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한성백제 시대에도 성이 있었을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깊은 산속에 있어 이 성을 직접 공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만 장수왕에 의해서 백제가 수도를 잃고 멸망 위기에 놓였을때 무력화되고 이후 신라가 한성을 점령했을때 같이 점령한 것을 보인다.


그 후 임진왜란 중인 선조대에 남한산성에 다시 성을 쌓았고, 광해군대에 개수했고 인조 대에 다시 개축했다. 

정묘호란 이후 재침때 농성을 위해 개조되었다. 광주목의 행정중심지가 성내로 이전되었으며 광주부로 재승격되었다. 이는 유사시 임시수도로 기능할 목적이었음을 시사한다.


병자호란때 결국 함락되었다는 점 때문에 대중에게는 실패한 성이라는 인식이 퍼졌으나 사실 압도적 열세 상황에서 서양식 화포로 무장한 청군이 직접 점령하지 못하고 한 달 이상을 버텼다는 사실은 이 성의 엄청난 방어력을 입증해준다.


성남에서 성으로 통하는 유일한 좁은 도로를 따라서 산을 올라 남문인 지화문에서 여정이 시작됐다.



성의 주변을 보면 성내와 주변이 완벽하게 단절된 것을 알 수 있다. 

올라보면 알겠지만 이를 정상적으로 공략하는 것은 전근대에는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며 유일한 수단은 포위하여 굶여죽이는 것이었다.


성의 남쪽에는 말 그대로 남한산성의 남쪽에 있다는 뜻으로 명명된 성남시가 있으며 서쪽에는 위례신도시와 서울시가 있다.

남한산성 서문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좋은 전망 포인트로 알려져있다.


서문을 향해 발걸음을 하니 어느새 영춘정 부근에 도착했다.

벌써부터 거대한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남한산성의 성곽

안쪽에서 보면 낮아보이지만 이를 밖에서 보던 적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을 것이다.


아마 성남시 방향으로 찍은거같은데 기억이 안나는 사진


어느새 수어장대에 도착했다.

청량산에 정상에 위치한 이 누각은 군사를 지휘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누각이다.


음? 나보다 먼저 여기에 행차하신 분이 있었나보다.


리대통령 기념식수의 모습


수어장대 안에는 무망루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수어장대 동쪽에 비각을 별도로 짓어 그 안에 걸어놨다고한다. 

영조가 병자년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서문인 우익문에 도착했다.

우익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넘으려는 유일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마 어이없는 지형을 보고 멘붕이 왔을듯하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전망대가 있다는 것이다.


자연절경이 아닌 것에 감탄한 것은 처음이었다.

천만명이 사는 도시가 한눈에 들어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옆을 보니 사람들이 대포카메라로 찍고있었다.

나도 좋은 카메라를 사고싶다는 욕구가 들었다.


강동 방향을 보니 일자산과 저 멀리 아차산이 보였다.

혹시 저 멀리있는게 북한산인가? 날씨가 좋아서 운좋게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기쁨을 뒤로한채 성내로 내려가는 길에 하남이 보였다.


가는 길에 찍은 지도


산성에서 내려와 남한산성 행궁에 도착했다.

행궁 앞에는 남한산성 성문의 개폐와 비상상황을 알리는 종각이 있으며 그래서 이 거리는 아직도 종로라고 불린다고 한다.

수원화성에도 종로가 있던데 혹시 왕이 있는 곳에만 종로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일까?


당시 종각에 설치된 종은 국보 제280호 성거산 천흥사 동종을 3배 크기로 재현한 것으로 원본은 고려시대 사찰인 천안의 천흥사가 폐한 후 남한산성 종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고 한다.


남한산성 행궁의 모습

행궁은 알다시피 왕이 행차했을때 머무는 곳이다.

다른 행궁에 관해서도 답사한 적 있으니 궁금하면 확인해보시라 

https://arca.live/b/city/84227341


행궁의 앞에 가니 한남루가 있었다. 이는 행궁의 정문이다.


행궁 안에는 작은 전시실 같은것이 있었는데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것을 알리는 판이 달려있었다.



일찍이 신라가 이 성을 점유한 적이 있었으므로 신라의 유적도 남아있었다. 

저걸 유적인지 어캐 알았는지 신기할뿐이다.


문서를 보관하던 목적인 일장각

복원된 건물이다.


안에는 들어가서 보도록 세팅이 되어있었다.

(무단으로 들어간게 아니라 들어가보라고 써있었음)


왕이 머무는 곳 답게 잡상이 있었다. 


어좌 뒷편에 놓인 일월오봉도


재덕당


고목


뭔가 특이하게 생긴 건물


이것으로 행궁까지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알다시피 400년전 조선의 운명을 가른 중요한 전쟁이 일어났던 장소이다.

청태종의 올인러쉬로 인해서 한성이 8일만에 함락되는 바람에 강화도로 피난가는데 실패한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한다. 

그들은 눈보라치는 남한산성에서 45일 동안 버텼으나 결국 항복한다.

하지만 남한산성의 출중한 방어력으로 인해서 청군은 절대 힘으로 남한산성을 넘지 못했으며 결국 포위하여 식량이 고갈될때까지 버텼다.

만약 청은 당시 소빙하기로 인한 위기였으므로, 조선이 조금만 더 버텼다면 동아시아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역사의 장소를 방문하니 뜻깊었다.


그 결과가 궁금하다면? => https://arca.live/b/city/81662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