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야시 타키지  -- 게공선


 차가운 바람이 부는 1920년대 홋카이도의 어느 항구, 20년이나 된 낡아빠진 배가 삼,사백명의 어부와 선원을 싣고 캄차카의 추운 바다로 게잡이를 위해 나아간다. 공장법과 항해법에서 자유로운 ‘게공선’ 핫코마루는 폭압적이고 이기적인 (또 어떨 때는 사이코스러운) 감독의 철권통치 아래 어부들을 가혹한 환경으로 몰아넣으며 얼굴 하나 내비치지 않는 ‘내지’의 높으신 양반들을 위해 게 통조림을 찍어낸다. 어부들은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한다는 감독의 말에 누군가는 남몰래 속으로 욕을 삼키고, 또 누군가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이어나간다

 

 어느 날, 핫코마루에 실린 카와사키선(통통배) 한 척이 사라졌다가 사흘만에 다시 돌아온다. 배에 탄 어부들은 자신들이 표류한 러시아(소련)의 자유로운 노동자들의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며 다른 어부들의 이목을 끌어온다. 어부들은 표류 어부들의 ‘적화’에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러시아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한편, 어획량이 다른 배에 뒤지고 있다는 걸 안 감독은 어부들을 협박하며 더더욱 가혹하게 –-일방적인 폭행, 기둥에 매달고 방치, 가지고 있는 권총을 들이대며 반항하면 죽인다고 협박하는 등-- 굴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행태에 반감과 분노가 쌓여가던 어부들은, 결국 각기병에 걸린 한 어부의 비참하고 초라한 죽음을 기폭제로 폭발하게 된다.

 

 앙상하게 갈비뼈가 드러난 그의 시신을 장례하면서 어부들은 이것이 과로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행한 살인이라고 믿게 된다. 캄차카에서 죽기 싫다 하던 그의 시신이 캄차카의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진 후, 어부들은 처음으로 자체적인 조직을 꾸리며 단결하기 시작하고, 얼마 후 폭풍이 몰아치려 하는 틈을 타 대규모 파업을 벌이게 된다. 어부뿐만 아니라 배의 선원들까지 동참한 파업은 감독이 몰래 호출한 해군 구축함의 수병들에 의해 진압되지만, 단결과 연대의 힘을 똑똑히 느낀 어부들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 궐기하며 소설은 끝난다.

 

 

 

 <게공선>은 1920년대 아시아의 맹주로 떠오르던 일본제국의 어두운 노동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사지로 내몰리는 노동자들, 사기나 다름없는 일자리 알선, 위험하고 불결한 노동환경, 수직적으로 이뤄지는 직장내 폭력, 노동운동을 막기 위한 반공적 탄압 등, 이렇게 일본제국은 자신들의 이익, 더 자세히는 ‘지배층, 기업가, 군부, 은행가, 그리고 그들과 결탁하여 이익을 얻는 수많은 기회주의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농민과 노동자들을 수없이 기만하고 착취했으며, ‘숭고한 민족, 강력한 국가’라는 프로파간다를 국민들 머릿속에 주입하여 국민들 스스로 자신의 노예주를 찬양하고 순종하도록 세뇌시켰고, 종국에는 지배층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무수한 인명을 지옥으로 끌고간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포문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제국이 사라진 지 어언 80년이 다 되가는 지금도, <게공선>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일본뿐 아니라 이웃나라인 한국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있다. 국가와 기업이 대놓고 노동자를 탄압하던 모습은 사라졌지만 대신 더욱 교묘한 수법—언론 플레이, 노동계 분열 유도, 불이익 주기, 대가 없는 해고—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목줄을 채우고 있으며, 이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외처야 할 대형노조들은 새로운 기득권이 되어 관심을 놓고 있으며, 언론과 언론을 보는 국민들은 노동자들이 살기 위해 외치는 소리를 “빨갱이, 돈 좀 만지려는 무임 승차자”로 매도하고 조롱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현실을 타파할 수 있을까? 사실, <게공선>은 소설의 말미에서 그 답을 간략하게나마 알려주고 있다. 책의 부기에선 어부들의 두번째 파업이 성공하며 감독의 모가지를 잘라버리는데 성공했다고 나온다. 아마도 기를 한번 꺾어놨으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할 거라 생각한 감독의 안일한 생각이 자초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후 항구로 돌아온 어부들은 잠시 경찰서에 있다 풀려나면서, 자신들이 겪은 ‘조직’과 ‘투쟁’의 경험을 지나고 다시 노동의 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도 이들은 게공선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살해당하기 직전의 노동자들을 구하기 위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거라 본다.

 

 조직, 투쟁, 단결, 연대— 노동운동계, 더 나아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열에서 이 같은 행동은 너무나도 기초적인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냉전에서의 승리와 북한, 중국의 존재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데다 경쟁과 갈라치기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 사회는 이런 개념을 아직까지도 생소하게 여기거나 심하면 배척하고 폄훼하려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게공선>이 당당히 주장하듯이, 억누르고 억누를수록 노동자들의 마음속 분노의 불길은 더더욱 거세게 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게공선의 어부들이 그랬듯, 배척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몫을 위해, 아니면 기득권이라는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연대하며 저항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닌, 이전보다 더 낫고 행복한 삶을 원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