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명의 변방에서 온 그것


소위 문명인을 자처하며 자문화중심주의에 빠진 호사가들은 항상 괴상하고 역겹다고 한마디씩 부당한 소문을 퍼뜨려왔음. 아무리 영국요리가 밈이 됐어도 독일인 음식고자설의 역사에 비하면 영고라인 낄 자격도 없음.


근데 고대 로마인, 중세의 짱깨, 소중화인, 그리고 21세기의 미국 웹기자들까지 하나같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음식이라고 까댄 것이 있으니 바로 마유주임. 곡주와 과일주에 익숙하고 유제품이 생소했던 농경민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법 하긴 함. 미국기자는 걍 미국인답게 대가리가 빈거고. 케피르 스타터 쓰기쉽게 얼마나 잘 나오는데 해먹어보지도 않고 그런 소리를 싼담.


근데 옛 기록에서 하나같이 우욱씹이라고 하면 왠지 슬슬 호기심이 생기지 않겠음? 나는 이때 그만 카오스랑 접신해버린것임



2. 케피르의 유행이 시작됐었다


우리에게 요구르트는 이제 기계 하나 샀다가 십년도 더 전에 어딘가에 처박아놓고 잊어버릴만큼 너무나 익숙해진 시대. 이제 요구르트도 아니고 티벳버섯이니 케피르니 하는것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만 해도 TV에서 어린이 시간대에 주구장창 광고때리는거 보고 떠먹는 요구르트 호기심에 사먹었다 우욱씹 이게뭐임 야쿠르트나 사먹을걸 하고 후회들 했었는데 참 감개가 무량하다.

미국에선 케피르도 대충 건강 우유발효음료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케피르의 실체는 그럼 무엇인가?


3. 요구르트, 케피르, 쿠미스


가장 중요한건 발효균의 차이임.

요구르트는 유산균에 의한 산 응고를 이용해 만들어짐. 유산균은 유당을 직접 분해하고 갈락토스도 포도당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음. 그 과정에서 젖산을 내놓아 상쾌한 신맛과 산응고단백질이 엉겨 진한 질감을 내게 됨. 또한 균은 pH에 민감하기때문에 다른 잡균의 번식을 억제하고 유산균이 우점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함. 다만 유산균이 산에 약해서 위에서 다 뒤지니까 대신 귀여운 유산균캡슐로 넣어드리겠습니다 하던 광고처럼 유산균도 pH에 민감한 주제에 먹을거 떨어질때까지 노빠꾸로 젖산을 생성하여 자기들도 죽어버림.


케피르는 효모를 이용한 발효가 이루어짐. 유산균처험 효모도 종류가 다양한데 일반적인 맥주나 빵 이스트는 유당을 분해할 수 없어서 생유만으로는 제대로 된 효모 발효가 일어나기 어려움. 그렇다고 우유에 설탕넣어 만드는건 아니고(도수는 올릴수 있겠네ㅋㅋ) 드물게 유당분해가 가능한 종류의 효모가 있음. 이걸 배양해 파는게 케피르 스타터임.


근데 효모가 포도당이랑 산소 먹고 발효하면 일단 뭐가 나온다? 이산화탄소랑 알콜임. 즉 케피르는 알콜을 소량 포함하고 맥주처럼 뽀글거리는 그...우유맥주가 되는것임ㅋㅋㅋ 도수는 약 2~3도정도로 아주 약한 알콜음료가 됨. 다만 수퍼에서 음료수 개념으로 파는 케피르는 알콜이 1% 미만 혹은 거의 남지 않도록 조절한다고. 케피르의 도수는 우유에 함유된 당분의 양, 질감은 유지방의 양에 따라 결정됨.


그리고 일반적으로 케피르와 쿠미스의 가장 큰 차이는 소과 동물의 젖을 쓰느냐 말과 동물 젖을 사용하느냐 정도라고. 말과동물의 젖은 유당 함량이 더 높은대신 지방이 적음. 그래도 유당의 절대적인 양 자체가 적다보니 가내제조 케피르랑 도수차이는 별로 안난다고.


이런 발효음료는 어쨌든 유당이 분해되어 있거나 소량만 남아있어 유당불내증으로 배탈이 나지 않고 또한 독특한 맛을 내니 수천년간 유목민의 전통음료로 사랑받아올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쿠미스를 증류한게 아락주 즉 아르히임. 밑술 도수 자체가 낮다보니 가정에서 증류한 아르히 도수는 청주 정도가 한계라지만, 말젖 자체가 양이 적은데 그걸로 쿠미스를 만들어서 또 증류하니 확실히 옛날엔 전통 소주같은 고급술이었을 것 같다.


4. 이쯤에서 젠취의 속삭임


근데 그렇게 유구한 세월을 까댈정도로 진짜 알콜발효 유제품이 맛이 없나??? 비슷한것이나마 먹어보고는 싶은데 또 돈써서 이상한거 사고싶진 않고 집에는  썩어나는 이스트가 있다. 오케이!


그리하여 나는 일단 직접 발효한 요구르트 1.2리터를 만들어 준비해두고 설탕물과 빵이스트를 넣어버린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진 생각 안나는데 싸마간이나 크바스 발효 참고해서ㅋㅋㅋ 발효시키고 열어보았다. ㅗㅜㅑ 세상에 냄새가;;; 구린내같은건 아닌데 개봉하자마자 요구르트랑 밀막걸리랑 백화수복 섞인듯한 알콜냄새가 확 올라오는 것이었음. 이래서 케피르 만들때 냄새 싫으면 한번씩 열어서 새 공기 넣어주라고 한거구나;;;


5. 맛,총평


맛은 확실히 특이한게 내가 요구르트를 이용하는 해괴한 방식을 써서 그런지 그...좀 쌉쌀하고 새큼달큼한 요구르트같은데 알콜기운이랑 톡톡 탄산 터지는 느낌은 제법 독특했음.


만들어놓은건 좋은데 내가 술을 잘 안마시니 1.2리터나 되는 요구르트맥주(??????)를 어케 해야할지 고민되더라. 이거 계속 놔두면 쿠렁내나는 우유식초 될게 뻔함. 그래서 얼음트레이에 얼려서 날 더울때 아스께끼로 하나씩 먹으니까 냄새도 확 죽고 키야 죽인다! 탄산이 싸하고 알근한 요구르트 샤벳 먹는 그 맛이었음. 그래서 마유주 구웨에엑은 전부 개소리란 결론!


6. 후일담


내가 먹는거 보더니 나머진 어머니가 다 하나씩 빼서 드셔버리고 야 기분조타 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