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다당제는 제도가 아닌 <현상>임(하지만 다당적 현상을 추구하는 제도, 가령 비례대표제가 있을 순 있음). 다당제는 뿔죠아정당이니 개혁정당이니 하는 것들의 정치적 협잡을 암시, 이들이 집권하는 사태를 용인함.


2) 허나 다당제는 의회주의 좌익세력에 의해 부분적으로 용인될 수 있음. 그것은 군소정당의 세가 너무나도 미약한, 보수양당이 의석을 양분하는 양당제의 상황에서임. 다시말해 군소세력은 다당에 힘입은 <정당한> 절차 속에서 집권을 꾀할 수 있다.


3) 그렇다고하여 다당제를 합목적으로 삼는 좌익이 과연 건강할지? - 당연히 아니지. 다당제는 무수한 방법론 중 하나이고 처절한 작금상황에 제기되는 유력한 대안일 뿐임. 도구란 말이 딱 어울린다. 건실한 실천가에게 다당제는 오로지 이행의 도구로서만 가치를 지닌다. 다당제는 절대적 목표로 설정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