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혁명과 일상 (해방과 북조선, 1945~50년), 김수지. 후마니타스 p.96
단위(명) | 평양 | 평안남도 | 평안북도 | 함경남도 | 함경북도 | 황해도 | 강원도 |
조선인 | 352,101 | 1,489,093 | 1,950,718 | 1,555,185 | 943,582 | 1,718,006 | 1,162,308 |
일본인 | 163 | 191 | 28 | 246 | 84 | 197 | 70 |
중국인 | 3,921 | 3,736 | 20,093 | 3,753 | 5,470 | 3,546 | 1,344 |
독일인 | - | 8 | 2 | - | 62 | ||
총합 | 356,185 | 1,493,020 | 1,970,839 | 1,559,192 | 949,138 | 1,721,749 | 1,163,784 |
위 지역 인구 합계 9,213,907명에 기타 22명까지 합쳐서 총 9,213,929명
주요 특이 사항
- 재북 일본인들은 남쪽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추방되었지만 수백 명 단위의 일부는 남아있음. 이는 이북에 남아있는 공업시설을 운용할 기술 이전을 위해 북조선인민위원회 당국이 억류했기 때문.
- 재북 중국인(화교)의 경우 1945년 기준 약 4만 6천여 명이었는데 해방 이후에도 일부는 본국이나 이남으로 갔지만 의외로 꽤 남아 있음. 가장 많은 곳은 당연히 가장 가까운 평안북도.
- 극소수의 독일인이 집계되었는데 이들은 교황청 직속 덕원자치수도원구 수속의 독일인 수도자들. 강원도에 많은 것도 1946년 원산, 문천, 안변이 강원도로 편입되었기 때문.
- 황해도 인구가 1944년 기준 2,014,931명이었는데 3년 전에 비해 줄어듦. 장풍군이 황해도로 편입된 걸 감안 해도 38선 상당한 인구를 차지하던 연백과 옹진이 38선 이남으로 들어간 영향으로 추정. (여기 두 곳에 40만 명 가까이 살았으니)
- 함경남도 역시 1944년 기준 2,015,352명이었는데 황해도와 마찬가지로 3년 전에 비해 줄어듦. 7만에 달하던 일본인이 추방되고 1946년 원산, 문천, 안변이 강원도로 편입된 영향으로 추정.
근데 함경북도는 왜 줄었지. 1944년 기준 1,124,421명인데 일본인 7만 5천 명 빠져나간거 감안해도 감소폭이 너무 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