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62년생으로 80년대 중반에 방위도 많던 그 시절 운없게도 현역으로 다녀오신 분 가끔 서울 직장 다니는 동생놈이 우리 집 마계로 올라오면 고기파티가 벌어지곤 하는데 집에서 고기뜯다 술 오르시면 군머서 드셨던 양고기 극혐 썰을 푸시곤 한다


나나 동생놈이나 양꼬치 양갈비 양다리구이 하튼 양이라면 고수 쯔란 민트까지 램 머튼 안가리고 쳐먹는 중증양중독자들인데 아버지는 양이라면 일단 경기부터 일으키고 봄 


이 아저씨도 고기 스펙트럼이 꽤 넓어서 소 돼지 닭 개 오리 염소 사슴 심지어는 친척발로 얻은 노린내 JOAT 고라니 장조림까지 냠냠쩝쩝하는 분인데 지금도 양고기 얘기만 나오면 어김없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때그시절 양고기 썰 보따리를 슬슬 푸신다 아마도 우리 가족 살아생전에 가족끼리 양꼬치 뜯을 일은 없을듯


때는 1970년대 김종필목장으로 불리던 충청도 내 목장 외 국내에는 수출 목적의 면양 목장이 꽤 많이 굴러다녔다 카더라 하긴 이 시절이면 섬유 중석 오징어 하튼 돈될 껀덕지면 뭐든 기르고 캐서 팔던 가난한 시절이라


문제는 매년 털깎아 내다 팔던 면양이 다 늙어 털도 못뽑을 지경으로 떨어지면 이걸 처리는 하긴 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늙은 양고기 머튼은 양고기 꽤 뜯는다 하는 조선인도 쉽게 넘기기 힘든 특유의 스멜이 밴다 어지간한 도축 연령 양도 그런 판에 다 늙어 숨넘어가기 직전 폐기양이면 말할 껀덕지도 없을듯


그러면 그 양이 다 어디로 간다? 예나 제나 조류독감 돈다 아프리카돼지열병돈다 하튼 뭐 특정 가축 고기 안팔린다 썰만 돌면 그 수요를 다 짬처리당하는 군머


재수없게도 아버지 시절엔 아직 그 면양 목장이 돌아가는 시절이었다 하고 아버지도 신선한 머튼도 아닌 오늘날 부식창고 가면 가끔 볼 수 있는 통조림 꼬리곰탕마냥 캔처리된 머튼 양고기를 종종 짬당하셨다고 하시더라 심지어 살점은 좆도 없고 머튼스멜 풀풀 풍기는 기름덩이 국물로 드셔야 했다고


다른건 다 참더라도 겨울에 굳은 양기름 변변한 세제도 없이 설거지하는건 지금도 치를 떨 트라우마로 남으셨다다더라 마치 우리들 설거지당번 턴 돌아왔는데 하필 그날이 한겨울 오리불고기 배식받고 세제까지 떨어진 그날인거마냥


결국 지난달 가족여행 갈때도 동생놈이 좋은 양갈비 몇 킬로 챙겨간다고 하는거 극대노한 아버지 흥칫뿡에 바로 컷당했음 ㅋㅋㅋㅋ 본인쟝도 어린 시절 그렇게 잘먹던 조기 군머 다녀오곤 입도 안대는거 보면 역시 군머 식단은 뭔가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