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자들이 자신의 온전한 소유를 가질 수 있지 못한다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노동자도 평균에 가까운 일반 노동자가 아니다.


2. 대한민국에 있는 수저계급론은 부르주아적 소유의 대물림, 그리고 재벌 가문의 경우도 역시 대물림에 속하며, 단지 선천적인 운에 의해 삶의 운명이 갈리는 불공평함에서 우리 사회는 그 옛날 봉건적 사회를 벗어났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3. 부르주아는 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고, 세계에 잠재된 생산력을 최대한으로 산출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실제 세계 역사에 비춰볼 때도 역시 그러하며,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한다는 주장을 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본주의를 마냥 극단적으로 악마로 묘사하진 않은 듯한 서술도 눈에 띄었다.


4. 그러나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 교환 관계,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 마치 마술이나 부린듯 그렇게도 강력한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을 만들어 낸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저승 사자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술사와도 같다." 

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를 지적했으며, 봉건 사회가 화려한 명분 뒤에 가려진 착취였다면,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기계의 단순한 부속품과 같이 노동자를 부리고 임금적 착취를 하며,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가치를 가지고 물질적 임금과 교환한 뒤엔 그 임금에 또 다른 부르주아들인 집주인, 상점 주인, 고리 대금업자들이 달려든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노동자가 부르주아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표현했다. 이는 현대에서도 역사적 맥락이 달라졌을 뿐, 당장 우리나라에서 전세와 월세, 그리고 그와 관련된 대출들을 서민이 받고, 자신의 노동소득으로 이자와 원금을 정년까지 계속 갚아야 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임금 체불, 전세 사기와 같은 천민자본주의적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림으로써, 노동자들을 위한 나라가 있냐 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고, 이는 사회적 불신과 저출산, N포 세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