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자료 채널
 ".. 다시 말해보게 동무."
 정하섭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분노를 드러내며 자신의 앞에 있는 참모에게 권총을 겨눴다. 참모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오히려 주변에 있던 간부들이 놀라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위원장 동무..! 이게 무슨.."
 "동무! 우선 진정하시고.."
 정하섭은 조용히 참모를 노려보며 겨눈 총을 치우지 않았다.
 참모 역시 입을 굳게 다물었을 뿐, 물러서려는 태도를 보이진 않았다.
 "다시.. 말해보게. 임순영 동무가.. 뭐가 어쨌다고?"
 "들으신대로입니다.. 동무. 임순영 동무는.. 황가에서 보낸 밀정입니다."
 순간, 총성이 울렸다.
 정하섭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천장을 향해 권총을 쏘곤, 다시 총구를 참모를 향해 돌리며 말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게, 동무..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임순영 동무가 밀정이라고? 임순영 동무가 누군지 모르나?"
 ".. 위원장 동무의 아내분 되십니다."
 "그래! 내 아내야..! 위원장인 내 아내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공산단체의 위원장 아내가 밀정이라고..? 그게 말이나 되나?!"
 ".. 동무, 제가 말씀 드린 것은 전부 사실입니다."
 "입 닥쳐! 니 망할 입을 쏴버리겠.."
 참모가 그들 둘 사이에 놓여진 집무실 책상에 사진 한 장을 올려뒀다. 모두의 시선이 사진에 쏠렸다.
 사진을 든 정하섭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진에는 임순영이 한 골목에서 비밀리에 한 남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 그 남자는 황실정보부 소속의 공작관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대화 내용은 자세히 듣지 못했으나, 친숙히 그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서.. 또,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습니다만, 임순영 동무가 주위를 살피며 감시를 의식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밀정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하섭은 이 사진을 믿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믿고 싶지도 않았고,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결정적인 증거였다.
 주변에 서 있던 간부들도 사진을 보더니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위원장 동지! 어서 임순영을 체포하셔야 합니다!"
 "체포뿐만이 아니라.. 공개 처형을 해서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정하섭은 두통이 몰려왔다. 위원장으로서의 자신이 해야할 일과, 임순영 동무의 남편이자.. 소월이의 아빠로서 해야할 일 사이에서 갈등했다.
 화를 내며 한마디씩 하고 있는 간부들의 모습과, 오늘 아침에도 포옹을 하고 온 임순영 동무와, 아직 어린 딸 소월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정하섭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말했다.
 ".. 임순영 동무를 반역 및 조직 전복 모의의 죄를 물어 체포하라. 규약에 따라.. 지하실로 보내라."
 참모가 경례를 하고 돌아 나섰고, 그 뒤를 간부들이 따라갔다.
 정하섭은 집무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자신이 아직까지 손에 쥐고 있는 권총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이 권총으로 처형될 임순영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총이 그의 손에서 떨어졌고, 그는 얼굴을 감싼 채 조용히 흐느꼈다.
 그녀가 지하실로 끌려갔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소설외) 정소월의 부모님인 정하섭과 임순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훗날 둘 다 끝이 안 좋다고.. (정하섭 : 자살 / 임순영 : 암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