 견디기 위해 12m의 파이크리트 벽과 외벽을 단열재와 목재로 덮음
외부무장: 4.5인치 양용포 40기, 수많은 경대공포
함재기: 최대 150기의 쌍발 폭격기/전투기
승조원: 1,600명


이게 시발 뭐야...


더 재미있는건 현대의 군함 중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게 100만 톤입니다. 암튼 실제로 건조되었으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미친 배였을 겁니다. 게다가 이미 말씀드렸지만, 이 배는 얼음이 주재료였다고 했죠. 그러니 균열이 생기면 외부에서 물을 끌어다 얼리면 그만인겁니다. 물론, 문제가 좀 많았죠.


우선 만드는게 너무 비싸요. 설명끗 당장 상선 만들 돈도 딸리는데 저런거에 돈을 쏟는다고? 실전에서 어떨지도 모르는데? 뭐 그렇기도 하고, 얼음을 녹지 않고 유지할 만한 차가운 조선소는 어디서 찾을까요? 게다가 철을 많이 쓰지 않아서 만들려고 했는데 저 어마무시한 배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파이프와 기타 장비를 위한 철이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거대한 항공모함이 필요한 이유가 없어진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포르투갈이 이전까지 허용하지 않은 아조레스 제도의 이용을 허가했으며,




미국이 그냥 필요한 항공모함을 많이 줍니다. 미국이 보그급이라고 이름붙인 항공모함만 34대. 다른 항공모함은 찾아봤는데 잘 안나오네요. 암튼 굉장히 많은 수의 군함이 영국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능이 어떨지도 모르고, 한 척을 손실하면 너무 큰 타격을 입는 저런 배는 필요가 없었던 거죠. 

꽤 길게 말을 많이 했네요. 결론적으로 하고싶었던 말은, 획기적인 상상이든 뭐든 다 좋은데 적당히 현실성만 갖추자-였습니다.


+) HMS는 His(Her) Majesty's Ship의 약자입니다. 맨 앞글자 h는 영연방 군주의 성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금은 당연히 her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