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NoMatterWhat입니다. 성교육 시리즈로는 굉장히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전에 특별 성교육에서 궁과 성은 다른 개념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래서 '성'을 다루는 성교육에서 궁을 다뤄도 될까?라는 생각에 그동안 다루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게시물을 보다보니 덕수궁 이야기가 나와서 그냥 써볼까 합니다. 원래는 다시 가서 사진도 찍고 하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그냥 작년에 갔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써보겠습니다. 이번에 다룰 것은 덕수궁 석조전입니다. 


우선 덕수궁에 대해 대강 알아보아야겠죠.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덕수궁은 처음부터 왕이 거처할 목적으로 지은 곳이 아닙니다. 원래 왕자(군)과 공주를 위한 사저였던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 수도로 돌아온 선조가 마땅히 머물만한 곳이 없어 궁궐의 격에 맞게 증축한 것이 덕수궁의 시작입니다. 원래부터 조선의 법궁으로 지어진 경복궁이나 태종이 경복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은 창덕궁, 상왕이 머물기 위해 지어진 창경궁, 광해군이 지은 경희궁과는 그 시작이 매우 다르죠. 아무튼 이렇게 그 시작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덕수궁은 조선조 내내 조선의 영광보다는 그 오욕과 함께한 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것이 석조전을 비롯한 서양식 건물과 그 주변에 위치한 외교공관이고요.



보이시나요? 왕실의 권위가 강했던 동양 국가에서 왕이 기거하고 있던 궁 주변에 외국의 공사관이 위치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청나라도 외국 군대에게 얻어 터진 뒤에야 수도에 공사관 구역이 설정되었죠(이게 2차 아편전쟁 이후인지 신축조약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납니다). 아무튼. 이제 오늘은 주인공인 덕수궁 석조전을 소개해야겠네요.



석조전은 대한제국 선포 후 계획되었고, 1900년에 착공, 1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아이러니죠. 제국의 부흥과 근대화를 상징하는 서양식 전각이 1910년에야 완공되었다는 점은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어디서는 콜로니얼 스타일이라고 하기도 하더라고요) 좌우 대칭과 비례를 딱딱 맞춰 지은 이 건물은, 완공되자마자 그 의미를 잃어립니다. 황제가 쓰려고 만든 건물인데 그 황제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는 꼭두각시가 되었잖아요. 하지만 이왕 지어진 건물을 쓰긴 써야겠죠. 제국은 망했어도. 석조전은 일제강점기에는 미술관, 광복 이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유엔 한국위원단, 박물관 등 굉장히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 완공 당시의 내부 구조와는 굉장히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던 건물을 완공 당시의 구조로 복원한 것이 2014년의 일이었습니다.



석조전은 이렇게 3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상 2층, 지하 1층(지층)의 구조이죠. 1층은 접견실과 식당을 비롯한, 외부 손님 맞이와 정무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2층은 황제와 황후의 개인 공간이고요. 지층은 사용인들이 쓰던 공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사실 한 가지. 황후는 한 번도 저 침실을 사용해본 적이 없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조선-그리고 대한제국-의 고종 옆에는 중전(황후)이 없었기 때문이죠. 



이 사진이 2층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위해 넣어보았습니다. 물론 이 궁이 이전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었습니다. 남은 기록이 많지 않아 일부 용도를 알 수 없는 방은 여러 테마의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용도를 확실히 알 수 있었던 방은 남은 사진으로 그 모습을 확인해 그대로 복원하였습니다. 그때 사용되었던 가구는 박물관에서 보관해 오던 것을 가져다가 배치하였고요. 다만 가구의 사진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에는 당시 황실에 가구를 납품했던 영국 회사의 카달로그에 남은 가구에서 모양을 따와 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복원한 건물인 만큼, 관람에 여러 제약이 있습니다. 관람 이전에 반드시 예약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서 입장해도 함부로 돌아다니실 수 없습니다. 저기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곳곳에 줄이 쳐저있어 가이드가 안내하는 경로로만 다니셔야 합니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것이 저 건물의 어떤 가구가 보물(혹은 유물)인지 모르는데 함부로 드나들 수는 없겠죠. 다만 지층은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합니다. 딱히 볼 것은 없지만요. 그냥 층 전체가 전시관입니다. 하긴 누가 사용인들이 일하는 층의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겠어요?


가끔 석조전 정면 기준에서 왼쪽에 있는 건물이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이건 덕수궁 석조전 서관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부를 수도 없는게, 이 건물이 지어진게 일제강점기였거든요. 왕이 없는 궁궐에 지어졌고, 왕이 사용도 안해본 건물이 무슨 궁궐이겠습니까?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명칭은 이왕가 미술관입니다(이왕가란 황제국이었던 대한제국의 황실이 왕가로 격하된 이후 왕실을 부르는 명칭입니다). 한국 최초로 박물관 목적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한국 예술품을 전시하던 곳이었습니다. 저것도 2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가 갔을 떄는 조선조 당시 왕실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시간 남으면 가보셔도...


이제 대강 하고싶은 말은 다 끝낸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감상 몇 글자만 적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상념이 많아지곤 합니다. 왼쪽에는 우리 황궁이 담이, 오른쪽에는 영국 대사관의 담이 보이는 이곳을 누군가는 낭만적이라며 걷겠지만, 저는 그것보다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겨울의 석조전은 화려함보다는 쓸쓸함이 더 많이 느껴집니다. 시련에 꺾여버린 조선이 떠올라서 그런 듯 합니다. 고종과 대한제국. 제대로 사용된 적 없는 그의 궁 석조전. 그럼에도 석조전은 당시 많이 힘들던 저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바람 사이 우뚝 서있는 석조전은 오랜 시간의 시련이 지나면 결국 내가 바라던, 혹은 그것보다 더 좋은 모습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누군가로부터의 위로가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석조전 앞에 가서 서보세요. '힘내'라는 말 이상의 응원을 받으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보글로 시작했는데 괜히 감성 터져서 뻘소리를 썼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의 영국 회사는 메이플 사를 이르는 말입니다. 지금은 인수된 걸로 나오는군요(https://en.m.wikipedia.org/wiki/Maple_%26_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