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판*독일어판 서문) p.11 ~

III

 군주국 독일이 강요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그리고 ... 베르사유 조약은 제국주의가 고용한 날품팔이 문필가와 소부르주아 반동주의자들을 모두 폭로함으로써 인류에게 가장 유용한 봉사를 했다. 이들은 비록 스스로를 평화주의자, 사회주의자라고 부르지만 "윌슨주의"에 대한 찬양을 읊조리고 평화와 개혁이 자본주의하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금융 약탈자 집단과 독일의 금융 약탈자 집단 중 어느 쪽이 가장 많은 전리품을 받을 지를 결정짓고자 한 전쟁이 남긴 수천만의 망자와 불구자들, 그리고 이 2개의 "평화 조약"은 전례 없는 속도로 부르주아지에 의해 짓밟히고 억압받고 기만당하고 속아 온 수백 수천만 인민이 눈을 뜨게 하고 있다. 그 결과 전쟁이 야기한 광범위한 파괴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혁명적 위기가 생겨나고 있고, 이 위기는 그것이 거쳐 나갈 여정이 아무리 길고 어려울지라도 프롤레타리아혁명과 그 승리가 아니고서는 끝날 수 없다.

 제2인터내셔널의 바젤 선언은 1912년에 이미 1914년에 발발한 전쟁에 대한 평가를 제공했다. 이 선언은 제2인터내셔널의 치욕스러운 파상과 그 주역들의 배신을 완전히 폭로하는 기념비가 됬다. 재차 독자에게 다음 사실에 주목하라고 촉구한다. 즉 제2인터내셔널의 주역들은 마치 도둑이 자신이 범한 범죄 현장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박한 전쟁과 프롤레타리아혁명 사이의 연관성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언명한 이 선언의 구절들을 주도면밀하게 회피하고 있다.

 IV*

 이 소책자는 카우츠키주의 비판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들, 사회주의자*개량주의자*평화주의자*부르주아민주주의자*목사 무리가 대변하는 국제적 이데올로기 경향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경향은 한편으로 제2인터내셔널의 분열 및 쇠퇴의 산물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 생활방식 전체가 그들로 하여금 부르주아적*민주주의적 편견들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소부르주아지 이데올로기의 당연한 결과이다.

 카우츠키와 그 비슷한 무리들이 견지하는 시각은, 이 저술가가 수십년 동안, 어찌됐든 사회주의적 기회주의(베른슈타인, 밀랑, 하인드먼, 곰퍼스 등)에 맞선 투쟁 과정에서 지지해 온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원칙들 자체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전 세계적으로 카우츠키의 추종자들이 현실 정치에서 극단적 기회주의자들과 단결하고 있고 (사회주의자가 참여하는 부르주아 연립정부를 통해) 부르주아 정부와 단결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성장하고 있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혁명 운동 일반, 그리고 특수하게는 공산주의 운동은 카우츠키주의의 이론적 오류들을 분석하고 폭로하는 것을 피해 갈 수 없다. 카우츠키 일파처럼 제국주의 모순들 및 이로부터 등장하는 불가피한 혁명적 위기의 심대함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평화주의와 "민주주의" 일반이 여전히 전 세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경향들과 싸우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의 본분이다. 부르주아지에 의해 기만당하고 있는 소소유자들과 소부르주아적 생활 조건을 누리는 수백만 노동 인민을 부르주아지로부터 되찾아 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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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닌은 카우츠키와 그의 노선을 지지하는 사람들(:카우츠키주의자)이 제2인터내셔널에서 타협한 모든 것들에 대해 자본가에 대한 굴종 내지는 자본가-국가의 이익에 붙어먹은 계급 배신행위로 판단했다. 위에 기술된 '1914년의 전쟁'은 1차 세계대전 및 그 주변부 그리고 그 전쟁으로 파생된 여러 내전들을 모두 포괄한다. 레닌은 1차 세계대전의 성격이 한계까지 팽창된 제국들이 그들의 파산을 유예하기 위해 다른 제국들로부터 부를 약탈해 해결한다는 소위 '따갚돼'를 위한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런 한계에 봉착한 제국주의의 현실을 잠시 연장하기 위해 - 노동 계급의 억압과 착취를 위해 - 카우츠키주의자들이 제2인터내셔널이 노동계급에게 희생을 권하는 조직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에서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비화의 내적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그의 저서 <국가와 혁명>을 보면,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혁명노선으로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모순은 국제전을 통해 그 진상이 드러나므로 그중 약한 고리에 강한 연관을 갖는 역사적 사건을 시발점으로 국제전을 국내전으로 바꾸어 혁명을 완수한다"는 전략을 프롤레타리아혁명의 핵심요소로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레닌은 카우츠키주의자들을 반동으로 규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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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제8장 "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패"에 관해 몇 마디 말해야겠다. 전직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현재 카우츠키의 전우이면서 독일 독립사회민주당(*독일국의 범사회주의정당)의 부르주아적 개량주의 정책의 핵심 주창자인 힐퍼딩은 솔직한 평화주의자이자 개량주의자인 영국인 홉슨에 비해 이 문제에서 일보 후퇴했다. 전체 노동자계급 운동의 국제적 분열은 이제 매우 명백하다(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 무장투쟁과 내전이 이제 두 경향 사이에서 감행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명백하다 - 러시아에서 볼셰비키에 반대하여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콜차크와 데니킨에게 지지를 보낸 점, 독일에서 샤이데만과 노스케 일파가 스파르쿠스단에 반대해 부르주아지와 협력하여 수행한 전투, 핀란드, 폴란드, 헝가리 등에서 벌어진 비슷한 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런 세계사적 현상의 경제적 토대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최고 역사 발전 단계, 즉 제국주의의 특징인 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패이다. 이 소책자가 보여 주듯이, 자본주의는 이제 단지 "이표 절취"로 전 세계를 약탈하는 대단히 부유하고 강대한 한줌의 국가들을 선발했다. 전쟁 전 부르주아 통계에 따르면 자본 수출은 전쟁 전 가치로 연간 80억에서 100억 프랑의 소득을 가져온다. 물론 현재 자본수출이 가져오는 돈은 훨씬 더 많다.

 분명, 이러한 거대한 초과이윤(그것은, 자본가들이 "자국" 노동자들로부터 쥐어짤 수 있는 이윤을 상회하여 획득되기 때문에 초과이윤이다. *필자: 주류 경제학의 한계이윤의 정의를 살펴보면 레닌은 이에 대비된 개념으로 '초과이윤'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을 가지고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노동귀족 상층을 매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선진"국 자본가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자본가들은 천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을 매수하고 있다. 그것은 직접적일 수도 있고 간접적일 수도 있으며, 공공연할 수도 있고, 은밀할 수도 있다.

 이 부르주아화한 노동자층, 즉 노동귀족은 생활 방식으로 보나 소득 규모로 보나 전반적 사고방식으로 보나 완전히 속물이고, 제2인터내셔널의 주된 지주(*기둥)이며, 현재에는 부르주아지의 주된 사회적 지주(*지지대)이다. 그들은 노동자계급 운동 내에 존재하는 부르주아지의 실질적 대리인이자, 자본가계급의 노동 부관이며, 개량주의와 국수주의의 진정한 전달 수단이다. 프롤레테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내전에서 그들이 부르주아지 편에 서고 "코뮌파"에 맞사 "베르사유파" 편에 서는 것은 필연적이고 그 수도 적지 않다.

제국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 사회혁명의 전야이다. 이 점은 전 세계적 규모로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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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매우 소름돋는 부분이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닌가? 이 유사성은 사회경제적 문제가 특정 시간대와 특정 지리적 위치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단위노조는 기업별 노조이지만 실질적 협상력을 갖추려면 산업별 노조는 되어야 한다. 이런 산업별 노조들이 모여 두 개 중 하나의 합법적 노조 총연맹에 가입하게 된다. 이로서 비로소 노조는 강력한 대항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노조들의 노조가 존재하는 탓에 노조들 사이에 관료적 부패가 발생한다.  

 대한민국 《노동조직 및 노동관계조정법 》에 보면 3장 제29조부터 노동조합의 단일화와 의사 대표자에 대해 나온다. 그리고 좀더 가면 조정위원회에 관한 부분도 나온다. F.엥겔스가 <사유재산, 가족, 국가의 기원>의 말미에서 밝힌 바, "

국가는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른 사회의 산물이다. 국가라는 존재는 그러한 사회가 해결 불가능한 자기모순에 봉착했고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화해 불가능한 대립물들로 분열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립물들, 즉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지닌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을 통해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않게 하려면 외관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즉 갈등을 완화하고 ‘질서’의 한계 내에서 제어할 권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생겨났지만 사회 위에 서서 사회로부터 점점 더 소외되어가는 이러한 권력이 바로 국가이다."는 구절은 노조법의 진정한 목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