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중기 동안 농민들 대다수가 토지를 소유한 자작농, 즉 유산계급이었던 것이 큼.

이러한 자작농들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져서 "대충 관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토지조사사업으로 빼앗기기까지 했을 정도니까.

물론 그때에 이르러서는 무산계급 소작농이 많아지긴 하지만, 그래도 본질적으로 공장을 돌려서 노동자 계급이란 게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던 서양과 다를 수밖에 없음.

환경이 이렇다 보니 민중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악한 자본가"같은 뭔지 모를 생물보다는 당장 땅이고 쌀이고 죄다 약탈해가는 일본인들을 경계하게 되는 게 당연함.

둘은 일맥상통하지만 "악덕 자본가인 일본인"에서 방점은 일본인 쪽에 찍히겠지. 자본가는 잘 모르는데 일본인이 비열한 민족인 건 온 가족이 아니까.

때문에, 당시 신사상이란 물건은 "뭔진 모르겠는데 일단 서방 거니까 맛있는 냄새는 나는 거"에 불과했음.

이미지 자체는 민족주의가 옛날 거, 공산주의가 새삥인 걸로 박혔는데, 독일 공기를 마시며 저술된 책이 조선반도에서 이해되려면 서방 자체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했던 거임.

그래서 한반도는 여러모로 공산주의의 불모지였음.

결국 공산주의가 내세우는 매력도, "착취 없는 행복한 세상이 온다!"가 아니었음. 이건 당시의 민족주의도 약속하는 부분이었으니까.

차별점은 "콩사탕 먹으면 저 위에 거대한 나라에서 코 큰 대머리 아저씨들이 총 들고 내려와 준다!"였던거지.

이 문제는 민족자결주의가 신뢰를 잃고 근대적 가치에 익숙한 일제강점기 청년 세대가 태어나며 해소되어서 독립운동가들 보면 사회주의자들이 되게 많긴 함.

종교를 부정한다는 게 충분히 나가리당할 이유가 되었던 유럽-중동과 달리 한국의 환경은 하느님이고 자시고보다 일본인만 물리칠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았던 점, 서방 가치에 대한 연구가 미비하여 오히려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반공주의를 주창할 근거도 별로 없었던 점이 빨간 파이의 확장에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