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으면 좋겠다)


면적 1558.7㎢ (수복지역 490.71㎢, 전체 군역의 31.5%, 수복지역의 약 70%가 민북지역)


1929년 도내 제2의 지역 (87,431명, 강릉군 88,073명)

1944년 인구 108,132명 (당시 철원, 평강보다도 5만, 2만이 많음)


2019년 인구 12,039명 (군으로 독립 시 울릉군에 이은 뒤에서 2위)

1789년 금성현 인구 13,374명, 김화현 인구 14,205명


이런 화려한 미래와 끔찍한 현재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강원도 김화군은 전 지역이 38선 이북인 관계로 이북에 넘어갔다가, 전쟁 중 절반가량을 회복했으나 금성 전투 이후 금성돌출부를 잃어버렸고, 덕분에 군 유지가 힘들다고 판단한 군정은 1954년 김화군을 철원군에 합병하려 했음.


그러나 군민의 엄청난 반대로 김화군을 유지했고, 결국 1963년 '통일되면 김화군을 다시 복군시켜주겠다'는 전제 하에 철원군과 합병되게 되었으며 명목상 이북5도 행정구역으로만 남아있게 되었음. 이 후폭풍으로 심심하면 김화군 복군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김화 사람들은 의정부-춘천 두 생활권에 겹쳐있게 되었기 때문에 철원만큼 경기도 편입에 열정적이지 않은 관계로 심심하면 싸우고 복군 얘기가 나옴.


아무튼 오늘은 이 김화군에 대해서 알아보자.


개략적인 김화군 지도. 빨간색은 생활권을 표시했고, 주황색은 민통선, 검은색은 국도, 회색은 지방도, 굵은 검은색은 도계, 굵은 회색은 시군계, 갈색은 민통선 초소, 검은색 원은 중심지, 옅은 검은색 원은 구 중심지, 회색 원은 면소재지, 회백색 원은 해당 생활권의 중심이고, 회백색 선은 현재에 김화 소속이 아니지만 갈말읍의 더러운 경계로 인해 김화권인 곳을 의미하며 청록색 빗금 친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면임.

(옛날엔 43번 국도 초소가 길 가운데 있었는데, 읍내삼거리 초소만 남은 것으로 보임)


1. 역사

부여 (고구려) (현재 내 닉네임의 기원) - 부평군 (한주-삭방도 (신라-고려)) - 김화군-김화현 (동주, 교주도 (고려)) - 김화군 (강원도-춘천부-강원도 (조선-대한제국))

야차홀 - 모성군 (고구려) - 익성군 (삭주-삭방도 (신라-고려)) - 금성군-금성현-도령현 (회양, 교주도 (고려)) - 금성군 (강원도-춘천부-강원도 (조선-대한제국))

1908년 김화군-금성군 합병 (금성군)

1914년 금성군 폐지, 김화군 설치 (김화군)

1914-1963 김화군

1963-현재 철원군 (이북5도 체제 하에서 김화군)

1973년 서면 도창리-청양리 (당시 면소재지) 2개리를 김화읍에 편입


읍면

김화군

군내면 + 초동면 일부 = 군내면 = 김화면 = 김화읍

남면 = 근남면

초동면 대부분 + 이동면 = 근동면

초북면 + 원북면 = 근북면

서면


금성군

군내면 + 서면 = 금성면

남면 = 원남면

동면 = 원동면

북면 = 원북면

임남면

통구면

기성면 + 오산면 = 기오면 = 창도면


2. 인구

지역명인구 (1944년)인구 (2019년)
김화군4186212039
금성군662700
총계10813212039
김화읍118873747
근남면68922259
근북면9992111
서면62805922
근동면68110
원남면83490
원동면70600
임남면88520
금성면7945미수복
원북면8843미수복
창도면16708미수복
통구면8513미수복
안습;;

3. 교통

국도는 5번 국도가 김화읍 읍내삼거리에서 시작해서 재건촌-말고개-사방거리-화천-춘천을 이으나 실제로 민간인이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김화읍 용양삼거리부터이며 용양삼거리-중간마현리에서 민통선을 통과하나 통과목적으로는 보내주며 봉오리 중고개 쪽으로는 통과할 수 없음. (용양삼거리-읍내삼거리 구간은 통행불가)
43번 국도는 김화읍 읍내삼거리에서 지경리-문혜리-신철원-운천-양문-포천-송우리-의정부를 이으며 진관에서 47번 국도와 합류함.
47번 국도는 김화읍 김화교차로에서 와수리-신수리(신술리)-이동-일동-신팔-진접을 이으며 진관에서 43번 국도와 합류함.
56번 국도는 김화읍 학사교차로에서 육단리-하오재-다목리-사창리-지촌리-신포리-춘천을 이음.

463번 지방도가 신수리(신술리)-잠곡리를 통과하며 둘 사이를 잇는 신술터널이 2006년경 지어짐. 서쪽으로는 문혜리-대마리를 잇고, 동쪽으로는 2006년 개통한 하오터널을 넘어 광덕리-사창리로 이어져 춘천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됨.
56번 국지도가 신수리(신술리)-잠곡리 구간에서 463번 지방도와 중첩되며 잠곡리-매월대 입구-육단리를 이음.
464번 지방도가 지경리-토성리-청양리-도창리-정연리를 이으며, 정연리 정연삼거리에서 유곡리로 이어지는 길이 있음.

철도는 없으나, 과거 금강산선 유곡역-금곡역-김화역-광삼역 구간이 군의 북서부를 통과했었음.
고속도로도 없으나, 김화-화천-춘천 간의 중앙고속도로 연결 계획이 장기구상으로 있음.

4. 생활권
전체가 김화라는 큰 하나의 생활권이고, 여기와 신철원, 구철원권이 모여서 현 철원의 3대 생활권을 이룸.

소생활권 구분은 대략 이럼.
(인구는 리단위로 작성함. 지도는 리단위를 반영하지 않았음)
(굵은 글씨는 일반상업지역이 존재하는 지역)

1. 와수리 (김화읍 학사리, 읍내리, 생창리, 근남면 사곡리 풍암리, 서면 와수리, 인구 5,436명)
와수베가스로 아-주 유명한 그곳임. 김화읍 암정리, 운장리, 용양리, 감봉리는 상주인구가 없고, 읍내리 역시 구 김화군의 중심지였던 부분이 아니라 안암산 동쪽 골짜기 마을이며 현재 상주인구는 6명임. 김화 상업의 중심지이고 김화파출소도 와수리에 있는데 정작 군청이 없어서 문제. 와수리와 학사리가 중심지이며, 두 마을 사이에 김화중, 김화여중, 김화고, 김화공고가 한꺼번에 몰려 있음. 와수리는 신수리(신술리)보다도 인구가 2배가량 많아서 서면사무소 와수출장소가 있고, 김화읍사무소가 학사리에 있음. 근남면 사곡리는 과거 근남면의 면소재지였지만, 지금은 신사곡교차로-용암삼거리가 지뢰제거 한다고 약 2년째 통행금지이고 마을 자체도 육단리에 면사무소를 뺏긴 지 오래임. 생창리는 민북마을이며, 과거엔 초소가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인구는 약 221명.

2. 신수리(신술리) (서면 자등리, 근남면 잠곡리, 인구 2,411명)
쓸 때는 신술리로, 읽을 때는 보통은 신수리로 읽으며 리의 공식 명칭은 무려 조선시대때부터 자등리임. 신수리라고 부를 때는 보통은 자등3리와 자등4리 (중심지)를 말하지만, 리 전체도 신수리라고 하고 아무튼 신수리라는 명칭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음. (아시는 분 댓글 부탁) 잠곡리는 누에 잠 자를 쓰는 마을로 말 그대로 누에마을인데, 잠곡댐이라고 하는 댐 모양의 저수지가 있음. 14년 전 개통된 신술터널로 연결되어 있으며, 잠곡리에는 매월대라고 매월당 김시습이 운거하던 폭포가 있음. 잠곡리에는 마찬가지로 14년 전 개통된 하오터널로 광덕리 검단동과 연결되어 있으며 3사단 사령부가 옮긴다는 이야기 때문에 마을이 좀 시끄러워졌음. 그래도 사방거리보다도 큰 상권이 있는 남부의 중심지이자 김화군의 제2중심지라고 봐도 무방할듯.

3. 청양리-지경리 (김화읍 청양리, 도창리, 근북면 유곡리, 갈말읍 토성리, 지경리, 인구 3,401명)
갈말읍이 경계를 더럽게 그어둔 관계로 이렇게 묶였고, 유곡리 통일촌은 민북마을에다가 네 마을 중 어느 곳의 상권도 크지 않아서 보통은 와수리를 많이 가는 곳이지만 지경리는 '리' 자 떼고도 쓰이긴 할 수준은 됨. 청양리의 인구가 2/3 가까이 되는데, 과거 서면사무소의 소재지기도 했고 군인아파트 '청양아파트'가 있어서이기도 한듯. (신수리의 아파트 이름은 '삼성아파트'이고, 청양아파트 앞의 백골회관 갈비탕은 평생 최악의 갈비탕이었음)

4. 육단리 (근남면 육단리, 인구 954명)
954명이라고 했지만 지형상 육단리 중심지에 인구가 쏠릴 수밖에 없어서 사람 자체는 생각보다 많아보임. 지적도 상으로 봐도 학사리 절반 수준의 상업지역이 있고 뭔가 가면 되게 큰 마을처럼 보이긴 함. 하오재를 통해서 남쪽의 다목리와 이어져있음.

5. 재건촌 (근남면 마현리, 양지리, 인구 479명)
양지리도 읍내리와 함께 인구 6명 클럽에 속해서 마현리의 인구는 473명이고, 아마 대한민국 최대의 민북마을이거나 강원도 최대의 민북마을일듯함. 과거엔 초등학교도 있었고, 이 지역 자체가 분지라 해안분지처럼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많아서 1960년 태풍 사라에 의해서 피해를 받은 과거 강원도 울진 지역의 주민들이 이주해서 땅을 일궜다고 함. 그리고 아마 내 친척들처럼 원래 여기 살았어서 전쟁 끝나고 다시 와서 여기에 사시는 분들도 계실듯. 이후에 재향군인과 군인가족들이 조금씩 입주하며 행정리는 마현2리까지 있고, 딱 가면 해안분지같은 기분도 들고 대성산에 있는 모 시설도 보임. 그리고 민북지역이지만 옛날엔 허가도 거의 안 받고 지나갈 수 있었던 수준의 경비라서 지나다니기도 편하며 동서울-산양리 시외버스도 여길 지나고 여길 지나는 버스는 민북이라고 하차 안 해도 됨. 철원 17-1번과 화천 7번이 옆 화천 마현리에서 연계가 가능함.

5. 미래
통일코인 쎄게 물어야하는 지역으로, 통일만 되면 고속도로나 철도가 깔릴 가능성 하나는 100%에 가까움. 고속도로가 뚫리면 김화-춘천을 45분 내로 주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됨.

(일단 복군부터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