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너무나 많이 보았다. 피로 물든 들판을, 하늘로 솟아오른 잿빛 기둥을. 제 자신의 손이 피로 덮혀 있는 바를. 그의 피는 아니였다. 아마도- 아니 그는 알 수 없었다. 오직 그가 아는 바는 그가 집에 있지 아니한 것, 그의 눈 앞에 어마마마가 계신다는 것 뿐이다.


"어마마마."


그가 더듬으며 간신히 말을 하였다.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어찌 이곳에 계시는가. 여인의 머리칼은 화약내가 스며드는 먼지속에서 매끄러웠다. 여인의 옷깃은 그와 다르게도 깨끗하였다. 그 형상은 실로 하늘에서 사자가 내려와 있는 바와 같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자신은 수년간 키워낸 여인을 올려다 바라보았다.


"칼빈."


그녀가 속삭였다. 그녀는 무릎을 꿇어 사내를 품었다. 여인의 옷깃은 실로 부드러운 비단과도 같이 사내의 어깨에서 흘렀다. 남자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어깨에 파묻혀 흐느끼었다.

여인는 몇 초가 지나 곧 일어섰다. 여인의 옷은 사내의 옷을 뒤덮은 진흙에도 불구하고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다. 사내의 피칠갑한 손에도 불구하고 핏자국 하나 남지 아니하였다. 여인의 어깨에는 사내가 흘린 눈물 자국또한 남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여인은 나타난 바와도 같이 그렇게 사라졌다. 불타는 지평선 만이 그의 시선에 남았다.


"어마마마." 그가 소리쳤다. "어마마마! 소자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사내는 옆으로 쓰러져 공 모양으로 몸을 웅크리고 어머니를 찾으며 통곡하였다.

꺼져가는 불씨와, 하늘로 솟아오른 잿빛의 기둥, 울부짖는 열 아홉의 사내 말고는 그 무엇도 없었다.


그는 몇 달이 지나고 전쟁터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허나 전쟁은 되려 그의 맘 속으로 따라왔다. 그는 그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 황제는 그의 귀환을 축하하며 열병식을 개최하였지만, 되려 그는 그가 겪은 바에 대하여 자랑스러워 할 수 없었다. 그는 열병식에서 본 젊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였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여 향했던 곳이, 겪지 전까진 알 수 없을 터였다.

그가 다시금 그의 어머니와 조우하였을 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지만, 눈물은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아니하였다.


"어마마마. 어찌하여 소자를 떠났단 말이옵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자."


"어마마마께선 소자를 떠나셨나이다."


“제가 절대 태자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태자도 아시잖아요.”


확신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여전히 버려졌음을 느꼈다. 그녀가 그를 버린것인가. 아님 그가 모두를 버린 것인가. 그는 자신이 모두를 버린 것이라 여기기 시작하였다. 그는 죽은 전우들을 들판에 남겨두고, 존엄성을 버리고, 영혼을 버렸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되찾기 위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땅은 이미 그 모든 것을 삼켜냈으니.


수십여년이 지나고, 황제가 죽어 그가 보위에 오르자, 그는 복수하자 다짐했다. 적에게, 신에게 말고, 인세, 그 자체에게 복수하자고. 인류는 그 자체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된 갈등에 병들어 있었다. 사람이 어찌 같은 사람을 죽이는가. 말도 안되는 짓이였다. 미친 짓이였다.

그는 전쟁이라는 것 자체를 끝내기로 하였다. 이 대지, 센타우라의 땅은 늘 제 자신들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수많은 나라들이 대륙의 남북을 이루고 있었고, 당연히도 확장을 목표로 하는 탐욕스러운 자들이 다스리던 곳이였다. 매 해마다 각국의 국경은 변해왔다. 그리고 그 변화에는, 언제나 인명의 손실이 뒤따랐다.


한 종의 자살, 그것이 그를 화나게 하였다. 그는 전쟁이 서로 다른 사상, 관념, 정치 간의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어떻게든 이 대륙 전체를 하나의 이념으로 통합한다면 앞으로 몇 년 동안 많은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의 적들을 제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많은 제국들을 고작 '평화' 따위로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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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완장 역은 야스가 아니여서 본인이 직접함ㅎ